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손바닥소설


 

<글향기를 나누며 47> 나무야 나무야

일요시사 0 2012


지난 9월에 로토루아에 갔었습니다. 교회 일로 다녀온 1박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날씨도 좋았고 아내와 더불어 하는 나들이라 오가는 길 순간 순간이 아름다웠습니다.

로토루아에 도착했을 때엔 어느덧 저녁 나절이었지만 숙소로 가기엔 아직 시간이 일러 로토루아에 가면 꼭 들리는 박물관 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이미 박물관은 문이 닫혔기에 차를 세워 놓고 걸어서 박물관 뒤편 길로 빠져나가 로토루아 호숫가를 거닐었습니다.

바람이 살랑거리고 호수의 물결이 찰랑거리고 그 위로 초 저녁 하늘엔 황금 빛 햇살 따라 구름들이 목을 길게 늘이고 아래를 바라다보며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정겹고 평화로운 풍경 하나하나가 작은 속삭임으로 가슴 속에 들어와 동화 같은 이야기를 터뜨리는 것 같아 나도 아내도 조용히 사방을 그러다가 한 곳에 이르렀을 때 너무도 아름다운 정경에 나도 아내도 그만 발길이 머물렀습니다.

로토루아에 많이 갔었지만 과연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저녁 풍경이 바로 우리들의 일몰, 호수, 겨울 나무, 작은 물새들, 이 아름다운 것들을 뭉뚱그려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었으면, 아니면 글로 엮어 한 편의 시(詩)로 쓸 수 있었으면 하는 탄식이 나왔지만 그런 재주가 없어 그만 아쉬운 대로 사진만 찍고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 자꾸 호숫가 풍경이 생각나면서 잠이 오지 않기에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글 한 편을 만들었습니다. 비록 글재주는 없지만 작은 새들을 소담스럽게 받아 준 나무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나무야 나무야 

 -로토루아 호숫가에서-  

나무야 나무야

너를 닮고 싶다

꽃 지고 잎 져도

빈 가지 부끄러워 않고

벌린 팔 거두지 않는 너의 자세

나무야 나무야

네게 배우고 싶다

마지막 열매마저 떨어졌어도

헐벗음 부끄러워 않고

마른 몸 닫지 않는 너의 자세

이 호수에 낮이 가고

저문 저녁이 다가올 때에 

나무야 나무야

네 빈 가지 마른 몸에

내려앉는 것은 어둠만이 아니구나

이 저녁 추운 호수에

날아드는 수많은 새들도

어둠과 함께 네 위에 내려앉는구나

이 새들을 기다리느라

바람도 견디고 추위도 견디며

빈 가지 마른 몸 

거두지도 닫지도 않았구나

나무야 나무야

이 호수에 빛은 가라앉고

바람은 자고 어둠은 더욱 짙어가는데

나무야 나무야

네 빈 가지에 새의 잎이 솟았구나 

네 마른 몸에 새의 꽃이 피었구나

네 밑동에 새의 열매가 쌓였구나

한창 때보다 훨씬 아름다운 네 모습

어둠 속에 더욱 빛나는구나

2014. 9월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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