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의 종말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32> 호기심의 종말

오문회 0 1936

누구나 일생에 자신이 저질러 놓고도 두고두고 살 떨리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란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편이나 아들이 가끔 미란 주변을 점검하며 무슨 궁리를 하고 있나 염려스럽게 바라볼 때가 많은 편이다. 왜냐하면, 자칫 마음 놓고 있다가는 덩달아 곤혹을 치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청봉 사건도 그런 종류의 일이다. 아들아이가 6학년 때였으니 미란도 세상에 아직 호기심이 많고 남이 해 본 것은 자기도 꼭 해 보고 싶은 나이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못 해 본 것 중 하나가 대청봉 등반이었다. 설악산에 여러 번 가 봤었고, 백담사에선 일주일이나 산장에 머문 적도 있었지만, 하루 백릿길을 걸을지언정 높은 곳은 숨이 차서 힘들어하는 체질 탓에 매주 가는 북한산도 산 정상까지 차로 올라가서 절밥만 얻어먹고 다녔다.

그래도 친구들이 다 한 번씩 가 봤다는 대청봉을 못 가 본 것이 은근히 억울한 기분이 들곤 했다. 게다가 대학 때 친구였던 순실이랑 은영이가 남자친구들과 대청봉을 갔다 왔는데 어느 폭포 앞에선지 한 남자가 옷을 홀딱 벗고 폭포에 뛰어들었다 했다. 나중에 TV에도 나오는 유명 사회학 교수가 된 그 남자가 뭘 보여주려고 했는지, 혹은 그래서 뭘 좀 봤는지는 물어본 기억이 없는데 하여간 그래선지 더 기억에 남은 대청봉이었다.

그 해 새해 연휴에 시어머님께서 이번 신정은 따님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가시겠으니 구정을 쇠자고 하셔서 갑자기 며칠의 진짜 휴가가 생겼다. 그래서 그녀는 다급히 궁리를 시작했다. 단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낼 수 없는 신성한 날들을 어떻게 알차고, 재미있고, 두고두고 우려 먹을 수 있는 추억거리로 만들 것인가 갑자기 너무 바빠져서 이 신문, 저 신문 뒤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설 연휴 대청봉 등반이라는 거의 에베레스트 등정처럼 운명에 도전을 들이미는 한 등산대의 광고를 볼 수 있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토요일 저녁 9시에 동대문 서울운동장 앞에서 버스가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전화로 이것, 저것을 묻다가 그 등산클럽 대장이란 분께 정중히 사과하고 이번 등반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다음에 좀 가벼운 걸로 가겠다고 했다. 맘은 가고 싶은데 한 번도 대청봉을 오른 적이 없는 데다가 지금이 겨울인데 어떻게 왕초보가 거기에 가느냐고 거의 빌다시피 하며 뒤로 빠지려고 했다.

“아줌마, 이번에 내가 대청봉 구경시켜 드릴 테니 무조건 나오시면 돼요”

아주 저돌적이고 믿음이 가는 목소리에 거절을 잘 못 하는 미란이 결국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뭐.’ 이건 미란의 조상 대대로 핏속에 흐르는 유전자였고, 자기 자신을 어떤 극단상황에 밀어 넣어 발생할 수 있는 잠재력을 시험하는 편이었다.

그것은 별로 변화 없는 일상에서 상상력만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운명적 우연을 기대하고 늘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몽상적 성격과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즉,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기보다는 그냥 건너다가 빠진다거나 해서, 그 물맛도 보고 운이 좋으면 어떤 잘 생긴 남자가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물어오는 드라마를 상상으로 찍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미란의 그 대책 없는 호기심과 이미 가 본 사람들에 대한 ‘샘’으로 해서 그 가족의 지옥등반은 결정되었다.물론 평소 툭하면 총각 시절 지리산 등반을 했었네 하며 ‘썰’을 풀던 남편도 상쾌하게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그러기로 했다.

거기엔 미란에게 호기심의 종말이 어떤 것인지를 몸으로 체득하게 하여 혹시 자기가 이다음에 없을 때 다시는 그러지 않게끔 미리 체험학습을 시키려는 남편의 숭고한 교육자적 의지도 한몫했다.

버스 출발 전에 명동에 나가 금강구두표로 미란과 남편의 등산화를 샀다. 등산화와 옷만 챙겨가면 차량이며 가이드, 그리고 하룻밤 숙박이 제공되는 일정이었다. 깜깜한 밤 9시에 버스에 올라 설악산 입구에 도착한 것이 새벽 3시였다. 여기서부터 산에 올라가서 12시 전에 대청봉을 오르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하산하면 외설악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것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버스를 탄 순간부터 후회는 시작되었다. 이번 일은 호기심으로 시작하기엔 너무 대가가 클 것 같다는 불안이 슬슬 밀려오고 있었고 산에 오르는 건 고사하고 차멀미에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대학 때 모처럼 교수님을 모시고 간 샛터 엠티에서도 9시에 혼자 자 버린 미란이 이 시간에 눈 뜨고 영하 14도의 혹한에 서 있다니……

미란이 후회를 하든 말든 등산은 시작되었고 앞도 보이지 않는데 각자 랜턴을 들고 더듬더듬 걸어 올라가야 했다. 30분을 못 올라가고 양쪽 발뒤꿈치가 다 동전처럼 훌러덩 벗겨져 버렸다.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었으나 이미 버스는 도착지점으로 가 버렸고 모든 일은 미란이 저질렀으니 먼저 징징댈 수는 없었다. 그놈의 등산대장인지 뭔지는 가이드는커녕 아직 얼굴도 못 봤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거의 기다시피 하며 그 얼음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끝없이 반복하고 그러다 보니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얼어 죽는 수밖에 없어서 남편과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입이 얼어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냥 걷기만 했다. 아니, 기기만 했다.

평소에는 굼떠 보이던 아들아이가 두 늙은이(?)를 이끌어 주며 여기저기 발 디딜 곳에 랜턴을 비추어주었다. 나중에는 슬슬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철없는 아내가 그러자고 해도 말렸어야지, 가장이라면 앞뒤 분간은 했어야지, 그럼 마누라가 죽자고 하면 따라 죽을 건가? 언제부터 자기가 그렇게 내 말을 잘 들었다고……. 궁시렁 궁시렁…….’ 이러며 여행 떠나신 시어머니까지 원망이 돌아갔다. ‘늘 하던 대로 차례를 지내셔야지, 이랬다저랬다 하시면 조상님들이 얼마나 정신이 없으실까.’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며칠 전 이번에 차례를 구정에 지내게 되었으니 미리 산소에 가서 조상님께 말씀드리고 오라는 명을 받고 아들아이와 다녀온 일도 생각났다. 이 작품은 불교를 믿으시는 시어머님과 둘째 사위의 발상으로 이루어져 미란이 아들과 공원묘지 아래 얼음길에서 차가 빙그르르 돌아 생과 사를 넘나들었다는 대단원으로 막을 내렸던 것이었다.

오미란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