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Z여행] Campervan - 캠퍼벤 여행이야기(드니든/오마루/그라이스트쳐치 )

손바닥소설


 

[NZ여행] Campervan - 캠퍼벤 여행이야기(드니든/오마루/그라이스트쳐치 )

David Kwon 0 2372
Convoy 여섯 번째 마지막 날 드니든/오마루/그라이스트쳐치



드니든!
스코트랜드를 떠나서 가장 스코트랜드 같은 곳이라 칭송되는 전통의 도시이며 뉴질랜드에서 최고라는 치대,약대, 장로교 신학대의 시내의 일부가 그냥 캠퍼스인 오타고 대학, 날씨조차 스콧트랜드와 같이 춥고 습하고 거친 써던맨의 근거지라고 불리는 곳. 유럽의 이민사와 거의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민역사로 그 영향력이 큰 제 1세대 중국인 이민자들의 고향, 크라이스트쳐치가 가장 영국적이라서 크라이스트쳐치와는 경쟁자로써 엄청난 라이벌 관계가 럭비에도 나타나, 프로럭비팀인 크라이스트쳐치의 쿠루세이더와 드니든의 하이랜더의 경기는 항상 최고의 경기라 일컬어 지고 있기도 하며, 많은 All Blacks를 배출하기도 함. 거기에 Eco 환경에 걸맞게 펭귄 서식지를 보호하는 지역을 잘 꾸며놓아 관광지로도 유명하며, 뉴질랜드에서 유일한 중세의 성같은, 라나카슬과 올베스톤 하우스, 세계에서 제일 가파른 도로로 유명한 거리, 많은 아름다운 건축물로써 어느 도시 못지 않게 아름답고 가 볼만한 도시임에도 아직은 각광은 받지 못하는 곳입니다. 자신하건데,  역사와 자연이 함께 하는 좋은 관광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일찍 일어나, 오전에 주요 광광 포인트를 돌고 오후에는 크라이스트쳐치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하고는 각자가 편할대로 하기로 했읍니다. 캠퍼밴으로 할 사람들, 그냥 걸어서 할 사람들, 현지 투어를 할 사람들로 나누었읍니다. 저와 captain그리고 선생님 부부는 역시 조금 투자하고 가치를 창출한다는 의미로 2층 버스로 돌아보는 현지 투어를 택했읍니다. 영국이나,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에서나 볼 2층 버스. 완전 자가용처럼 이른시간에 독일부부, 영국 부부, 호주에서 온 두 친구, 프랑스의 가족, 그리고 저희만이 있는 쾌적한 투어 였읍니다. 마음 좋게 생긴 운전사 아저씨 농담도 잘해서 모두가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일조하셨구요.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큰 성은 아니지만 예전의 큰 저택의Olveston House와, 드니든 역사, 세계에서 제일 가파른 언덕길, 오타고 대학 건물을 둘러보는 인상적인 투어 였읍니다. 특히, Olveston House는 그 보존이라든지, 관리상태가 놀라울 정도이며, 고색창연한 가구나, 집기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경험이었읍니다. 너무나 기억하고 싶으셨는지, 선생님께서 금지 되어있는 촬영을 모르는척 한 컷. 나중에 사모님에게 질책을 받았지난 구수한 남도 사투리라 밉지만은 않았읍니다.


드디든 기차역 청사와 고색 창연한 모습에 스코틀랜드에 와 있는 모습이라는 어느 영국부부의 말 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건축물 아닌가하는 감상에 젖어 들었고, 오타고 대학의 캠퍼스와 하숙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돌면서는 예전의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예전  친구의 하숙집에서 놀던 시간들, 학교 뒷문에서 수업 듣기 보다는 따른 잡기에 정신이 없던 시절, 항상 장발에 불량 학생(?)으로 보였던 시절, 군대 갔다와서 정신차리고 상아탑의 본업에 충실하던 그 시절이 어제 같은데 이제 불혹이 지난 나이라. 감회에 젖기도 하는 시간들 이었읍니다. 다시 학교에 갈수 있다면 온정렬을 다해 열심히 그 귀한 시간들을 쓸텐데하는 회한까지..


참고로 Peninsula로 가면서 볼수 있는 Larnach castle, 코앞에서 펭귄 서식지를 관찰할 수 있는 등 볼만한 곳이니 다음에 독자분들 께서는 방문시 들려 보시길 바랍니다. 다음 기회에 또 알려 드리겠읍니다.

