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는 길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39>집으로 오는 길

오문회 1 1921

친구와 몇 시간 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이다.
어제까지 비바람이 심하더니 다행이 오늘은 화창하다.
장작불을 때어 가며 오래 기다린 봄에게서 받는
선물처럼 고맙다.
언제 나가든 들어와야 되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서둘러야 하는데 무엇을 하든 더 이상 헐레벌떡 거리는게 싫다.

바다가 보고 싶다.
서쪽바다의 힘센 파도를 뒤로 하고 잔잔한 옥빛 물결이 이는
동쪽으로 가기로 한다.

우리는 안다.
날마다 같은 해가 떠오르지 않듯이
오늘의 바다가 어제와 같지 않음을
바다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트이는 것은
우리의 풍상이 바다만큼 깊지는 않기 때문이다.
짜기만 한 바닷물이 우리의 마음을 소독하여 준다.
그래 잔잔한 바다로 가자.

간혹 찾아오는 사람들은 길이 멀다고, 꼬불꼬불하다고 불평이지만
한 동네에 오래 살으니
자주 다니는 몇 군데는 눈을 감아도 다닐 듯하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리라.

집을 나선 김에 도서관에 들려 아이들 책을 반납하고
잊지 않고 할 일이 있는 지 골몰하고 있는데
앞차가 도로공사 팻말도 없고
별 이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 길에 멈춰 선다.
나도 따라 재주껏 브레이크를 밟는다.
혹시 차에 고장이라도 났는지 움찔한 채 한참을 기다린다.
조금 지나니 엄마오리와 새끼오리들이
길을 가로지르는 게 보인다.
흔한 일이다.
단지 내가 올챙이알과 새끼오리가 태어나는 봄이 온 것을
잊고 있었던 게다.

에미오리는 새끼들을 보호하느라 더 차분히 뒤뚱거릴 뿐
놀라지도 않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현행범같은 몸짓으로 뛰며 살지 않는다.
모두의 몸에 밴 인내가 다정하고 자연스럽다.
늘 그러려니 하며 기다리다 지나쳤는데
순간 이 작은 존재들을 사람과 똑같은 비중으로
길을 나누는 문화에 새삼 닭살이 돋는 존경심이 일었다.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잃어도 세월 가면 잊으리!,
시간이 약이다는 마취제는 쓰지 않는다.
키가 크든 작든 몸집이 왜소하든 아니든 생명의 존엄함을
실천하며 공존하는 편안함,
죄를 짓지 않는 즐거움에 당당하다.

나는 오늘 내 나라에 살다가 다른 나라에 와서 사는 생견함 대신
다른 나라에 나가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따뜻함이
봄날의 햇빛보다 진함을 보았다.


운무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1 Comments
이운룡 2014.12.06 20:07  
잘 쓰셨네요. 수필 형식의 글인데 대상을 보는 시선이 참신함을 넘어 진솔한 감동으로 전해오네요.
오클랜드문학회 회원 남인숙님의 소개로 카페를 열어보았습니다.
한국의 계간문예지 [한국문학예술]지의 고문으로 있는 시인, 문학평론가입니다. 좋은 글이 있으면 저의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기성문인으로 등단하고 싶으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는 1964년-69년에 [현대문학]지에서 시 3회의 추천을 완료한 시인이고, [월간문학]지의 문학평론 신인상 당선으로 평론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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