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시죠’

손바닥소설


 

‘잘 계시죠’

오문회 0 1645
예전에 유홍준교수의 ‘문화유산답사’란 책이 집집마다 꽂혀질 무렵에는 그 책과 함께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이 공기속에 둥둥 떠 다녔다.그래서 많이 알기 위해 책도 읽었고, 직접 보기 위해 장거리버스에 두 줄 김밥처럼 앉혀져 처음만난 사람이랑 말을 트며 답사지로 가기도 했다.

이제 와 기억나는 것은 문화유산들이 아니라 유교수 자체인데, 함께 간 날 거의 밤이 다 되어 목적지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니 슬슬 피곤이 몰려왔다. 그런데 10시쯤이 되어 호텔 강당에서 내일 답사할 곳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참 언쨚을 정도로 아카데믹한 여행사였다.하지만 실제로 졸면서라도 그 강의를 들었는지는 기억에 없다.오직 기억나는 것은 강의가 끝나고 방방이 흩어져 자야될 시간에 그가 다시 몇 명의 팬(?)들에  둘러 싸여 꼿꼿한 채로 밤을 새우고 있었다는 목격의 현장이다.

저 에너지는 뭔가?그 순간 ‘그래, 성공한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와 함께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아니라 ‘본 만큼 안다’를 깨우쳤다.그리고 그 날 깨우친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경상도쪽 답사를 갈 때는 정말 순수한 학구적 목적만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꼭 비교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따끈한 찌게 냄비를 들고 다니며 ‘더 드릴까요?’하고 다니시던 건너편쪽 식당주인분이  두고 두고 생각나는 밤이었던 것만은 말하고 싶다. 나중에 그 곳에 고향을 둔 분에게서 ‘맛 없는 것도 덤덤히 맛있게 먹는다’는 훌륭한 자세를 설명듣고서야 그 날의 뭔가 억울했던 기분이 전적으로 내 이해의 부족임을 알았지만 말이다.

고국에 살 때, 자주 가던 한국형 일식집이 있었다.쉽게 말하면 어떤 상가 지하식당가의 한 코너를 차지한 음식점이었는데, 반 이상 텅 비어 썰렁하기 그지 없는 그 곳에서 그래도 그 집만은 늘 손님이 있었다.먼저 단골이던 친구로부터 ‘회덮밥’을 잘 한다는 소개를 받고 갔지만, 그 보기에도 먹음직하던  ‘회덮밥’은 결국 그 곳을 다니던 2년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 집에 또 하나의 메뉴가 있었는데, 바로 ‘생선초밥’이었던 것이다. 이 생선초밥이라고 하면 일식집에 가면 오로지 시키는 단 두 가지 메뉴, ‘새우튀김’과 ‘생선초밥’중의 메인이었다.남자들이라면 당연히 사시미를 시킬 것이고, 그로 인해 별별 작고 앙징맞은 스키다시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그런 식사를 할 것이다.물론 맥주나 일본사케, 혹은 메실주나 와인도 곁들이겠지.감사하게도(?) 나는 술을 못 한다.많이 먹지도 못 한다.눈 앞에 너무 많은 것이 왔다 갔다 하면 어지럽고, 나중에 ‘도대체 뭘 먹은거지?’하고 은근 속상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비록 초라하지만 상가 한 구석, 부부가 하는 음식점에서 금방 잡은(좀 잔인하죠) 광어를 떠서 아직 따뜻한 밥에 얹어 주던 생선초밥이 나에겐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은 딱 맞는 그런 것이었다.항상 10개의 초밥이 갓 담은 열무김치와 나왔는데, 9개쯤 먹고 있을 때면 ‘두 개 더 드릴까요?’하는 아저씨의 주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가 머리위로 들리는 것도 늘 똑 같았다.그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던 아쉬움은 지금도 남아 있다.

왜 난 10개만 먹으면 너무나 알맞게 배가 불러서 그 두 개의 호의를 못 받았는가 말이다.그렇게 좋아하던 곳이었는데, 방심한 채, 내 버려둔 채, 한 몇 달 못 갔다.그리고 다시 갔을 때 그 가게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아마도 거의 빈 상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기엔 너무 힘드셨나 보다 .한국 어디를 뒤져도 그렇게 정성스럽고, 알맞게 맛있던 그 생선초밥을 만들 수 있는 분은 드믈텐데…….

어쩌면 더 좋은 곳으로 가셔서 실력발휘를 하시고 돈도 많이 버시고 계실지 모르지만, 나에겐 분명 울어야 할 일이었다.누군가에게서 단 한 사람에게 바치는 사모곡 같은 음식대접을 받아왔었는데,그 좋은 인연을 잃어버린 그 날, 난 무척 미안했다.

그 이후 지하상가가 갑자기 창고같이 느껴져 다시는 발걸음을 못하고 말았다.지금 이 곳에 살며 가끔씩 한 숨이 나온다면 그런 것이다.그 아저씨는 지금 뭘 하실까.혹시라도 이 곳에 이민오시면 참 좋을텐데…..

그러신다면 절대 거르지 않고 규칙적으로 가겠다고 신앞에 맹세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 사세요? 잘 사시죠? 아줌마도 안녕하시죠? 나도 러브레타속 주인공처럼 허공을 향해 묻는다.

‘잘 계시죠?????’

-저자 오미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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