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오문회 0 2910
선산에 아버님을 묻은 지 반년이 지났다. 살아 계실 적 못한 효도가 내내 맘에 걸리는 지 남편은 자주 산소를 찾아 손을 본다. 그저께도 산소에 다녀온 남편이 잔디도 파릇파릇 살아나고 주변에 진달래, 조팝꽃이 한창이라고 말했었다. 

어제 종일 비가 오더니 오늘은 씻은 듯 공기가 맑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맨몸의 햇살을 집안으로 들렸다. 화분들이 좋아 한다. 몇 년 동안 꽃을 피우지 않던 군자란이 그동안의 내 손길이 미안했던지 무더기로 꽃을 피웠다. 

겨울에도 꽃을 놓지 않던 제라늄은 꽃숭어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고, 사랑초도 꽃대를 쑥쑥 밀어 올리는 중이다. 다른 화분들도 새롭게 저를 키우느라 분주하다. 작년에 너무 작아서 긁기가 힘든 더덕들을 껍질들과 함께 화분 속에 버렸었다. 그 위에 흙을 덮어 올 봄에 상추씨를 뿌렸는데 상추들 사이로 더덕 싹이 올라와 허공으로 헛손질을 해대었다. 

가는 막대를 꽂아 주었더니 눈도 없는 그것들이 그 막대를 의지해 제 몸을 쭉쭉 뽑아 올리고 있다. 내가 주는 손길에 화답하는 손짓 같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물론 우리가 손길을 보내는 모든 것들, 화초들까지도 사랑의 온기가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서로를 이어주는 것 같다. 지금 한창 손을 내밀고 있는 베란다 화초들 속에 나는 아주 익숙한 손길 하나를 감지한다. 

허공을 휘저으며 뭔가를 전하려는 듯, 잡으려는 듯 절박하던 아버님의 손이 맥없이 쳐졌다. 온몸을 휘감아 올리는 거친 마지막 호흡보다 먼저 손이 숨을 놓은 것이다. 어머님께서는 가시는 길 어지럽다고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게 내게 손짓을 하셨다. 울음을 참으니 숨이 컥컥 몰아칠 때마다 몸이 들썩거렸다. 입술을 깨물고 어깨를 들썩이며 나는 아버님께 마지막 손길을 내밀었다. 자꾸만 떼는 시늉을 해 기저귀를 빼 낸 탓에 아버님은 면 티 하나가 살아 입으신 마지막 옷의 전부가 되었다.

 팔십 사년 동안 아버님의 혼이 머물렀던 집은 삭막했다. 온기나 풍성한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목이었다. 나무와 다른 것이 있다면 서서히 번지는 검푸른 멍이었다. 나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멍이 퍼지는 앙상한 몸을 닦기 시작했다. 

얼굴, 목, 가슴을 닦고 생의 시작이며 끝이기도 한 생식기와 항문을 닦는 내 손은 떨리었다. 긴긴 여정을 잘도 저어오신 두다리와 발, 발가락 하나하나를 닦았다. 수건을 빨아서 다시 닦기 시작하는 두 팔과 손은 온기가 증발되었다. 나는 내 뜨거워진 손으로 한마디 가 없는 사늘한 아버님의 오른손을 꼭 감싸 쥐었다. 

남편과 맞선을 보고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던 날이엇다. 아무 말 없이 계시던 아버님은 차 시간 때문에 일찍 일어서는 내 손을 덥석 잡으셨다.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자꾸나." 그것이 그날 아버님이 처음으로 내게 하신 유일한 말이었다. 그 순간 아버님의 손은 내 의식을 확 잡아당기는 고리가 되었다. 요철처럼 들어간 오른손 둘째손가락이 내가 들어가야 할 빈자리로 느껴졌던 것이다. 

벼 타작을 하다가 탈곡기에 그 한 마디를 잃고도 아버님은 일흔이 넘어 논밭이 아파트 단지로 바뀔 때까지 변함없이 농사를 지으셨다. 그리고 여든이 넘어 치매가 오기 바로 전날까지도 아무런 불평없이 어머님의 잔심부름을 다 하셨다. 어머님도 약지 하나가 작두에 끝이 잘려나가 손톱의 절반만 남아 뭉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봄이면 산에 가서 산나물을 뜯고 여름에는 버섯을 따오시곤 한다. 그 부족한 한 마디 때문에 조금도 일을 불편해 하시거나 일을 겁내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잘려나가고 뭉텅한 손가락으로도 불평없이 일해오신 아버님 어머님에 비하면 나의 일이라는 것은 너무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아버님 어머님께 정성을 다하지 못했었다. 나는 속죄하듯 손가락 하나, 하나를 천천히 닦았다. 아버님의 몸을 닦는 내 손의 움직임이 한 마디 한 마디 용서를 비는 기도였다.

