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28>누나의 사랑

오문회 0 2230

“동상인가? 이번에 꼭 다녀가소, 잉. 안 그러면 나 점말 섭섭헌께. 다시는 동상 안 볼란께.”
 덜컥 전화가 끊어졌다. 끊어진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금호동의 엄마 같은 누나로부터 이른 아침에 걸려온 전화였다.
 
열흘 전쯤, 서울에 나왔을 때 이번에 찾아 뵙는 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예고 없이 누나를 찾아갔다.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아무리 현관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밖에 나가셨나, 아니면 자식들 집에라도 가셨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누나의 셋째 아들, 철수네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안에 계시는데 못 들으신 거라며 잠깐 기다려보라고 철수가 말했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렸다. 누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낮잠이 들었나보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소리는 아주 작게 줄여져 있었고 화면만 왔다 갔다 했다. 휴대 전화의 요란한 진동에 잠이 깼단다.
 
세 번 울리면 셋째 아들이라고 약속이 되어 있어 철수가 온 줄 알았다며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생각지도 않은 나의 방문에 누나는 너무나도 기뻐했다. 두 해 전에 찾아 보았을 때도 반가워했지만 그때보다도 더 반가워 하는 느낌이었다. 살아생전, 예정된 만남의 횟수가 줄어드는데 비례하여 보고 싶은 간절함은 더해져 가는 것일까?       

 비록 몸은 약해 보였지만 이전처럼 피부도 곱고 인자한 모습이 아주 편안해 보였다. 오클랜드 공항 면세점에서 선물용으로 산 목도리를 목에 감싸 드리며 꼭 안아 주었다.
 
 “누나 건강하시죠?”
 “뭘라고 이런 것을……. 그냥 보기만 해도 반가운디.”
 “…….”
 “동상, 부디 건강하소? 잉. 동상 댁하고도 두고두고 재미있게 살아.”
참 포근했다. 돌아가신 어머니 품 같았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되돌아가기 전에 꼭 다시 오겠노라 하고 나왔다. 누나가 약속을 꼭 지키라고 하면서 손도장을 찍자고 하여 손도장까지 찍었다.
 
누나는 그때 그냥 보낸 것이 못내 섭섭했고 또 온다더니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가버렸나 싶어 오늘 아침에 전화한 것 같다. 전화하기 전에 하고자 하는 말을 미리 몇 번 연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만 몇 마디하고 딱 끊어버리는 것이……. 
 
몇 해 전부터 누나는 갑자기 난청이 심해져 어지간한 큰 소리도 잘 못 듣는다. 아들이 마음먹고 사다 준 성능 좋다는 보청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귀에 끼고 있으면 윙윙거려 잘 알아들을 수도 없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도 했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이야기는 잘 알아듣지를 못해도 눈치코치로 짐작을 하는 모양인지 제법 알아듣는 척도 한다고 아들 철수가 귀띔했다.
 
이야기 중에 가끔 웃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너털웃음을 웃기도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짐작으로 참견한 것이 동문서답이 된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리고 멋쩍어서 웃을 때라고 한다. 아들, 딸하고 인천에 사는 피붙이 동생한테만 어쩌다가 전화를 하는데 그때마다 오늘 아침에 나한테 전화한 것처럼 시간 내서 한번 다녀가라는 이야기가 전부라고 덧붙였다.
 
올해로 90세가 되는 누나는 30여 년 전 대장암으로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탈장까지 겹쳐 많은 부분을 잘라내고 인공 고무 호스를 연결했다. 항문의 괄약근이 수축작용을 못 해 고무호스를 집게로 막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풀어가며 배설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배설 기미가 있으면 참지를 못한다. 항상 용변기를 곁에 두고 지냈다.
 
문밖에 화장실이 있어도 급할 때를 대비해 아기들이 쓰는 변기통을 방안에 준비해 두고 있었다. 씻고 닦고 남달리 정갈하게 해도 방안에는 항상 퀴퀴한 냄새가 조금 배어 있다. 또 실수할까 싶어 긴 여행은 못 한다.
 
인공 호스의 사용 연한도 5~6년에 한 번씩 약해진 호스를 교체해야 해서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호스를 바꾸는 수술을 받았다. 거기에다 나이 들면 찾아오는 노인병은 누나도 예외 없이 다 가지고 있다. 귀가 어둡고, 군데군데 틀니를 해서 말할 때 바람이 새어 나와 말소리도 똑똑하지 못하다. 또 음식을 제대로 십지도 못하고 비가 오려고 하면 일기예보보다 더 정확하리 만큼 무릎이 지근거린다.
 