대략 바쁜 오전만 보고 이제는 점점 최종 종착역을 향해 가는 시간들이 아쉽기까지 하여 말은 안하지만 아쉽고 좀더 시간이 있으면 하는 눈초리들이 정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드니든을 떠난지 한 한시간쯤 달렸을까. Moeraki라는 곳에서 볼수 있는 자연이 이루어 낸 조화. 해변가로 줄이어선, 커다란 것은 지름이 2m는 족히 되는 돌 공이라고 할까요? 화산이 폭발하면서 급하게 해수와 접하면서 생성된다고는 합니다만, 신기하기 그지 없읍니다. 많은 그 커다란 돌 공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해변도 걸으며 점점 다가오는 시간에 촉박해 지기도 하는 것 일까요? 애라 모르겠다 해변가에 있는 카페에서 차한잔 하고 갑시다라는 건의에 모두 찬성!, Call! 이라고 외치는 것이 떠나기가 못내 아쉽다는 증거였으리라 봅니다. 아 이런 곳도 있구나하고 감탄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은 후 이어서 간 곳은  여기 였읍니다.

Oamaru 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타운, 저의 친한 친구가 큰 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어 잠시 들리려고 교회를 찾았는데, 그 고풍스런 모습과 스테인글라스의 모습이 경건하여 모두들 잠시나마 교회 안에서 마음을 가다듬기도 했구요.  원래 오타고가 고향이며, 가족 모두가 거기있고, 이제 부임한지 일년. 원래는 오클랜드에서 근 13년을 재직하다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과감히 안락한 곳을 박차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내려온 친구. 그런 그 친구가 존경 스럽습니다. 그친구가 마지막에 한말, 목회자는 한곳에 너무 오래있으면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그리고 자기는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하는 사명이 있다고 그래서 떠나야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고 했읍니다. 동서고금 좋은 말씀들은 어디나 같은 것이라는 것을 여기서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 느끼는 것 동감하리라 믿습니다?

하여튼 반갑게 맞으며 안내해 주는 교회가 또 다른 감동을 줄 줄은 누구도 예상 못했읍니다. 종교를 떠나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경건함. 친구가 여기에 오면 반드시 가야하는 전망대가 있다고 안내 주면서 간 곳은 바로 도시의 정상에서 해변가를 한눈에 볼수 있는 공원.모두가 놀래면서 여태까지 뉴질랜드에서 봐온 경치와는 또다른 장관에 오랜만에 흥분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면서 준비된 그 공원에서의 피크닉겸, 점심은 백만불짜리 View에 꿀맛 같은 점심 시간 가는 줄 모랐읍니다. 드디어 여기도 헤어 져야 할 시간, 모두가 친구와 아쉽게 작별하고 가려는 길에 Art Deco라고 불리우는 시대적인 건축양식입니다, 

Napier에 가서도 보이는 50년대 쯤의 건축양식이지요. 아름답운 모습에 그냥 갈수 없어 역시 찰칵하며 서서히 크라이스트 쳐치를 향해 가는 저희. 언제 다시 와 볼까 하는 얘기가 여기 저기서 나오는 듯한 분위기, 이제 서서히 크라이스트쳐치를 향해 마지막 피치를 다하고 정진하여 도착하니 어느새 적녁 시간이 다가오고 모두 분주하기 시작했읍니다.

원래 마지막 날은 모두가 모여 같이 BBQ하며 아쉬운 이별의 파티를 하기로 한 상태, 누구는 고기, 누구는 밥, 누구는 반찬, 누구는 음료와 주류, 누구는 후식과 과일이라 복불복으로  정하고  시작한 준비는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더욱 즐겁고 모두가 같이 한 준비였읍니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불판에 고기를 올려 놓으며, 시원한 맥주에 와인에 음료수에 일차 건배를 하며 서로에게 무사히 끝낼 수 있어서 누군가에 감사하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자연에 감사하며, 잘 이끌어 준 Captain에게 감사하는 웃음기 넘친 축사와 함께 이제 경험한 지난 일주일간의 애기를 꺼내는데, 배꼽 떨어지는 줄 모르고 웃다보니 시간은 가고 있었읍니다.