 아버님은 내가 새색시 옷을 벗기도 전에 오남매 자식들에게 당신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나와 살겠노라 선포를 하셨다. 오남매 막내 며느였던 나는 이런 아버님의 일방적 선포로 인하여 동정보다 시부모님 사랑을 독차지 한다는 부러움을 샀다. 그렇다고 물려받은 유산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선물이나 용돈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이 놀랄까봐 맘 놓고 큰 소리로 울지도 못했다. 그래도 부인 할 수 없는 것은 실컷 울어보는 것이 소원이던 때조차 아버님의 손길은 나를 견디는 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난 세상에서 네가 제일로 소중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번번이 내 맘에 느슨해진 끈을 조이셨다. 그 끈은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자각하게 했고, 그러므로 살아내게 했다. 내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물질적인 풍요보다 더 큰 재산임을 나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알았다. 알아도 가난은 불편하고 사람을 자주 지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늘 일을 핑계 삼아 내 손을 아꼈는지 모른다. 조금만 형편이 더 나아지면 더 잘해야지 했었다. 이제는 형편이 더 나아진다 해도 내 손이 미칠 수 없는 곳에 계실 아버님이 서늘해서 서러웠다. 그래도 내 품에서 돌아가셨으니 아버님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일까. 뜨거운 내 손이 당신 몸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하고 손에 힘을 실었다. 물수건으로 닦기를 끝내고는 탈지면에 알코올을 묻혀 다시 한 번 아버님의 몸으로 내 손을 뻗힌다. 

알코올은 얼음처럼 차다. 금방이라도 차다고 벌떡 일어나시면 좋겠다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은 고요 했다. 살이 접힌 주른 속에 빽빽하게 새겨져 있음직한 많은 말도 침묵으로 차갑다. 앙상하게 드러난 가슴뼈 하나하나에 나이테처럼 굽이굽이 휘몰아치던 고통이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거뭇한 사타구니는 화마火魔가 지나간 숲처럼 수많은 바람에 쓰린 생채기 같다. 

한 세기 가까이 육신을 떠받치던 두 다리와 치매를 앓는 동안 고와진 발뒤꿈치까지 냉정한 알코올을 묻혔다. 알코올로 닦은 몸을 젖은 눈으로 찬찬히 훔친다. 마음을 거둔 손으로 솜을 떼어 몸의 열린 문들인 구멍들을 막았다. 발가벗겨져 숨통이 다 막혔는데도 아버님은 기척도 없다. 수의를 꺼냈다. 

수의만큼은 좋은 것으로 하고 싶다는 어머님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년 전 두 분의 수의를 장만해 두었었다. 병원에 가시면 염을 다시 하겠지만 기저귀를 빼고 면 티를 벗긴 알몸으로 보낼 수 없어 나는 경험도 없으면서 내 손은 그렇게 아버님과 이별식을 하는 것이었다. 마치 내 손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게 속바지 저고리와 바지저고리를 입혔다. 옷을 입히는 동안 옷에서 무수히 날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수의는 앙상한 아버님의 몸을 이불처럼 푹 감쌌다. 버선을 신기고 악수를 끼우니 어머님께서 하얀 천금을 덮으셨다. 이렇게 아버님께 하는 나의 생소하고도 익숙한 손 인사는 끝이 났다. 

아버님이 계시지 않는 집, 몇 달 동안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퇴근해 현관문을 열면 주무시다가도 "왔나?" 하며 당신 방문을 열고 나오시던 아버님이었다. 뭘 좀 드릴까 물으면 손을 저으며 "자거라."하며 문을 도로 닫으셨다. 맨 처음 내 손을 잡아 당신 식구로 나를 이끈 아버님의 한 마디 없는 손, 그 빈 곳이 내 자리라 여겼던 생각이 얼마나 맞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 평화로웠고, 그 무덤에 새싹이 돋고, 주변에 진달래, 조팝꽃이 한창이고 새들이 즐겁게 노래한다니 믿는다. 아버님께서 손을 놓으셨으나 손을 잡았을 때 이미 굳어진 사랑의 끈은 내가 죽는 날까지 그대로 계속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화분마다 내 눈을 즐겁게 하는 손짓들이 아버님의 손짓만 같아 눈물겹다. 참으로 눈부신 손짓이 내 맘에 초록물로 번진다. 

좀처럼 손을 내밀지 않는 나도 이제 자주 손을 내밀어 춥거나 망설이는 손을 먼저 덥석 잡아야겠다. 손은 때로 얼굴 표정보다 입으로 하는 말보다 더 깊은 말을 한다. 아버님께서 처음 내 손을 덥석 잡으셨을 때, 나는 그 굳은살의 사라진 한마디 손이 하는 말에 내 맘이 묶이는 것을 느껴었다. 그 때 아버님께서 손을 잡는 대신 "난,네가 정말 맘에 든다. 꼭 내 며느리가 되어다오." 그랬다면 난 그렇게 성급한 결혼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친정 엄마가 첫 상견례 때 속옷이 나오는 짧은 치마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나오신 어머님의 모습에 맘 놓았다 하신 것처럼, 나 역시 아버님의 말없는 그 손길에 맘 놓았던 것 같다. 손이 말보다 진실한 것은 표정이 아닌 마음의 기운이 담긴 때문인지도 모른다. 

손, 세상으로 내미는 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한 가닥의 끈이다. 끈과 끈이 만나 꼬이고 엮어져 굵은 밧줄이 되는 것처럼 이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서로의 손을 잡고 힘을 모으기도 하고, 손을 들어 비판하기도 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나의 손이 얼마의 힘을 가진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손을 잡거나 내 손을 잡는 누군가가 따뜻하고 포근하게 엮어지는 마음의 끈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이 기쁠 것 같다. 지금 내게로, 세상으로 줄기차게 손을 내밀고 있는 화초들이 참으로 장하고 용감하다. 

저자 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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