식사만큼이나 먹는 약도 많았다. 하루에 한 번 먹는 약이 있고,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이 있고, 식사 때마다 먹는 약이 있고, 영양제를 합쳐서 일곱 가지 하루 서른 알이 넘는다. 시간 맞추어 약을 먹는 것도 일이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을까 싶은데 정신은 흐트러짐 없이 맑고 매사에 긍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긍정과 감사의 생활이 누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비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누나는 건강 면에서는 인간 승리자인 것 같다.
 
우리 집은 시골서는 제법 부자로 살았다. 누나는 5남매 중 위로 줄줄이 세 누나 중 가운데 누나다. 동네 부잣집 딸로 태어났지만, 교육을 받지 못했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막내 누나와 아들로 태어난 형과 나만 학교에 다녔다. 위로 두 누나는 내가 젖먹이 시절에 이미 결혼하여 결혼 전 기억나는 것이 전혀 없다. 지금의 곱상한 얼굴이며 몸매는 처녀 때 누나의 모습을 짐작할만하다.
 
학교는 다니지 못했지만, 부잣집의 예쁘고 참한 규수로서 인근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같은 동네 신씨 집안에, 뒷날 검사가 된 누나 또래의 총각이 무척이나 쫓아다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이웃 동네 평범한 양반집으로 시집을 갔다. 예쁜 미모만큼이나 성격이며 성품도 얌전하여 시골 살림이지만 깔끔하게 살림살이를 잘하고 살았다. 누나네 집은 십리 길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 철이 나서부터 나는 심부름을 자주 갔다.
 
지금 생각해도 시골 풍경이 그대로 그려진다. 집 모퉁이 울타리를 따라 흐르는 도랑물 줄기를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집으로 끌어들여 물이 돌아 나가도록 만들고, 크고 작은 조약돌과 모래로 깨끗하게 단장했다.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하고 여름에는 등멱도 감고 온갖 허드렛일을 손쉽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끔 송사리들도 눈에 띠었고, 물안개가 피어올라 가기도 했다. 노랗게 핀 개나리꽃과 빨갛게 물든 봉선화꽃도 있었다. 먹음직스런 앵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앵두나무와 울타리 끝자락에 고목이 되어가는 큰 감나무에 가지가 찢어지도록 감이 많이 매달려 있는 모양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나는 가끔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를 누나가 가지 채 꺾어줘 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런 누나네 집에 심부름 갈 때는 신이 났고 무엇이든지 주고 싶어하는 누나가 좋았다.
 
 “나 기다리랑께.”
아침 전화에 하신 말이 마음에 걸려 다음날, 토요일에 찾아갈 생각으로 철수한테 전화했다. 내일 점심때에 맞춰갈 테니 어머니가 좋아하는 근처 맛집 좀 알아놓으라고 했다. 한 번쯤 입에 맞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어머님이 손수 지은 밥을 삼촌한테 드리고 싶어 하시던데 아마 외식하시려 안 나가실 거에요”라고 했다.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든 90세 된 누나가 손수 밥을 준비한다고 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마음먹고 작정한 누나의 고집을 내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뉴질랜드 갈 때 가져가라고 친구가 준 갈치 젓갈을 챙겼다. 누나네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역 근처의 백화점도 한번 들렀다. 마땅히 선물이 될만한 것이 없었다. 막 먹음직스럽게 구워낸 생선전을 한 봉지 샀다. 입맛 다셔 보라고 드리고 싶었다.
 
누나와 조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밥상에는 밥상보가 씌워져 있고 찌개가 가스 레인지에서 끓고 있었다. 가져온 젓갈과 생선 전을 내놓았다. 전은 아직도 온기가 있었다.
 
“누나, 이것 한 장 드셔 보셔요. 맛있어 보여 사왔는데…….”하며 전을 권했다.
 “참 맛나네, 맛나. 동생도 먹어보소” 하며 손가락 집게로 집어 주는 전을 받았다. 상위에 반찬 접시가 아홉 개나 있었다. 돼지 김치찌개하고 꽁치찌개 냄비는 상에 올려놓을 자리가 없었다. 마치 한정식집에 온 것 같았다.
 
콩나물, 가지무침 그리고 조기구이만 오늘 새로 만든 것이고 다른 것은 늘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조기구이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서 준비했는데 지금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나도 모르게 밥상을 앞에 놓고 무엇인가에 맞은 것처럼 가슴이 찡했다.
 
