젊은 사람들은 정말 모른다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22> 젊은 사람들은 정말 모른다

오문회 0 1914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이 나이 든 여자 주인공은 굵은 손목에 덩치가 크고 무뚝뚝하며 거침없이 말해서, 만나면 외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상당히 부담스러운 사람입니다. 이 퉁명스러운 여자의 남편은 성실하고 다정다감하며, 세상의 모든 사람이 커플이 되기를 바라는 그런 '따뜻한 공기를 몰고 다니는' 남자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한 번씩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사랑의 기억을 갖게 되지만, 이루어지지는 못합니다. 한 명은 '보살피는' 사랑을 했고, 다른 한 명은 '힘들어도 참는' 사랑을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랑에 대해 눈치를 챘건 못했건, 그들은 끝까지 서로를 존중했고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음을 후회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향한 그 엷은 빛깔의 사랑이, 더 짙어지지 못하고 아름다울 만큼 안쓰럽게 끝나버린 것은 각자의 소심한 성격 탓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의리와 피부 속까지 배어 버린 습관 같은 친숙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이름은 올리브 키터리지입니다. 이 책은 올리브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남편 헨리, 사랑하는 아들 크리스토퍼(불행히도 아들은 그녀를 무서워하고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며진 열 세 편의 단편 소설집입니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따로 읽어도 각각 하나의 완성작으로서 깊은 의미와 감동을 줍니다.

열 세 편의 줄거리와 스토리에 대한 감상은 너무도 깊고 넓어 몇 개의 문장으로 간추려 낸다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일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을 그냥 떠나 보내기가 또 나만 알고 있기가 미안해서 전체를 아우르진 못하더라도 느낌의 흔적만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막 덮었을 때, 제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여러 단편을 통해 그려낸 '캐릭터 만들기'야 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며, 그녀가 심혈을 기울였을 자잘하지만 세심한 장치들이 소설 곳곳에서 튀어나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독자들을 공감을 얻어 냈다는 것입니다.

'옮긴 이의 말'에 따르면, 스트라우트는 이 소설 중 <작은 기쁨>을 집필하다가, 아들의 결혼식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지쳐 ‘이제 손님들이 갈 때도 되었다'고 투덜거리는 거구의 여인을 상상하면서, 아예 올리브를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을 써 보자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소설은 중년 이후부터 일흔을 넘기기까지 올리브 키티리지라는 여인을 여러모로, 안팎으로 속속들이 묘사합니다. 어떤 때는 던킨 도너츠 한 조각으로, 큰 꽃무늬 원피스로 혹은 잘난 척하는 며느리의 베이지색 스웨터에 긋는 매직펜으로, 남자 신발 코너에서 산 그녀의 넓적한 운동화로, 그리고 블라우스 자락에 묻은 버터 스카치 아이스크림 등으로 작가는 올리브의 성격과 신념과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일상적인 소재들을 통해 독자는 올리브라는 3인칭을 1인칭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올리브는 흔히 말하는 ‘비호감’이 확실하지만, 결국엔 모두의 이해와 동정을 얻어냅니다. 왜냐하면 올리브와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어느 한순간에 존재했을 내 모습, 혹은 미래에 문득 들이닥칠 내 모습을 보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녀를 우리 자신처럼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흔히 이미 상실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어떤 나이를 넘어선 ‘그들의 사랑’에 대한 세련된 묘사입니다. 여기서 말한 ‘어떤 나이’란 사회적, 보편적인 의미의 것이며, 인구조사 할 때나 써먹을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문득 깨달을 것입니다. 그 ‘나이’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 경계’인지를…….

남편 헨리 키터리지와 약국 종업원인 데니즈와의 감정은 사랑인지 위로인지, 안타까움이 섞인 보살핌인지 작가는 한마디로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데니즈는 ‘머릿속으로 늘 헨리에게 말하고’, 헨리는 그저 그녀의 외투를 여며주고, 운전을 가르쳐주고, 수표 쓰는 법을 가르쳐 줄 뿐입니다.
 
한편 마흔넷의 올리브 키터리지는 쉰세 살의 짐 오케이시를 타운 미팅에서 처음 만납니다. 그들은 첫 눈에 서로가 투명인간처럼 느껴질 만큼 간절히 그리고 깊이 바라봅니다. 올리브는 그렇게 별안간 뒤에서 조용히 다가온 거대한 트럭처럼 그녀의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똑같이 '불량 옷감에서 잘라낸 조각 천' 들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봅니다. 키스를 한 적도 몸을 만진 적도 없습니다. 나란히 옆에서 걸으며 산책을 하고, 매일 아침 학교에 카풀로 출근하는 것이 전부인 사랑입니다. 그저 그 참기 힘든 열망을 가슴에 담으며 잠을 설칠 뿐입니다.

어느 날, 어이없는 자동차 사고로 짐 오케이시를 잃은 올리브는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주먹으로 나무를 때리며 오열하고 짐을 원망하지만, 그 날 남편 헨리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저녁밥을 짓습니다. ‘조용한 분노’, 그것은 헨리는 속하지 않은 세계, 올리브의 세계인데, 이제 올리브는 그 안에서 또 혼자입니다.

그리고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면 다른 이들과 똑같은 얼간이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녀 앞의 주어진 악역을 꿋꿋이 받아들입니다. 그런 그녀의 사랑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한 번 찾아옵니다.

마지막 단편 <강>입니다. ‘날 혼자 두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잭 케니슨의 곁에 누우며 올리브는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정말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 그러면서 세상에 아직 올리브의 자리가 있음을 안도했고, 아직 돌아올 그녀의 차례가 있음에 감사했고, 그 해 어리석은 봄이 뿜어내는 햇살 아래 싹 튼 새순에 기뻐합니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가, 아직 닿지 못한 미래의 여자가 느낄 삶의 새로운 욕망과 아들의 여자를 받아들이는 또 다른 여자로서의 놓지 못할 감정들과 지금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이유 없는 분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밑그림이라도 그려낼 수 있다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당신은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셔도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다 끝나버린 것 같았던 인생에서, 순간 상실감으로 가득 찬 바윗덩어리가 들어 올려지고, 그 아래 세상이 달라 보이는 위안과 다정함을 발견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래서 굶주렸던 지난날이 아쉽고, 손가락을 꼽아가며 어떤 만남을 기다릴 누군가가 있다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가인 당신은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셔도 좋겠습니다.
 
간서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021.272.4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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