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의 종말2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33> 호기심의 종말2

오문회 0 2259

(32화에 이어서..,)

하긴 누굴 원망하랴. 그 겨울에 눈이 내려 녹지 않고 있는 용인 공원묘지를 “이번엔 구정에 오세요.”라는 말씀을‘고’하기 위하여 다녀오라고 하셨어도 아직 명절을 며칠 앞둔 날에 조상님들이 이곳에 미리 와 계셨는지 아닌지는 미란이 확인해 봤어야 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어디에나 계신 것처럼 조상님들도 평소에는 하늘에 계실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쯤 대목을 맞이하여 고향방문 준비 중이신 조상님들이 아직 하늘에 계실 테고, 그렇다면 그녀가 두고두고 이해가 안 되는 이 긴 하루를 길에서 보낼 필요까진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즈음의 그녀에게 모든 행동이 생각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론 생각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편하기도 해서 그 하루 아슬아슬했던 위험한 나들이는 그렇게 끝났다.

지금 그 지긋지긋한 눈 속에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정 힘들면 그래도 사람이 좀 오가는 정상 근처에까지는 간 다음 죽어야 헬리콥터라도 와서 시체를 운반할 거라는 그런 이상한 목적의식 아래 기고 또 기었다.

물론 올라가는 길에선 기기만 했고, 내리막길에선 거의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산 좀 타는 사람들이라면 일출을 정상에서 본다는 데 우린 일몰을 보기나 할지 몰랐다. 만약 그런다면 그건 거의 죽음을 의미했다.

물론 이것은 미란 자신에게 던진 운명의 한판승부였다. 뒤에 절벽을 두고 적과 싸우는……. 그러지 않으면 북한산도 정상을 올라본 적 없는 그녀가 어떻게 대청봉을 올라가 본다는 말인가. 산이 그렇게 못된 구석이 있는 건 처음 알았다. 올라가면 그곳에서 도시락을 까먹거나 야호 몇 번 하고 약수터에서 물 몇 바가지 시원하게 들이켜고 내려오면 되는 게 산인 줄 알았고, 당연히 산을 존경하기만 하기 위해 간 적은 없었다. 북한산같이 착한 산에는 바닥부터 음식점이 지천이었고, 누구랑 가느냐는 데 따라 메뉴가 달라졌을 뿐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은 적은 없었다.

때로는 계곡 넓은 바위 위에 상을 펴놓고 숯불 고기까지 구워 먹으며 사이사이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신선놀음도 했다. 적어도 미란에게 산은 아니 이 세상 모든 것은 맛있게 먹기 위한 애피타이저 역할이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 면에서 어딜 가도 도토리묵 정도는 맛볼 수 있는 산은 늘 정답고 푸근한 이모나 할머니 같았다.

그런데 이 못된 산은 뭔가. 어떻게 하나의 산이 이렇게 낙타 몇십 마리를 연결해 놓은 듯 계속 오르막내리막이란 말인가. 어쩌면 그때 누가 미란을 봤다면, 한 슬픈 영혼의 아니 영혼이 다 빠져나간 듯 보이는 여자를 봤을 것이고, 그때 등반대장이 그녀에게 가까이 갔다면 죽어가면서도 눈빛만은 증오로 타오르는 시퍼런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일찌감치 내빼서 어딘가 멀찌감치에서 그녀 가족이 자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느리게 느리게 기어오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주 현명한 일이었다.

올라가면 산장이 있다고 했다. 산장. 그렇다면 이 지옥이 언젠가 끝나는 지점에 벽난로가 활활 타는, 저번 겨울에 갔었던 스키장 아래 산장처럼 훈훈하고 팥죽도 먹을 수 있고, 얼굴을 빨갛게 구울 수 있는 산장이 있단 말이지. 그래, 모든 것은 언젠가 끝나. 이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극기도 아닌 슬픈 행군은 끝이 있을 것이고, 산장에만 가면 어쩌면 한바탕 울고 난 후 뭔가 억지스러운 멘트를 남편과 아들에게 날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래도 잘 왔지?’ 하는.

