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발자국 따라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36> 힐러리 발자국 따라

오문회 0 2187

에드먼드 힐러리가 즐겨 걸었던 와이타케레 산맥, 그 등반로로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초여름의 상큼한 기운을 품어냈다. 숲 사이로 등산 배낭들이 경쾌한 리듬을 타며 풍경처럼 움직였다. 힐러리의 웃는 얼굴을 새겨놓은 안내 푯말이 계곡 입구에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 했다. 언제 와 봐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힐러리 트레일(Hillary Trail)이다. ‘힐러리 트레일’ 은 오클랜드 시에서 와이타케레 산맥에, 힐러리가 주로 걸었던 코스 가운데 70km를 주요 등산로로 개발해 일반에게 개방해 놓은 곳이다. 힐러리 푯말을 따라걷다 보니 뉴질랜드의 영웅인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떠올랐다.

내가 힐러리를 처음 만났던 것은 뉴질랜드 5불짜리 지폐에서였다. 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아침, 출근 시간이라 정체가 심했다. 서둘러 갔는데 기다리고 서있던 할머니가 여객선을 놓치게 생겼다며 폭언을 퍼부어 댔다. 비상등을 깜빡거리며 진땀 나게 달렸다. 여객선 출발 직전에야 가까스로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화가 누그러진 할머니가 덤으로 지폐 한 장을 더 주더니 황급히 내렸다. 뉴질랜드 5불짜리 지폐였다. 그 지폐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에베레스트 산을 향하여 웃고 있는 힐러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의 미소가 어쩐지 나를 향해 격려를 보내는 듯했다.
‘수고했어. 세상사 모든 일이 등반같은 거야.’

힐러리 트레일이 산 정상으로 이어졌다. 등산길 시작이라 서서히 몸을 푸는 기분으로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며 걸었다. 우거진 숲길에 이르자 배낭을 짊어진 중늙은이들이 한 줄로 늘어섰다. 이민 와 십 수년을 정신없이 일하고, 자식농사 짓는 데 애쓰느라 머리들이 희끗해졌다. 이제야 일상의 한 구석 짬을 내어 산에 맛들여 사는 동료들. 경사진 길로 들어서자 말수가 적어지며 그저 묵묵히 걷기만 했다. 가파른 오르막에 이르니 숨이 턱 끝에 닿았다. 다들 지쳐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모양이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이 안경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다 보니 산 정상이 눈 앞에 다가왔다. 산 꼭대기에 올라서자 태즈먼 해협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산을 오르며 가슴을 조였던 배낭끈을 풀어 젖히니 온 세상이 다 들어왔다. 절벽 아래로 검푸른 파도가 거세게 부서졌다. 숱한 우여곡절을 거친 내 이민 생활의 추억들도 세찬 파도에 휩쓸려 나갔다.

내가 이민을 왔을 때는 40대 초반이었다. 당시 주택 경기가 좋았고 관심도 있어서 목수 전문학교에 다니며 이론 및 실습 교육을 받았다. 다행히 일은 많았고 바빴다. 그런데 공사 일정을 맞추려니 무리하게 일하는 경우가 잦았다. 전기 톱을 무리하게 사용하다 그만 고막이 나갔다. 결국 내 몸에 맞는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택시 운전을 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많은 운전을 하다 보니 십 년 세월이 금세 흘러가 버렸다. 그런데 하루 종일 좁은 운전석에 앉아 일을 하다 보니 배가 나오고 하체가 약해졌다. 예전 교통사고의 후유증마저 되살아나 팔다리가 마디마디 저리고 쑤셨다. 더구나 혈압수치까지 빨간 불을 깜빡였다. 주위에서 주말 등산하기를 권했다. 좋은 줄은 알겠는데 현실이 허락하질 않았다. 주택 융자금과 차량 유지비, 생활비들이 발목을 잡았다. 냉엄한 현실을 여러 날 고민했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아내의 말에 따라 주말 등산을 하기로 했다. 십 년을 별렀던 일이었다.

가파른 고개를 내려오는데 허기가 몰려왔다.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삶은 계란과 김밥 그리고 과일까지 펴놓고 함께 간 이들과 나눠 먹었다. 모두가 너나없이 게눈 감추듯 했다. 휴식을 가진 뒤 걸으니 한층 몸이 가벼워졌다. 경사진 길로 접어들자 고개를 숙인 채 앞사람의 신발 뒤꿈치만 보며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뚜벅뚜벅 등산화가 걸어갔다. 문득 힐러리는 어떤 등산화를 신었을까 궁금해졌다.

1953년 5월, 그가 에베레스트 산(8848m) 등정에 성공했을 당시는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이었으니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허술한 등산화였을 것이다. 힐러리는 허술한 등산화와 열악한 장비를 탓하지 않고, 그 부족함을 튼튼한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메워 가며 에베레스트 정상에 세계 최초로 올랐다. 그의 곁에는 충직한 셰르파 (S herpa) 텐징이 있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성공리에 마친 힐러리는 그에게 큰 힘이 되어준 셰르파 텐징의 나라 네팔 돕기에 나섰다. 빈곤한 네팔에 학교와 병원을 짓고 다리를 놓았다. 세계에 지원을 요청해 문맹퇴치에 꾸준히 힘을 쏟았다. 네팔을 돕는 일에 여념이 없을 무렵, 부인과 딸이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힐러리는 크나큰 상실 후에도 생애를 마감하기 까지 120번이 넘는 방문을 통해 네팔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 활동을 펼쳤다. 뉴질랜드는 힐러리가 펼친 불굴의 의지와 봉사 실천의 삶을 온 국민들과 나누고자 살아있는 영웅으로 그의 얼굴을 뉴질랜드 5불짜리 지폐에 담았다.

지난 밤 내린 비로 계곡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그 앞에 다다르자 가장 나이든 동료가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자기 아내 앞에 앉아 등을 들이댔다. 등에 업힌 아내는 남편의 굵은 목을 두 팔로 껴안았다. 노부부가 한 몸이 되어 개울을 건너갔다. 바닥이 미끄러운지 넘어질락 몇 번을 휘청거렸다. 개울을 건너자 아내가 무릎을 꿇고 남편의 발을 수건으로 닦아줬다. 발을 내어준 남편은 아내의 손과 자신의 발을 번갈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리막에 이르자 내딛는 발바닥에 중량이 쏠리고, 무릎이 덜덜 떨렸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걸음이 더 주춤거렸다. 올라갈 때는 힘이 들었고, 내려갈 때는 조심스러웠다. 먼데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발 아래로 보냈다. 좁다란 숲을 벗어나자 길이 완만해졌다. 울퉁불퉁한 산길에 익숙한 발바닥이 평탄한 길을 자칫 헛디딜 뻔했다.

힐러리 트레일의 푯말이 산 그늘에 우뚝 서 있었다. 푯말 속의 힐러리와 눈이 마주쳤다. 성취 뒤에 놓인 편안함에 머물지 않고 어렵고 부족한 이들을 도우며 살았던 힐러리처럼, 나도 성취만을 욕심내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작은 것 이라도, 진심으로 나누며 겸손하게 살아가고 싶다. 힐러리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봤다.
힐러리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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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미소 문학 수필 신인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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