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43> 지금여기

오문회 0 1833
  

비바람 치는 토요일 밤, 오클랜드 시내 와인 바에서 태운 택시손님을 바닷가 끝자락 세인트 헬리어스에 내려놓고 돌아 나선 길이었다. 미션베이 해변을 따라 시내 방향으로 오는데 거센 파도가 도로를 덮칠 듯 포효했다. 마침 볼일이 급하던 차에 반갑게도 바닷가 화장실이 눈에 들어온다. 택시 일이 바쁠 땐 소변 한 번 제때 보기가 힘들다. 급하게 해결하고 나오는데 화장실 건물 모퉁이에서 웬 인기척이 난다. ‘아니, 이 시간에 누가 …….’ 하며 주변을 살피니 한 남자가 어깨를 들썩인 채 거친 밤바다를 보며 울고 있다. 아시안 이민자 얼굴이다. “괜찮아요?” 조심스레 묻자 말이 없다. 시간은 새벽 한 시를 막 지나고 있다.

어느 아내의 남편이 울고 있는 것일까?  남편이자 가장인 나도 괜스레 가슴이 울컥하고 먹먹하다. 어려울 때면 비슷한 감정이 내 가슴 밑바닥에서도 웅크리고 있었던 터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한 이민자의 울음소리를 세상은 듣고 있는지. 깜깜한 밤만큼이나 어둡고 막막하기 그지없을 저 속을……. 이민자에게 있을 법한 온갖 어려움과 고민이 하나씩 떠오른다. 한참을 그 자리에 함께 가만히 서 있다 보니 남자의 울음소리가 차츰 잦아든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밤바다를 지켜보며 울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밤바다만이 말없이 이 남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것 같았다. 누구에게 가슴 아픈 속내를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나마 털어놓을 수 있는 자연이 자그만 위안이고 안식처다. 이렇게 한바탕 토해내면 자연이 포용하니 극으로 내 달리는 걸 막아주리라. 어쩌면 밤바다는 어려운 사람 앞에 닥친 풍랑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아닐까. 

힘든 사람에겐 거친 밤바다의 격랑처럼 내면의 고통 풍랑도 들끓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평화로운 해수면처럼 마음속도 잔잔해진다. 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는 것은 그나마도 좋은 선택이다. 술이나 도박, 아니면 폭력이나 자해로까지 갈 수도 있는 극한 상황은 피했다. 울음은 가슴속에 쌓인 슬픔과 아픔, 고뇌와 답답함을 씻어주고 치유해주는 영혼의 주사인지도 모른다.

아침나절, 열한 시쯤이었다. 오클랜드병원에서 택시 손님을 태웠다. 목발을 한 손님을 파넬 모텔에 내려놓고 보니 그 옆이 바로 아담한 옛날 성당이었다. 차를 세우고 잠깐 들러 마음을 쉴 겸 안에 들어가 앉았다.  한쪽 구석에 한 여인이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게 보인다. 웬걸, 일그러진 풍금소리를 토해냈다. 엉엉 울고 있었다. 먼 산에 흰곰처럼 웅크리고 있는 잔설(殘雪) 같았다. 햇살에 잔설이 서서히 스러지듯 여인의 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모두 녹아 내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참을 울다가 일어서는데 눈자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백인이 아니고 퍼시픽 아일랜더였다. 이민자의 낮 시간이었다. 여기엔 또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울음을 애써 참고 억제하면 눈물에 씻겨 내려가지 못한 슬픔으로 위장이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눈물이 헹굼이라면 울음은 빨래 같은 것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네 감정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서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기대했던 일에 실망할 때, 믿었던 사람이 불신으로 멀어져 갈 때, 거짓에 진실이 가려질 때, 보이는 것의 한계를 느낄 때, 건강에 적신호가 생겨 고통을 당할 때……. 옷에 때가 묻으면 빨고 헹구듯이 우리의 감정도 탁해지면 깨끗하게 씻어내고 햇빛에 말려야 하는 것.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 옷처럼 깨끗해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눈물의 정화 작용이 자연 치유력이고 명약보다 낫다. 잘 우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말도 맞다. 빠른 감정 회복이 필요하다.

단한 하루의 일을 마친 후, 샤워를 하고 나면 세상이 편안하고 퍽 아늑해 보인다. 어둑어둑한 저녁 창밖 너머에 뽀얀 평화가 가로등 불빛을 타고 내려앉는다. 일 나갈 때 싸한 새벽어둠과는 또 다른 여유가 흐르는 저녁 기운이다. 아내와 함께 저녁상 위에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를 한 숟갈 뜨면서 텅 빈 속을 달랜다. 낮에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나 고단함을 털어내는 시간이다. 간혹 좋은 영상이라도 틀어놓고 먹다 보면 작은 것에도 웃음이 나고 눈물이 난다. 개그 프로는 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다 빼놓는다. 속 시원하게 통쾌한 감정이 온몸을 달군다. 다 내 이야기려니 하며 공감이 들다 보니 개그 무대 속에 그대로 빠지게 된다. 내가 개그맨이 되고 개그 작가가 된다.

순수 자연을 배경으로 엮어가는 다큐멘터리에 시와 수필 같은 내레이션은 시 낭송회나 음악회에 참석한 느낌이 든다. 그 속에 빠져들다 보면 감동의 눈물도 나고 속도 찡해진다. 좋은 글이나 영상은 우리들 선한 감정의 눈물주머니를 터뜨려 그 눈물로 아픈 속을 녹여낸다. 눈물을 흘리고 환희와 공감 속에 들 때 내 영혼이 한결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웃음과 울음은 똑같이 우리 영혼을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지녔다. 마음이 피워낸 꽃이 웃음이라면, 마음이 빚어낸 보석은 눈물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웃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맘껏 웃고, 울 수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그땐 울어야겠다. 이따금씩 내 속에서 밤바다의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출렁거린다.

# 지금여기. 2014년 <에세이문학> 초회 추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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