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계신가요 <최초로 뉴질랜드에 온 사람들>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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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17:26
<뉴질랜드 역사이야기 1 >최초로 뉴질랜드에 온 사람들
<950년경> 뉴질랜드에 도착한 최초의 사람, 마오리 쿠페(Kupe)
<1642년> 뉴질랜드를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 아벨 타스만
<1769년> 뉴질랜드를 점령한 영국인, 제임스 쿡
<1861년> 최초의 아시안 이민 – 중국인 남섬 금 채굴로 이주
<1960년대> 한국인 이주 역사
최초의 마오리 쿠페(Kupe)
약 천년 전(950년 경) ‘Hawaiki’에서 찾아온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의 첫 정착인이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최초의 마오리는 쿠페(Kupe)라고 한다. 쿠페는 마오리의 카누인 와카호루아 를 타고 별과 바닷물의 흐름을 따라 이 곳에 왔다. 천 년 전 쿠페가 처음 도착한 곳은 노스랜드의 호키앙아 항구로 추정되고 있다.
쿠페는 그들의 땅에서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하여 ‘Te Ika a Maui’(마우이의 물고기)라고 불린 이 땅을 발견했다. Kupe는 그의 항해사 Reti와 함께 전통적인 항해 법을 사용하여 약 60여명의 선원들과 아내, 아이들을 데리고 이 땅에 도착했다. 그 후 1150년, 1350년 등 두 번에 걸쳐서 하와이키와 인근지역에 살고있던 폴리네시안 (Polynesian)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유럽인이 처음 이곳으로 탐험을 해왔던 17세기 초 까지 마오리들은 모아새 등의 수렵과 어패류, 연근해의 수산물 등의 어로 생활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다.
Kupe 일행을 태운 카누가 육지에 다다를 즈음, Kupe의 아내 Hine-Te-Aparangi는 멀리 길게 뻗어있는 구름을 보고 ‘He ao! He ao!’ (A cloud! A cloud!)라고 외쳤다. Kupe는 이 땅을 ‘Aoteroa’라고 이름 지었고 이 이름은 ‘길고 흰 구름의 땅’ 이라는 뜻으로 현재 ‘New Zealand’와 함께 마오리 공식 국가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초의 유럽인 아벨 타스만
네덜란드의 탐험가인 아벨 타스만은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발견한 유럽인이다. 17세기 강력한 해상권을 휘두르며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세계에 식민지 개척 경쟁을 하고 있었다.
바타비아(Batavia-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파견되어 있던 네덜란드의 아벨 타즈만(Abel Tasman)은 신화와 전설 속에 구전 되 오던 '미지의 남쪽의 땅(그레이트 사우스 랜드-Tera Australis Incognita)'에 어마어마한 양의 천연자원이 많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을 향한 탐험을 시작한다.
아벨 타스만은 1642년 12월 13일 남섬의 웨스트 코스트 지역 호키티카(Hokitika)에 도착하게 하게 되고 뉴질랜드 남섬의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 북섬까지 탐사를 계속한 아벨 타스만은 이 땅에 '네덜란드 국회의 땅(Land of States-General)'이라는 의미로 'Staten Land'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몇 년 후, 이 이름은 네덜란드 남부 해안지방의 이름을 딴 '새로운 질랜드(Novo Zeelandia, 영어식 표현으로는 New Zeeland)'로 바뀌어서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의 뉴질랜드 이름이 된 것이다.
뉴질랜드를 점령한 제임스 쿡
뉴질랜드를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은 네덜란드인일지 모르지만, 뉴질랜드를 점령한 건 영국인이었다. 1769년 10월 6일 제임스 쿡 선장은 유럽인으로는 사상 두 번째로 뉴질랜드에 도달했다.
1768년 제임스 쿡 선장은 인데버호의 총 책임자가 되어 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항해했다.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관측하는 것이 임무였다. 1769년 1월 탐사대는 남미 대륙의 남쪽 끝을 돌았고 타히티에 내려 관측소를 설치하고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나 쿡 선장에게는 비밀 임무가 있었다. 남극 대륙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쿡은 남쪽으로 향하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뉴질랜드로 향했다. 뉴질랜드가 남극 대륙의 일부가 아닐까? 쿡 선장은 뉴질랜드가 남극 대륙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남북으로 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뉴질랜드가 영국의 영토임을 선언 하게 된다.
이 후 1770년, 1773년 두 번의 세밀한 뉴질랜드의 항해 끝에 비교적 정확한 뉴질랜드의 지도가 완성되고 이것이 영국 황실에 전달되면서 영국정부는 프랑스를 경계하기 위하여 이주정책을 선포하였으며 초기에는 주로 물개잡이, 고래잡이, 나무벌목꾼 등이 이 곳을 찾아 왔으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 된 것은 19세기 초 부터였다.
1838년 영국으로부터 초대 총독 에드워드 웨이크필드(Edward Wakefield)가 파견 되었고 후임으로 파견 된 윌리엄 홉슨(William Hobson)은 1840년 2월 6일 마오리 추장 대표단과의 협상을 성공하여 '와이탕이 조약(The Treat of Waitangi)'을 체결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