 “누나, 고마워. 잘 먹을게요”
 “맛없어도 많이 먹소.”
 전에도 누나에게서 많이 듣던 말이다. 누나의 사랑을 먹는 것 같다.
 
 “지내시기 힘들지?”
내가 말을 건넸다.
 “거동이 좀 불편해서 그러제. 맨날 먹고 자고, 좋아.”
 
틀니에서 바람도 새어 나오고, 자유롭지 못하시니까 대답도 짧다. 아들딸 6남매를 두었는데 넷째 아들이 20대에 교통사고로 죽어 한때 가슴 아파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 아픔도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다른 아들딸들은 제 밥벌이는 하고 있어 걱정이 없단다. 이만하면 복 있는 늙은이고 건강한 거라고 자랑이다. 마루 모서리에 약 복지가 담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요즈음엔 약심으로 살제” 하신다.
그런데도 보기에는 천사 같은 얼굴에 말씀도 밝고 곱다.
 “언제 또 볼랑가 모르겠네?”
 “자주 와서 누나 뵙도록 할게요.”
 “그려그려, 그럴 수 있으면 좋지.”
 “비행기를 온종일 탄다며, 그 먼 데서 어떻게 자주 온단가? 한번 올라면 비행기 채비도 솔찬할텐데?”
 “…….”
 “얼마나 든단가?”
궁금한 게 많다
 “몇 푼 안돼, 누나.”
 “어디 비행기 값뿐이겠어. 여기 와서도 움직이면 맨 돈이제. 나한테랑 이런 선물도 사오느라고 돈 쓰고.”

열흘 전에 들렸을 때 목에 감겨드린 목도리를 가리켰다.
 “보기만 해도 좋은케, 앞으로는 뭣 사가지고 다니지 마소.”
 늙기 전에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열심히 다니고, 먹고 싶은 것 아끼지 말고 먹고 다니란다. 돈이 있어도 누나처럼 움직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지내온 세월이 억울하다는 뜻이 아니고 사랑의 권면 이야기로 들렸다.

누나가 점심상을 옆으로 밀치고 다정히 물었다.
 “동상은 지금도 커피 좋아한단가? 김태희인가 하는 봉지 커피는 있는디.”
그림 공부지만 텔레비전을 항상 봐서 그런지 가수와 배우들도 제법 많이 알고 있다고 조카가 귀띔했다.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어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았다. 눈치가 빠른 누나가 말을 꺼냈다.
 “오랜만에 오니 여기저기 굽어다 볼 곳도 많고 바쁘제? 이제 가 보소. 나는 걱정 말고, 철수도 있고 하니께.”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고, 또 언제 나와서 만나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누나, 자주 오도록 할게요. 부디 건강하게 계셔야 해요.”
 
밖에 나오니 비가 오려나 잔뜩 찌푸린 날씨가 으스스했다. 철수가 내 주머니에 얼른 봉투를 찔러 넣어주면서 그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한 번 못 했는데 성의니 받으란다. 반사적으로 봉투를 다시 꺼내려 하는데 누나의 두 손이 내 손을 꽉 잡았다.
 
 “쬐금이다네, 받아두소. 철수의 성의인께.”
 누나와 조카가 사전에 짜놓은 각본같이 생각됐다.
 “고마워요, 받을게요.”
 봉투가 아니라 누나와 조카의 사랑을 한 아름 받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또 올게요.”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약속을 수차례 남발하며 무거운 걸음으로 누나 집을 나왔다. 대문 앞에서부터 제법 경사진 내리막 비탈길이다. 30m쯤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굽어진 담을 따라 한참을 더 내려가야 큰길이 나온다. 누나는 대문에 걸터앉아서 내려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길 굽어진 데까지 오는데 수십 번은 뒤를 돌아보며 수 인사를 했다.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도 했다.
 
골목 모서리에서 뒤를 돌아보아도 누나가 멀리 보인다. 대문 반대편 벽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앉은뱅이걸음으로 나아오며 좀 더 보겠다고 이쪽을 굽어보고 있다.

 ‘누나가 먼저 들어가야 내가 갈 수 있잖아요’라고 입속말을 하면서 손짓을 했다. 차마 시선을 내가 먼저 돌릴 수가 없다. 눈물이 나왔다. 뭔지 모르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마음속으로 울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속을 터벅터벅 걸었다. 이 길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이천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021.272.4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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