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역사이야기] 뉴질랜드 도시의 역사 이야기

손바닥소설


 

[뉴질랜드 역사이야기] 뉴질랜드 도시의 역사 이야기

Global Mobile07… 0 2038
Napier


Napier는 북섬의 동쪽에 있는 혹스베이 지방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다. 수도 웰링턴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는 약 57,000명이며, 남쪽으로 약 10km 가면 헤이스팅스(Hastings)라는 타운이 있으며 네이피어와 함께 "쌍둥이 도시"라고 불리고 있다. 또한 네이피어는 뉴질랜드 최고의 사과, 서양배, 와인의 산지이기도 하다. 네이피어 항구는 냉동고기, 양모, 펄프 등을 주로 수출하는 항구 도시이다.
이 마을에 유럽계 이민자들이 이주한 것은 1800년대 중반이다. 그 당시에는 현재 혹스 베이 공항과 마레와 지구의 주변은 바닷물이 섞인 습지이며, 당초 비위생적인 콜레라 등의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1900년대 경부터 급속도로 발전해 간다. 당시 주변의 평지는 폭풍우 때 바닷물에 침수되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로 블러프 언덕을 따라 살고 있었으며, 당시의 중심지는 현재보다 약간 북쪽 언덕에 있었다. 홍수 대책으로 세워진 것이 높이 약 50㎝의 콘크리트 바다 방파제이며, 1892년 당시 네이피어 감옥의 죄수를 동원하여 세워졌다. 현재도 일부는 흔적이 남아있으며, 네이피어 감옥이 블러프 언덕에 존재했다. 현재 그 감옥 건물은 "감옥 백패커"로 관광객이 묵을 수 있는 숙박지로 개조되었다.
1931년 2월 3일 혹스베이(Hawkes Bay) 지진에 의해 네이피어는 괴멸적인 피해를 받았다. 이 지진으로 지반이 최대 4m 상승하고, 습지가 경작지와 주거지로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 시가지의 부흥은 당시 유행했던 아르데코 양식(Art Deco-style)의 건축 디자인으로 통일하여 이루어 현재 세계 유수의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물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가 되었다.





Invercargill


인버카길 (Invercargill,마오리어: Waihōpai)은 뉴질랜드 남섬에서도 최남단 도시로, 전 세계의 최남단 도시 중 하나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좋은 육류와 양모를 생산한다. 1년마다 700만 마리의 도축을 겸하여 냉동업이 발달하였다.
인버카길의 항구가 되는 블러프(Bluff)는 도시로부터 남부로 27 킬로미터 떨어져있다. 육류와 양모를 떠나서, 이 지방의 주요 수출품은 곡물과 비철금속이다.
1100년대에 마오리족이 현재의 사우스랜드 지방에 정착하고 해산물, 조류 등을 사냥 활동을 시작한다. 부족은 바위 등을 재료로 공예품을 제작했고, 부족의 공예품은 뉴질랜드 전역에 공급됐다..
1700년대 후반에 유럽에서 조사선이 내항하여 1800년대 초반에 유럽인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829년에 고래잡이를 목적으로 하는 선원들이 정착을 시작한다. 마오리 여자와 결혼하는 유럽 사람들이 늘어나고 점차 인구와 정착민이 증가한다. 1848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오타고 지방의 더니든에 정착해온 장로교 교회의 교인이 토지를 매입하여 목축을 시작하여 스코틀랜드계 이주민에 의한 개척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 후 아마를 자아내는 공장이 주변 지역에 설립되었다.
1858년에는 호주에서 가축을 수입했기 때문에 이전 뉴질랜드 총독이었던 토마스 브라운에게 이곳에 항구를 설치해 달라고 진정한다. 브라운은 항구 설치를 인정하고 정착촌을 인버카길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인버(Inver)는 스코틀랜드 게일어로 "inbhir"로 표시하며 하구를 의미한다. 카길(Cargill)은 당시 오타고 경시였던 명예 함장 윌리엄 카길에서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그런 역사로 인해 인버카길(Invercargill)로 표기한 지금도 스코틀랜드 사투리 "인바카고"로 발음된다.


1860년대에 금광이 생겨나 인구 증가도 대략 10년만에 끝이 난다. 골드러시로 인해 경제적 번영을 추구했던 역사적 흔적은 더니든 시 뿐만 아니라 시내 곳곳에 세워진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 에드워드 건축에서 엿볼 수 있다. 1861년에 오타고 주에서 독립하여, 1861년부터 1870년까지 사우스랜드 주로 독립했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결국 오타고 주로 재편된다. 1867년에 블르프에서 인버카길까지 약 27 ㎞ 구간의 철도가 개통된다.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걸쳐 농업, 낙농업이 활발하져 유제품 가공 공장, 냉동 육류 가공 공장이 설립되었으며, 1891년부터 1916년 사이에는 인구가 약 두 배로 증가했다. 현재는 사우스랜드 지방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