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의 선물

손바닥소설


 

<글향기를 나누며 49>‘하림’의 선물

일요시사 0 2378


갓 젖을 빤 입 언저리가 불그스레했다. 조그마한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려놓은 듯한 코 구멍으로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인형에 박아 놓은 듯한 유리알처럼 새까만 두 눈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가슴에 안기어 도근도근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포송 포송한 ‘하림’이가 올려다 보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하늘 아래 이보다 더한 평화와 행복이 또 있을까 싶다. 

생후 100일을 이틀 앞둔 ‘하림’이를 트림 시키려고 꼭 안고 있었다.하늘이 준 생명의 신비가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날은 오클랜드는 겨울답게 하루 종일 날이 궂고 변덕스러웠다.기다리던 아내의 전화가 밤늦게 왔다. 어제 병원에 입원한 둘째 딸애가 어린애를 순산 했단다.

양수가 많아 예정일을 4일 남겨두고 유도 분만하는 것이 태아에 좋다는 병원의 권유로 어제 입원하였는데 어려운 진통은 있었지만 정상 분만을 했다고 했다.산모와 아기 ‘하림’이 모두 건강하단다.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태아의 이름을 지어 놓고 출생과 동시에 스스럼 없이 그 이름으로 부른다.  ‘하림’은 그렇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아기의 모습이 궁금했지만, 다음날 오후 면회 첫 시간에 맞추어 회복 실을 찾아갔다. 아직 핏덩이 일거라고 생각한 나의 상상과 달리 ‘하림’이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형체가 단단해 보였다.

놀랍게도 검은 머리카락이 숱도 많고 가위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길었다. 참 예뻤다, 얼굴 생김이 귀엽게 생기기도 했지만, 새로운 탄생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하림’이가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나에겐 간절한 바램이 하나 있었다. 둘째 딸은 남달리 어린애들을 예뻐하고 정이 많았다. 몸소 낳은 아이에게는 무한한 사랑은 쏟을 것 같았고 그 체험 사랑을 이웃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면 한층 더 성숙한 사랑 나눔이 되리라 생각 되여 한 아이의 출산을 기대 했었는데 결혼 6년 만에 ‘하림’이를 얻게 되니 기쁨이 더했다.

이제 나는 두 손자와 한 손녀의 외 할아버지가 되었다.나는 늦둥이로 태어났다.어머니는 세 딸을 줄줄이 낳은 뒤에 아들을 얻어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워오다 6년 만에 생각지도 못한 아들을 하나 더 얻었다.

손이 귀한 집의 아들이라 반갑기는 하였지만 39살 노 산에다 혼자서 감당해야 할 많은 집안 일로 너무나도 힘들었다.이번 낳은 자식이 정말로 마지막 이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름도 ‘막둥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18세에 시집을 왔다. 연하의 아버지는 시골 소작농의 양자였으니 일도 어지간히 많은 집으로 시집을 왔다.아버지는 장손답게 많은 일꾼 울 거느리고 농사일에 바빴고 어머니도 일꾼들의 끼니와 새참거리며, 집안일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정말로 아프고 싶어도 아플 틈이 없을 정도였다.

‘막둥이’가 태어날 무렵, 혼자되신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 약골이라서 집안 일에도 큰 도움을 주지 못했고 아이를 낳아 키워보지 않아 갓난 아이를 돌보는 일에도 서툴고 힘들어 했다.

어머니는 ‘막둥이’에게 잘 나오지도 않는 젓을 물렸고 젖이 모자라 보챌 때는  밥물을 먹였다. 가끔 유모처럼 보살펴준 이웃집 순창 댁 아줌마에게 젓 동냥을 하기도 했다. 유난히 젓 가슴이 늘어져진 순창 댁 아줌마는 ‘막둥이’을 등에 업은 채로 겨드랑 밑으로 젖을 물렸다.

‘막둥이’는 천을 잘라 만든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제때 갈아 주지 못해 흠뻑 젖은 기저귀를 하루 종일 차고 지내기도 해야 했다.옷도 수시로 오줌에 젖어 있다 보니 집에 있을 때는 아예 기저귀만 차고 있을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몸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였다.가끔 장날이면 아버지가 사온 잉어나 가물치 고운 것을 먹은 것이 보양식 전부였다. 어머니는 혼자서 그 많은 집안 살림과 오 남매를 키우면서도 농사일이 끝나는 늦가을이 되면 베틀에 앉아 길쌈도 했다.  말수가 적은 어머니는 남 몰래 가슴앓이도 많이 하면서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견디어 내셨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어머니에게 하루 일을 마치고 누운 잠자리에서 빈 젖을 빨며 옹알이를 하는 ‘막둥이’을 바라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고 유일한 휴식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둘째 딸도 ‘하림’이를 39살에 낳았다.

딸은 오직 ‘하림’이를 키우는 데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모유를 먹이고 부족한 양은 분유로 보충 하기도 하고 기저귀가 젖을 세라 수시로 일회용 기저귀를 갈아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욕을 시키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에게 시력과 청력의 발달에 맞는 갖은 장남 감으로 놀아 주기도 한다.노래도 들려주고, 책도 읽어주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정말 아이의 신체적 발육만이 아니라 정서 건강에 전념하느라고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하다 보니 손목의 인대가 늘어나고 어깨도 아픈 모양이다. 

물리 치료도 받고 무척이나 무서워했던 침 시술도 마다하지 않는다자기 몸 추수 리기도 힘든 아내는 그런 딸이 안쓰러워 ‘하림’이의 뒤치다꺼리를 대신 하고 산모에 좋다는 보양식을 수소문하여 정성스럽게도 딸에게 먹이려 했다.그러니 아내도 잠자리에서는 몸살을 앓듯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무리가 아닌 듯 하다. 딸에게 못다한 한을 ‘하림’이에게 보상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하림’이 일로 딸과 아내는 가끔 섭섭한 말투가 오가기도 하고 서로가 토라지기도 한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아이를 키우려는 신세대 육아법과 경험을 바탕으로 정성을 다해 키워도 됀다는 엄마의 생각과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인듯하다. 그래도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하림’이는 축복받은 아이임에 틀림없다.

‘하림’이를 더 꼭 껴안았다.해맑게 올려다 보는 ‘하림’이의 얼굴 위로 세월이 녹아 내린 듯한 골 깊은 주름이 많은 어머니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 올라 왔다.어머니의 볼에 나의 볼을 갖다 비비고 또 비볐다.

이천_오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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