이반 데니소비치가 수용소에서 오로지 빵만 생각하듯, 추위에 손이며 발, 아니 온몸의 감각이 없어져 좀비처럼 움직이고 있는 미란은 불빛만을 생각했다. 따뜻하고 예쁜 불빛…. 방학 때마다 가던 시골 외갓집에서 어린 미란은 늘 할머니께서 일하시는 부엌 아궁이 앞을 차지했다. 볏짚이며 산에서 긁어모은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부엌 뒷벽을 차지하고 있었고, 불도 없이 어둑어둑한 부엌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는 가마솥 밑 아궁이는 언제나 작은 무대 같았다.

볏짚들이 그림책에서 본 발레리나처럼 일어섰다, 누웠다, 흐느적거렸다 하는 온갖 동작으로 춤을 추고, 불씨들이 반딧불처럼 날아다녔다. “염엽하기도 하지.” 아궁이 앞에 오도카니 앉아서 긴 나뭇가지로 불길을 조절하며 마냥 그 속을 바라보던 미란을 외할머니는 기특하다고 하시곤 했다.

산장에 가면 잠시 몸을 녹이리라.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뭔가를 먹으리라. 다행히도 아들아이만은 쌩쌩했다. 한 마디도 원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앞장서서 등반대장 노릇을 대신 하고 있었다. 어느덧 아침이 밝아왔고, 온 세상이 하얗기만 한, 아니 얼어서 허옇게 보이는 산길 속에 거의 정오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오는 사람들인지 간혹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해서 정상이 어디냐고 물으면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그 말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각자 응분의 대가는 치르며 살고 있으리라. 한 시간 넘게 걸어도 안 나오는 거리를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는 것이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니 조금 조금 하며 기운을 북돋우라고 한 말이겠지만 너무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죽지 않으니 드디어 정상에 있는 산장이 보였다. 이제는 남편이나 아들이 따라오든 말든 앞장서서 걸었다. 뒤돌아볼 기운도 없었고, 잠시만 발을 멈추면 그냥 얼어서 다시는 움직여지지 않을 것 같아 그랬다.

드디어 그토록 기대하던,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가장 애타게 사모해 본, 산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산장에 들어선 순간, 미란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가 컴컴한 것이었다, 대낮에. 또 다른 불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산장에 미리 도착한 사람들이 이미 자리들을 차지하고 앉아서 젖은 양말을 갈아신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게 추웠다. 바깥보다 조금도 따뜻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뭐지? 이 차갑고 얼음 공장 같은 공기는…? 벽난로가 집을 태울 듯 타고 있으리라 믿었다. 들어서자마자 훅하고 느껴지는 더운 공기를 마실 줄 알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축축하고 여전히 춥고 온몸이 덜덜덜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살얼음이 껴있는 물속에 반쯤 잠겨있는 것 같은 이 차가움, 이 저리도록 차가운 느낌….

그래, 이 느낌은 기억이 있다. 중학생 때였다. 해마다 성탄이면 그녀 교회에선 성탄절 전날 학생들을 모아 밤새 집집마다 방문했다. 대문 앞에 서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나면, 안 자고 기다리던 주인이 나와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밤새 이 집, 저 집 주로 산꼭대기에 있는 집들을 신설동 교회가 있던 곳에서 출발해서 정릉까지 돌고, 청계천 옆에 붙어있던 판잣집까지 돌고 나면 새벽 4시쯤 되었다. 그 일로 해서 하느님께서 그 언 발을 동동 구르며 올라가지도 않는 높은음의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열심히 불렀던 그 일행에게 남다른 복을 내리셨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도착한 교회에서는 아무도 그네들을 위해 하다못해 따뜻한 콩나물국 한 그릇 준비해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냥 그런 건가 보다 하고 다시 타박타박 추운 길로 나와 집으로 걸어가곤 했다.

그렇게 그럭저럭 늘 고정인원으로 끼어 돌던 성탄돌기를 하던 어느 해 겨울이었다. 이곳, 저곳, 산동네를 돌고 돌아 청계천 옆 판잣집 동네를 돌 때였다.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었고, 어둠에 묻힌 밤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미란에게 거룩한 밤은 아니었다. 개천 옆으로 난 길을 걷다 디딘 땅은 살얼음이 낀 개천이었고, 그 살얼음이 마치 설탕 녹여 만든 가짜 유리처럼 깨지고 내려앉으면서 미란이 빠진 것이었다.

