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44 > 산책

일요시사 0 1914


처남에게서 전화가 왔다.

“별 일 없습니까?” 

“별 일 없지요?”

우리는 늘 하던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살 차이인데 우리는 존대를 해왔고, 좀처럼 허물지 않았다.

처남은 첫 직장을 지금까지 다니고 있었다. 30여 년 동안 처남은 아침 일곱 시 십오 분에 출근했고 정확하게 여섯 시 반에 돌아왔다. 눈에 띄거나 칭찬을 많이 받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다가 어려울 일에는 꼭 나타나는 그런 형이었다. 

처남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담배는 몇 년 전에 끊었다. 특별한 취미나 특기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지병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세 살 터울의 세 아이와 살고 있었다. 이민을 고민하면서 같이 떠나자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의 산소와 외로운 어머니를 걱정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조카들이 한 해에 한꺼번에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 그 해, 다시 한 번 이민을 오라고 권했다. 처남은 똑같이 대답하며 사양했다. 그리고 세 아이를 한꺼번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입학시켰고, 한국에서의 부모 노릇을 했다.

이민을 왔더라면 힘들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한때 쉬운 길을 두고 험한 길을 고집하는 처남이 어리석어 보였었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민을 가자는 말을 듣지 않아 자초한 고난이라고 여겼고,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이어졌던 처남의 고난은 큰아이가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한결 줄어들었다.지난 겨울, 작은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갔을 때, 한숨을 돌렸다며 처남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허물어뜨렸다. 비굴하거나 옹색하지 않은 얼굴에서 힘든 고비를 넘기고 한숨을 돌리는 여유로움과 보람이 느껴졌다. 나는 자식들 때문에 등골이 빠지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처남과의 통화는 길게 이어졌다. 아내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음 음 하며 대답만 했다. 중간에 아내는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왜 모르겠어. 라고 말했다.대학교에 다니는 둘째 딸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려고 하는데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화를 했다고 했다.

어렵겠지만, 어려운 줄 알지만 나를 봐서 딸을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었다. 아내는 처남이 보살펴온 친정어머니를 떠올렸고, 이내 받아들였다.아침에 공항에 가서 조카를 데려왔다. 커다란 가방에는 볶음용 멸치와 밑반찬들이 들어있었다. 좌석이 불편해서 한숨도 못 잤다면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에 들어갔다. 그날 조카는 저녁까지 잤다.

숨이 차서 산길을 걷지 못하게 되면서 대신 평지인 동네를 한 바퀴씩 돌았다. 골프장과 고등학교를 돌아오는 데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가려고 운동화를 신는데 조카가 따라나섰다. 그들은 앞서 걸어가는 내 뒤를 따라왔다.

“고모, 집들이 너무 예뻐요.”

“고모, 학교가 너무 멋있어요.”

“고모, 저도 매일 산책할래요.”

조카는 팔을 저으며 걸으면서 쉬지 않고 쫑알거렸다. 이번에는 반대편을 건너다보며 감탄했다. 마트를 지나고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반환점을 돌았다. 

“고모, 저건 무슨 차에요?”

길 건너편 도로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를 가리키며 물었다. 문자로만 된 번호판이었다.

‘WHTSUP’

뉴질랜드의 자동차 번호는 원칙적으로 알파벳 3자리와 숫자 3자리의 6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본인이 원할 경우,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6자리 내에서 자기만의 번호판, 아니 문자판을 달 수 있다. GHAZZI, DAVSON, HEE333 등 재미있는 문자판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박선생의 자동차가 그렇다. 책벌레인 박선생의 자동차 번호판은 한 대는 김치에서 따온 KIMCHI 이고, 다른 한 대는 장남의 이름이면서 문화원의 이름인 한솔의 영문표기인 HANSOL 이었다. 박선생은 그렇게 오클랜드를 누비고 다녔다. 가는 곳마다 쉽게 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교민들은 대부분 그 자동차를 알아보았다.

고속도로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반갑기도 하면서,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곤 했다.한국 사람인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저렇게 한국 사람이라는 티를 내고 다녀야 하나. 번호판을 돈으로 살 정도로 돈이 많은가.

유치원 근처 네거리를 지나갔다. 퇴근시간이어서 자동차들이 많았다. 자동차들이 부쩍 늘어났고, 교통 사정이 예전 같지 않았다. 다른 차들은 모두 천천히 가는데 구형 세단 한 대가 중앙선을 넘으며 앞질러나갔다. 건너편에서 마주오던 차들이 급제동을 했다. 큰 사고가 날 뻔한 순간이었다. 

“저런, 어떤 놈이야!”

잽싸게 도망가는 뒷꽁무니를 째려보았다. 번호판을 봤는데 문자여서 한눈에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문득 박선생의 번호판 생각이 났다. 박선생이 그런 번호판을 줄기차게 달고 다니는 것이 혹시 이런 뜻은 아닐까.

“나는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사람은 도로 위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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