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5편] 아킬레스건

손바닥소설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5편] 아킬레스건

일요시사 0 1320

Tina가 거실 와인 저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낸다. 손 감촉이 익숙한 피노노어 레드 와인이다. 뉴질랜드 말보로우 산지에서 생산된 20년 차 와인답게 품격이 느껴진다. 남편 Tony가 특히 즐겨 마시는 바람에 Tina의 입에도 익숙해져서 자주 손이 간다. 오늘 밤은 너무도 특별한 날이다. 폭우 쏟아지는 밤, 산속 외딴집에 Tina 혼자다. 뉴질랜드는 7월 겨울비 오는 계절을 맞아 2주간 학교방학 중이다. 학교가 겨울 방학 캠프를 열었다. 프라이머리와 인터미디에이트에 다니는 두 아들이 작년처럼 캠프에 참여했다. 남편은 무역 업무로 어제 피지에 출장을 떠났다. 비바람이 회오리 소리를 내며 집 뒤 나무들을 휩쓸고 간다. 은은한 조명 아래 거실 창가에서 밖을 내다본다. 와인 잔을 들고 홀로 자작한다. 안주는 잭링크스, 뉴질랜드 쇠고기 육포다. 우적우적 씹어먹는 맛이 그만이다. 진한 와인이 섞여 입안이 텁텁하다. 회오리바람 소리가 거들어주는 바람에 와인 기운이 가슴속에 휘몰아친다. 축배용으로 쓰는 큰 와인 잔에 다시 가득 붓는다. 낮에 교회에서 남 장로와 대판 싸운 일이 아직도 분이 안 삭여졌다. 남 아픈 아킬레스건을 툭툭 건드리다니. 

 

‘주책바가지 영감탱이, 남 노인네가 실성해도 그렇지, 사리 분별도 못하고… .’

 

***

 

예배 후, 점심때였다. 오클랜드 디딤돌 교회 식당 홀이 발칵 뒤집혔다. 두 남녀 싸움질로 언성이 천장을 뚫나 싶었다. 싸움 진원지는 입바른 소리 잘하는 남 장로 입이었다. Tina가 교회 급식 구역 봉사를 하던 중, 사달이 벌어졌다. 점심으로 차린 소고기 무우국밥을 Tina가 노인들이 앉아있는 식당 홀로 나르던 중이었다. 큰 쟁반에 다섯 그릇을 담아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두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고 세 그릇째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뒤쪽 식탁에 자리 잡은 남 장로의 입에서 비난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뉴질랜드 현지인, 키위 남편하고 사는 한국 여자들 문제라니까. 영주권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너무 헤프게 구는 게 아냐? 한국 위신 다 손상하고말야. 나이 차이가 열 살을 넘어도 상관없다나 봐. 젠장”

  

나이든 남 장로의 무용담 섞인 말투가 Tina 귀에 깨진 사금파리처럼 박혀 들었다. 순간, Tina의 눈알이 확 돌았다. 갑자기 쟁반을 남 장로 식탁에 탁! 하니 내려놓았다. 이어 Tina가 납 장로의 면상에 불을 토해내듯 속사포를 내리갈겼다. 

  

“뭣이 어째? 뚫린 주둥이라도 할 소리 못 할 소리가 있지. 당신 말 다 했어? 그래, 나 키위하고 결혼해서 영주권 받았다. 그게 뭐가 어때서? 한국 위신 다 손상하는 건 남 장로 당신이라고! 뉴질랜드 정치인 윈스턴 피터스 같은 이가 당신 같은 아시안들 혐오하잖아. 멀쩡한 몸 놀리면서 일 않고 수당 받는 것! 뉴질랜드에 세금은 안 내고 받을 것만 찾아다니니 얼마나 가시 같겠어? 실업수당, 연금 수당 온갖 베네피트는 다 받으면서 부끄럽지도 않나. 당신 수당, 내가 카운트 다운에서 일하고 낸 세금으로 받는 줄 알아!”

  

“아니, 저 여편네가 미쳤나? 어디다 대고 지랄이야. 행실이 부끄럽지도 않나? 되려 똥 뀌고 성내는 구만”

“남 무대포씨! 부끄러운 건 당신이라고! 우리 교회 이름이 뭔지나 똑똑이 아셔! 오클랜드 디딤돌 교회라고. 당신은 디딤돌은커녕 걸림돌이구. 그것도 구린내 나는 왕 걸림돌! 에이 재수 없어!” 

 

“정상적으로 제대로 살면 누가 뭐라나? 있는 소리 한 걸, 뭐 그리 찔리나? 왜 저 난리야? 위아래도 모르고, 저런 게 걸림돌이지. 사악하구만. 그 성질이나 되니 그렇게 살지. 애들이 따라 할까 걱정되는구만. 같은 민족끼리 결혼하라는 것, 성경에서 왜 말했겠어? 순수성이 훼손되니까 그러지.”

 

 ”뉴질랜드, 이민 국가인걸 모르시나? 세계 207개국가중 196개국에서 이민 온 자들이 모여 만든 나라라구. 그런 마당에 동족끼리 결혼하라? 겉만 멀쩡하고 속이 더러우면 뭐해? 뉴질랜드는 열심히 일하고 세금 내고 나누며 사는 나라라구. 남한테 민폐 끼치지 않으며 살고 개인 프라이버시 보장받는 나라! 일 않고 골프장에 우 몰려다니며 룰 안 지키고 소란 떨고, 낚시터 지저분하게 하고 고기만 잡아가는 사람. 누가 좋아하겠어. 그래서 ‘골낚’이란 나쁜 소리를 듣지.”