이미 자정, 캠프장의 관리자가 다가와서는 너무 늦은 시각이니,  야외 BBQ장에서 실내로 옮겨 달라는 정중한 요청에 아 역시 마지막까지 배운다고들 감사하며 움직여서 또 한시간. 서서히 하나둘씩 캠퍼밴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드는데, 역시 마지막까지 모든 정리하고 있는 Captain에게 감사하다고 손 꽉잡고  같이 정리하고 늦게 눈 부쳤읍니다.  그리고는 내일 마지막 시내에서의 관광으로 우리의 일막 일장은 여기서 잘 마무리 하자고 애기하며 눈을 감는데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내일이 어떤 의미이며 무었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면서 그렇게 잠들었읍니다.

2011년 2월 22일아침이 밝고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에 아침부터 모두가 바쁩니다, 한시간이라고 더 알차게 보내겠다고 일찍부터, 짐정리하고, 화장실, 부엌의 오물 버리고 청소를 끝내고 오전 투어 후에는 이제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캠퍼밴을 반납하면 되는 꽉 짜여져 있는  하루. 즐겁기만 했읍니다. 모두가 그렇게 마지막 날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읍니다.

우리는 역시 마찬가지로 알차게 보내기 위해 현지 투어를 이용했읍니다. 오전에 가 볼곳은 다보는 것이죠. 잘 정비된 공원 Mona Vale에, 크라이스트쳐치 시내, 보타닉 가든, 개인이 운영하는 가든에서의  Tea Break, 크라이스트쳐치를 한눈에 볼수 있는 산 정산에 가서 관망하는 시내는 또 다른 절경이 었읍니다.  아시죠? 크라이스트쳐치는 정원의 도시라고 일컬어지는 사실. 거기에 다 교외로 벗어나 Littleton 까지 가서는 오는길에 수제 초코랫 카페에서 차한잔 하며 하는 다과와 쵸코렛은 모두가 이구 동성으로 여태 태어나서 먹어본 중 최고의 쵸코렛이라고 감탄하며 끝으로 선물로 하나씩 사기 시작했읍니다. 우리의 Captain이 유럽 여행에서 경험이 많았는데, 쵸코렛 맛이 정말 좋다며 칭찬하더라구요. 저렴한 일반 쵸코렛은 아니었읍니다. 저는 원래 그다지 좋아 하는 편이 아니라 그냥 한 봉지 집사람을 위해… 그리고는 서서히 시내로 돌아 와서는 마지막인 Punting을 하려고 출발지에 가서 check을 했읍니다.

친절했던 그리고 럭비 얘기로 금방 친해진 드라이버와 인사를 나눈뒤 헤어지고  기다리던 중 모두가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아주 어릴적 서울의 광화문, 종로, 서울역등에서 다니던 전차인 Tram도 타보기로 했읍니다. 무사히 돌아보고는 드디어 Punt에 올라서는데 그야말로 마지막을 멋드러지게 장식할 Avon 강에서의 Punting은 그야말로 영어말 그대로 “Icing on the Cake” 이었읍니다. 뱃사공격인 친구는 영구의 대학생인데 뉴질랜드로 OE(Overseas Experience)를 위해 와서는 Part time으로 일한다고 하더군요. 아주 멋있는 영국 엑센트가 잘 어울렸읍니다. 그야말로 짧은 시간에 할 것은 다한 상태라 역시, “Value for Money” 라는 말을 절감한 오전 투어 였다고 이구 동성으로 애기하고는 이제 시내에 가서 대성당 구경하고 점심먹고 선물좀 준비 하고는 떠나자고 말을 한후 걷기 시작했읍니다.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지금 우리가 어떤 시간으로 다가다고 있는지도 모른체.. 다른 분들도 시내 어디서 좋은 시간 갖고 있으시리라, 조금 뒤늦게 합류할 가수 부부도, 교수님 댁 가족도 모두 나중에 공항에서 재회 하리라 믿으며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또 좋은 경험담에 즐거운 시간이 되리라 굳게 믿으며 광장에서 열심히 즐기는 시각. 저는 저희 회사 일본 직원과 전화로 잡담을 하고 있는 순간 이었읍니다.


