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꿈을 꾸는 노인

손바닥소설


 

사자 꿈을 꾸는 노인

일요시사 0 1288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에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노인이 등장한다.
작가의 다른 걸작들인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의 주인공들이 모두 혈기 왕성한 피끓는 청춘들이며, 조국, 혹은 자신이 믿는 이상을 위해 전쟁터에서 젊은 생명을 아낌없이 불태우는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노인과 바다’ 의 주인공인 산티아고는 70을 넘긴 노인이다. 총칼이 무성한 전쟁터에서 자유를 위해, 이념을 위해 싸우기는커녕 하루하루 고기를 잡아 입에 근근히 풀칠을 해가는 늙은 어부다.
과거에는 유능하고 힘세기로 소문났지만, 영광의 시절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 서서히 그 불빛을 잃어가듯 어느덧 불씨만 남아 잿더미에서 절절히 끓듯이 젊은 시절의 힘은 사라지고 84일째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해 마을 사람들의 놀림거리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그물을 손질하고, 주낙을 준비하고, 미끼를 빌려 85일째의 고기잡이에 나선다. 그리고는 큰 청새치와 처절한 사투를 벌인 끝에 결국은 엄청난 크기의 고기를 잡아 올린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들의 습격을 받아 결국 뼈밖에 남지 않은 청새치와 함께 실패한 채로 돌아오게 된다.

‘노인과 바다’를 읽는 내내, 독자들은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노인은 버틸 수가 있었던 것일까?
 그가 은퇴한다 하더라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능한 어부로서의 과거의 명성 역시 지킬 수 있었을 것이며, 가난하긴 했지만 그를 따르는 착한 소년 마놀린과 짖궂지만 인심좋은 이웃들은 그의 노후를 충분히 돌보아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사람들의 조소와 안타까운 시선을 등진 채, 긴 시간, 자그마치 84일동안이나 자신을 외면했던 바다로 향한다.

노인의 조각배보다도 훨씬 더 큰 청새치는 애초부터 노인이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었다. 장정 4,5명이 달라붙어도 끌어올리기 힘든 거물이 걸렸을 때부터, 누구보다도 바다의 경험이 풍부한 노인은 이를 직감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3일 밤낮을 허기와 갈증에 시달려 가며 청새치와 싸우는 것을 선택했고, 끝내 고기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포기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다.

피냄새를 맡은 첫 상어가 그 징그러운 지느러미를 수면에 드러냈을 때, 노인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3일 밤낮이나 청새치와 싸우며 끌려온 망망대해에서, 이미 온전히 청새치 고기를 가지고 돌아가는 것은 다 틀렸음을, 누구보다도 바다를 잘 아는 그 노인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작살로 찌르고, 노에 칼을 매달고, 배의 키를 부러뜨려 가면서까지 상어와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노인은 실패한 채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오랜만의 숙면을 취하며 사자 꿈을 꾼다. 자신의 우상인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그의 상징인 투쟁하는 붉은 사자의 꿈을.

누가 이 노인에게 실패한 패배자라 말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이 노인의 행동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과론으로만 본다면, 이 노인의 3일간의 사투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하나 남은 작은 조각배는 부서지고, 작살과 그물을 잃어버린 실패, 대실패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노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를 향해 조소를 보내지도,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경외감 어린 시선을 보낼 뿐이다.

헤밍웨이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이 작품. 독자들과 평론가들은 결코 노인의 실패를 읽은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투쟁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감동을 받은 것이리라.
만일 그가 노인이 아니라, 30대 건장한 청년이었다면, 그의 여정은 놀라웠을지언정 아름답지는 못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이웃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좋은 장비와 배, 유능한 조수를 빌려 고기를 낚아 올렸다면, 그는 성공했을지언정 경외받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흔히 도전은 젊은 사람들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해 보자. 
도전해보고 싶은 뭔가가 나타나더라도, ‘난 이제 젊지 않으니까’, ‘더 이상 풍파에 휩싸이기 싫어서’라며 나이 탓을 하면서 더욱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를 나는 차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 말은 노인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나이가 적다고 젊은 것이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늙은 것이 아니다. 현실에 변명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가 늙은 것이다.
나는 나고 자란 고향과 낯선 땅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게 아름다운 도전을 하기를 꿈꿔본다. 노인은 작중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다. 인간은 파괴될 순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때 이미 모든 것을 잃고, 상어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니, 사자 꿈을 꾸는 모든 노인들에게 축복 있으라. 포기하지 않고,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는 인생이야말로 실로 가치있는 것이니.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후회할 필요도 없다. 이미 그 도전,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기 그지없으니까. 

김재동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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