“그래 내가 ‘골낚’이냐? 낚시해서 신선한 고기 많이 잡았다. 회 떠서 병상에 누운 성도들에게도 갖다 줬다. 그것도 죄냐? 중국 사람들이 한 걸 나한테 씌우네. 골프도 한국에서 사역 온 사람들 데리고 구경도 시켜줄 겸 골프도 쳤다. 교회 돈 안내고 내 돈 냈다. 그것도 배 아프냐? 사고방식이 사악하구먼!”

  

“사악하긴? 바로 당신이지. 수확한 거지 근성에 민폐형 신자이면서 근엄한 척하고. 나이만 앞세우고. 당신 같은 사람은 뉴질랜드가 원하지 않는다고. 뉴질랜드에 득이 되는 게 있어야지.”

  

순간, 참을 수 없다는 듯 남 장로가 국그릇을 집어 들어 Tina 머리를 향해 던지려던 찰나였다. 마침 소란한 소리를 듣고 달려온 당회장이 남장로 팔을 잡았다. 갑자기 국그릇이 남장로 윗도리와 바지에 쏟아졌다. 팔을 걷어 붙이고 몸 싸움이라도 할 듯 달려들던 Tina는 여 선교회장과 담임목사가 막았다. 몸싸움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간신히 둘을 갈라놓았다. 당회장이 남 장로는 데리고 회의실로 갔다. 담임목사와 여선교회장이 Tina를 좌우에서 감싸듯이 해서 선교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의자에 앉자마자 Tina는 목사 앞에서 퍽퍽 울었다. 여선교회장이 Tina를 꼭 껴안아 주었다. 등을 토닥여주었다. 목사가 Tina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주었다. 한참 지나자 분노의 감정이 수그러들었는지, Tina가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닦았다. 그 사이, 여 선교회장이 따뜻한 유자차 석 잔을 가져왔다. 한 잔씩 들며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세상에, 교회라는데 와서 이렇게 상처 되는 소릴 들어도 되는가요? 한국에서 첫사랑에 쓰라린 실패를 하고 죽을까 생각도 했어요. 세상이 어떤가, 친구가 피지 선교 가는 팀에 합류시켜줬어요. 거기서 남편 Tony를 만났지요.” 

  

이어 Tina는 뉴질랜드 생활 이력을 털어놓았다. 남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이고, 어머니는 피지 인도계였다는 사실. 남편은 아버지의 일, 무역 일을 배워 현재도 그 일을 해오고 있다는 점. 그 남편을 따라 뉴질랜드 와 살면서 영주권을 받은 일. 아들 둘 아빠를 빼닮아 키도 크고 훤칠하며 머리도 금발인 점. 뉴질랜드에 살며 한국 사람들 만나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일. ‘키위 남자와 사는 구만. 팔가 센가 봐’ 그 소리를 들으면 노이로제가 됐다는 점. 한국에서 외국 뉴질랜드까지 와서 새로 시작하는 인생 이모작에 역풍을 만났다는 느낌. 어떤 인연으로 디딤돌 교회로 옮겨와서 나름으로 열심히 산다고 했는데… . 오늘 교회에서 나이든 남장로까지 그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바람에 꼭지가 돌았다는 이야기까지. 목사가 Tina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며 달랬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 사람을 보지 말고 말씀을 보라고. 그때, 청소년 교육 준비 다됐다고 목사에게 전화가 왔다. 목사가 선교 사무실을 나가며 쪽지 하나를 Tina에게 주고 갔다. 집에 가서 펴보라는 말을 남기고.

  

***

 

홀짝홀짝 와인 잔을 연거푸 비우다 Tina가 일어섰다. 몇 시간이 지났나? 천장의 전등이 그네처럼 오락가락했다. Tina 정신도 비틀거렸다. 그런 와중에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목사가 준 쪽지를 손가방에서 꺼냈다. 가만히 불빛에 대고 들여다봤다. 머리에 불꽃이 튀겼다. 그냥 주머니에서 꺼내 준 말씀 쪽지였는데 어떻게 이런 말씀이… . 그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듯한 욥기의 말씀이었다. Tina가 자살하려던 때, 피지 선교를 따라가서 한 달간 봉사하며 성경을 처음으로 한번 완독한 적이 있었다. 다 읽고서 성경에 딱 한 줄 밑줄 그 말씀이었다. 

  

“일을 당하여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 사람을 보지 말고 말씀을 보라고.’ 목사의 위로 말까지 겹쳐졌다. Tina도 남 장로의 아픈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긴 했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약점이 까발려지면 격분하기 마련 아닌가? 왕이 역린(逆鱗)을 건드린 신하에게 격노하듯 입술로 서로 난타전을 한 것. 남 장로도 이 시간 끓는 속을 못 삭일까. 어차피 쌍방과실이니 죄는 죄다. 죄를 짓는 입술이 주책이지. 휴~우~

 

 커튼을 밀치고 창밖을 내다 보니, 비 그친 밤하늘에 수척해진 달이 홀로 시린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

 

 # Lynn :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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