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시작된 순간

손바닥소설


 

<글향기를 나누며 45 > 문학이 시작된 순간

오문회 0 2123


오전 열 시, 동네 카페에서 오 선생을 만났다. 감기 때문에 계속 기침을 하던 그녀는 차를 마시고, 나는 진한 롱블랙을 마셨다. 카페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넓은 창밖으로 푸른 잔디밭이 보였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그날, 진한 초록색 간판과 빨간 제라늄이 멋스러운 카페에 앉아 우리는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 선생은 콜록콜록, 훌쩍훌쩍 하면서도 어릴 적 백일장에 나갔던 일, 고등학교 때 시를 읽어주던 국어선생님의 목소리, 문예부장을 맡았던 이야기 그리고 뉴질랜드 여류 작가 자넷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아파서 일도 쉬었다는데 문학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낭랑했고 눈빛은 찰랑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아주 어릴 때부터 문학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당당함과 확신이 부러웠다.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라는 소설에 나오는 한 인물이 있다. 그는 주인공 다이스케와 취향이 비슷하고 말이 통했던 학교 친구였는데, 졸업하자마자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곧 부모님이 원하는 상대와 결혼했다. 

도쿄에 사는 다이스케는 시골에서 벌채를 하며 지낼 친구를 생각하여 귀한 문학서들을 구해 보내곤 했다. 친구도 말린 은어나 곶감 등과 함께, 책을 재밌게 읽었다는 감상문을 담은 답장을 보내왔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책을 보내도 받았다는 인사 편지조차 없게 되었다.

 다이스케가 잘 받았느냐 물으니, 책은 잘 받았지만 읽을 시간이 없었다, 아니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읽고 싶은 생각이 없다, 더 분명히 말하면 이젠 읽어봐도 이해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답신을 받는다. 그 다음부터 다이스케는 친구에게 책 대신 그의 아들을 위해 새로 나온 장난감을 보냈다.한때 나도 시를 읽고,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감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글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읽을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남의 이야기 같기만 한 소설보다는 실용서의 강렬한 제목이 더 눈에 들었고, 영어책이 더 급했다. 한마디로 장난감 선물이 더 좋았던 지난날이었다. 

오 선생과 이야기하면서‘나에게 문학이 시작된 순간은 언제였을까?’생각해 보았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일까? 학교 문집에 시를 써냈을 때부터일까? 고르고 골라 내 돈으로 책을 사고 아껴가며 읽었을 때부터일까? ‘읽기’가 문학의 시작일까, ‘쓰기’일까? 아니, 도대체 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을 뜻하는 영어의 ‘리터러처literature’라는 말은 원래 라틴어의 ‘리테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말은 ‘문자letter’라는 뜻을 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사용된 이 말의 의미는 물론 오늘날 문학이라는 말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글로 쓴 것을 읽는다는 뜻을 표시하였을 뿐이다. 근대적 형태로서 문학의 개념은 18세기 이후에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조선 시대의 기록을 보면 문학이라는 말이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넓은 의미의 ‘문(文)’이 있었을 뿐이다. 글쓰기와 글 읽기를 모두 포괄하는 ‘문’이라는 말은 좁게는 하나하나의 글자를 뜻하고 넓게는 교양과 지식 전반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삶의 도리를 익히는 수양의 과정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란 인간의 삶의 도리를 담아 놓는 그릇’이라고 하였다.

 글은 인간의 감성과 취향보다는 본질적인 가치의 영역에 해당한다.」-『문학의 이해』 , 권영민그렇다면 문학은 책을‘인간의 삶과 도리를 담은 그릇’으로 여기는 마음과 나만의 그릇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만나는 접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글을 설풋 읽는 것이 아니라 살을 걷고, 뼈를 발라내 듯 깊이 읽으면서 나만의 색깔이 있는 그릇을 만들고자 하는 꿈틀거림과 생각이 움트는 순간, 그때가 바로 ‘나의 문학’이 시작되는 순간일 것이다. 

일 년 전 이맘때쯤 나는 빛이 가장 따뜻한 시간에, 집 안에서 그 온화한 빛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책상에 앉아 수필문학교실의 숙제였던‘메밀꽃 필 무렵’을 베끼고 있었다. 오랜 만에 잡은 연필 때문에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글씨는 자꾸 틀렸다. 지우개로 지우고 또 쓰고, 줄을 빼 먹어서 지우고 또 썼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자 한 자 베껴 쓰며 공책을 채우던 그 시간을 나는 아직도 소중하게 기억한다. 그 이후 나는 조금 더 정확한 텍스트를 인용하고 싶었고, 더 엄밀한 문장이 쓰고 싶어졌으며, 내 생각이 무엇인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위로 받고 싶었다. 세상에 당신 혼자가 아니라는.

누군가“문학이 먹고 사는 데 꼭 필요하냐?”라고 내게 묻는다면 어쩌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그 쓸데없어 보이는 문학만이 내 삶의 가난한 부분을 비춰 풍성하게 만들어 준 기억이 있으며, 그 풍성함은 책을 읽는데 투자한 시간이나 돈에 견줄 수 없는 가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그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누가 권한다고 될 일도 아니요, 직업을 구하는 데, 돈을 버는 데 필요해서 할 일도 아니다. 그 안에서 나를 위로할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를 표현할 올바른 출구를 찾는다면, 인생의 팍팍함 속에서 문학은 나 자신을 소중히 하고 삶을 부드럽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두 시간여를 오직 책과 글쓰기 이야기만 하고 헤어지면서 나는 오 선생과 같은 문우가 있어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클랜드 문학회 회원

간서 (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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