결국, 근처 신도 집으로 가서 마당에 있던 수돗물로 대충 씻어야 했다. 얼음보다 찬물이었다. 그 집에서 준 치마인지 바지인지 하여간 누군가의 옷으로 갈아입고 하염없이 울면서 더는 비참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아마도 이때 진 빚을 하느님께서 언제 갚으실지 모르겠다.

평화시장에서 산 싸구려 오바를 입고, 추위에 곱은 손을 접었다 폈다 하며 당신의 탄생을 축하하며 알리고 다닌 미란에게 청계천이 얼마나 더러운 개천인지를 알게 하시려고 그랬다면 그건 확실히 성공하신 셈이다.

하지만 다시는 미란이 그 행렬에 끼지 않은 걸로 봐서 사춘기의 그녀가 이유 없이 감당했어야 할 그 날의 추위와 수치심, 그리고 배반감으로 범벅된 밤의 추억이 두고두고 아름다울 수 없었음도 분명하다.

한참을 둘러보고서야 조금씩 사태파악이 됐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산장은 없었다. 지금 미란이 들어선 미란의‘산장’은 다만 정부에서 운영하는 ‘대피소’였다. 그러니 모든 것을 헬리콥터로 날라 온다는 이곳에 그녀가 기대하던 지난번 스키캠프 갔을 때 갔던 ‘산장’의 역할은 없을 것이었다.

결국, 겨우 발견한 것이 컵라면이었다. 엄청나게 비쌌던 그 컵라면도 물이 없어 못 판다고 해서 남편이 지고 갔던 물을 주고야 사 먹을 수 있었다.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그게 그것인 그곳에서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다시 출발하고 있었다. ‘쉬지도 못했는데’ 하며 미란은 계속 등반대장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도대체가 이쯤 됐으면 산장에 도착했을 때 산악회 누군가가 뛰어 나와 ‘이제 오시느냐고, 고생 많으셨죠, 하하하’하며 미란의 얼어붙은 입에서 뜨믄뜨믄 나올 불평에 미안한 척하는 순서가 기다릴 줄 알았었다.

그래서 도착하기 얼마 전부터는 너무 심하게 몰아치지는 말아야지 하는 나름의 인격수양을 하며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이러시면 안 되는 거라고 다음에 미란처럼 당할 어떤 아줌마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 마디는 얘기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 준비한 순서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맥없이 취소되어 버리고, 아무도 미란처럼 적의에 차서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있지 않아 미란은 또다시 사태파악을 해야 했다.

“아줌마, 내가 이번에 대청봉 구경시켜 드릴게요.”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그 말대로 구경은 한 셈인가. 이곳이 대청봉에 있는 대피소라니 그가 말하던 구경이 이런 구경이었다면 그가 법적으로 책임질 일은 다 했다는 건가. 그런데 녹음되지 않은 그와 그녀의 전화내용에서 그녀가 분명히 북한산조차 정상을 올라 가 본 적이 없는, 평범하다 못해 좀 처지는 아줌마임을 밝혔는데, 이렇게 시치미를 떼고 몰라라 한다면 그건 ‘도덕상’의, 혹은 ‘직업 윤리상’의 문제와 분명 한 자락 연결되어 있을 것이었다.(여기서 미란의 회상이 진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만한 분들은 알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미끄러지며 꼬리뼈를 다친 일, 얼어붙은 쇠다리를 힘이 다 풀린 다리로 건너던 일, 도중에 남편이 허리가 아파 도저히 더는 못 걷겠다고 눈길에 누워버린 일, 그래도 기적처럼 귀환해서 세 식구가 청심환을 나눠 먹은 일, 목욕탕에 갔다가 자꾸 고개가 탕 속으로 빠져 익사할까 봐 그냥 나온 일…. 이 추억은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켰다.

지루하거나 힘든 일상에 부딪힐 때, ‘설’ 혹은 ‘대’란 단어를 꺼내면 미란 가족은 모두 잠시 오한을 느끼며 지금의 일상이 너무 편안하고 따뜻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마치 행복 바이러스 같았다고 할까. 지금도 그녀는 믿는다.호기심은 저질러 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도 대청봉을 오르고 있는 많은 분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끝>


오미란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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