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 위에서

손바닥소설


 

외줄 위에서

오문회 0 1670
외줄 위에서 / 복 효 근 


허공이다 
밤에서 밤으로 이어진 외줄 위에 내가 있다 
두 겹 세 겹 탈바가지를 둘러쓰고 
새처럼 두 팔을 벌려보지만 
함부로 비상을 꿈꾸지 않는다 

이 외줄 위에선 
비상은 추락과 다르지 않다 
휘청이며 짚어가는 세상 
늘 균형이 문제였다 
사랑하기보다 돌아서기가 더 어려웠다 
돌아선다는 것, 
내가 네게서, 내가 내게서 돌아설 때 
아니다, 돌아선 다음이 더 어려웠다 

돌아선 다음은 뒤돌아보지 말기 그리움이 늘 나를 실족케 했거늘 
그렇다고 너무 멀리 보아서도 안 되리라 
줄 밖은 허공이니 의지할 것도 줄밖엔 없다 
외줄 위에선 희망도 때론 독이 된다 

오늘도 나는 
아슬한 대목마다 노랫가락을 뽑으며 
부채를 펼쳐들지만 그것은 위장을 위한 소품이다 
추락할 듯한 몸짓도 보이기에는 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외길에서는 
무엇보다 해찰이 가장 무서워서 
나는 나의 객관 혹은 관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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