날시도 좋고 여느때와 같이 복잡하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뉴질랜드의 아이콘인Cathedral Square와 성당의 앞은 여느때와 같이 평화롭고 나름하기 까지 했읍니다.
그리고 12시 51분,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며 태어나 처음 듣는 듯한 괴상한, 공포가 엄습하는 기분 나뿐 소리와 함께 온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 했읍니다. 그 울림과 소리는 아직도 저의 뇌리에서 벗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서있지 못해 주저 앉았는데 이게 뭣인가 하는 순간, 바로 앞에 있는 성당의 타워가 마치 거인의 손에 있는 장남감 처럼 흔들 거리는가 했더니 벽돌 하나하나가 분리되며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마치 스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었읍니다. 나도 모르게 뛰기 시작 했읍니다. 무슨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었읍니다.


겨우 정신 차리고 둘러본 주위는 먼지로 안보였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성단안에 갇히셨다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오신 선생님부부, 충격에 아무 말이 없는 captain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서로에게 감사했읍니다. 무사해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는 무작정 캠핑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면서 겪은 계속된 여진은 형용하기 어려운 공포요, 두려움이었읍니다. 그저 걷는다는 것 밖에는 목적이 없는 그래서 그나마 안전 할지 모르는 캠핑장으로 가자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는 아무 말없이 마냥 걸었읍니다. 우연히도 다른 팀과도 연락이 되어 캠핑장으로 집결이라는 결론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도착한 캠핑장은 서서히 내리기 시작한 비로 조용했지만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사람들과 생면 부지의 남이지만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껴안아주고 격려하는 모습, 먹을 물을 만들기 위해 주변의 주택에서 가지고온 BBQ버너로 끓이는 빗물, 탱크에 고인물,  캠핑장에서 공급한 과자류, 물을 얻기 위해 비를 맞고 줄서있는 모습들. 이 모든 모습들이 모든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평생 갖고 가야할 할 기억이리라 봅니다.

어떻게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까, 설왕성래 하던중, 결국, 제일 안전한 것은 캠핑장에 있는 것이 어디로 밤중에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선택이라고 결론맺고 먹을 것, 물등을 사려고 주변에 겨우 하나있던 Dairy에 도착하자, 빵이나, 먹을 것은 매진, 겨우 물과 음료수, 쵸코렛, 파이, 고자, 등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그나마, 조금 먹을 것이 있는 것이 다행이라, 욕심내지 않고 내일까지 버틸 수 있게만 준비하자고 의견을 같이 하고 있던중. 알게된 사실은 주인도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안전과 가족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에 자기가족을 위한 빵마저 내놓는 모습, 이런때 혹시나 있을 수 있을 폭리를 위한 가격상승보다는 있는 그대로 팔 고있는 백발의주인과 그 가족들. 현금아니면 안되는 상황에서 서로가 양보하던 사람들. 너무 경건했읍니다. 이것이 사랑 아닌가! 그리고는 밤을 지세우는 긴긴밤은 길고도, 적막했읍니다. 모든 것을 이제 운에 맞길수 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모두 그다음날 정말 운이 좋게 바로 특별기로 오클랜드를 거쳐 모두 서울로 돌아가게 됬읍니다. 그야말로 운이 좋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이 많은 사람들의 구출을 위해 힘쓴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지금도 믿습니다.     


이제 서서히 마무리 지어야 할 듯합니다. 원래 이 부분은 쓰지 않기로 했읍니다만,  이 것 조차 공유 해보자 그래서 뭔가 뜻 있는 일이 되어 보자 과감하게 용기 내어 썼읍니다만, 여기까지만 하렵니다. 더 이상은 진행 하기가 제 스스로가 힘드는군요. 

독자 여러분 기회가 되시면 아직도 추위와 불확실의 불안정에 떠는 크라이스트쳐치의 누구엔가 사랑의 손길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 누구이든 상관 없읍니다. 사랑의 손길이 그들을 힘나게 할 것이며 일어서게 할 것입니다.         


          
 적십자사에 연락 하시면 되리라 봅니다.                                   
http://www.redcross.org.nz/2011christchurchearthquake
To donate
All funds will be used towards the New Zealand Red Cross response to the February 2011 Christchurch earthquake to assist people and communities affected. Funds will NOT be used for Red Cross administration costs, staff salaries or be sent overseas to support other disasters or the work of New Zealand Red Cross. Money will be used in a range of ways including the provision of goods, cash grants and other 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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