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12편] 무슨 낙으로

손바닥소설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12편] 무슨 낙으로

일요시사 0 1510

악몽이었다. 수의사에게 넘겨져 마취 주사를 맞았다. 끝도 없는 수렁 같은 잠에 빠졌다. 

이 세상 생을 마감하고 저세상으로 가는 마법의 수레에 실려 갔다. 내 몸의 소중한 부분이 

쑥 빠져나갔다. 난 껍데기만 남은 듯 허전했다. 가까스로 눈을 떠보니 딴 나라였다. 

난 없었다. 난 뽀비가 아니었다. 오클랜드 시티카운슬에 등록된 내 이름 앞에는 

De Sexed Dog란 특수어가 붙었다. 난 죽은 몸이었다. 

눈이 휑했다. 세상이 노랬다.

 

 

2층 창가, 테이블 위에서 밖을 내다보고 지낸 지 몇 시간째인가. 누군가가 그리운 시간이었다. 사람이나 개나 마찬가지 아닌가? 주인어른은 새벽에 일 나가고, 안방마님도 오후에 일터로 떠난 뒤. 큰집은 온통 내 차지였다. 내 지정석 소파에 앉았다가 심심하면 거실을 이리저리 거닐어도 보았다. 부엌 쪽에 있는 물그릇에 물도 한 모금씩 혀로 핥아 목을 축여도 보고. 뭐 먹을 것 없나 두리번거려도 봤다. 용케 주인어른 컴퓨터 책상 위에 놓인 과자 한 개가 내 레이더망에 걸렸다. 야호! 코를 벌름거리며 입이 벌어졌다. 발로 과자를 당겼다. 바닥으로 과자가 툭 떨어졌다. 과자 속에 크림이 얹어있어서 맛이 연하고 녹았다. 햇살이 내리쬐는 데크 쪽 마룻바닥에 누웠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보드라운 햇살이 내 몸을 나른하게 해줬다.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 나비를 쫓는 꿈속에서 나도 훨훨 날아다녔다.

 

***

 

이 집에 입양되어 오고서 한 해가 흘렀을 즈음이었다. 주인어른의 친구 부부가 방문왔다. 자연스레 난 살갑게 꼬리를 흔들며 나댔다. 그분들도 날 귀엽게 쓰다듬어 주었다. 여기까지면 딱 좋았을 텐데. 난데없는 사달이 벌어졌다. 방문한 부인 마님이 하도 강아지를 좋아한지라 나를 찌 대고 장난을 쳤다. 그저 좋아서 마냥 풀어지다가 일이 터졌다. 쉬야를 할 시간이 훨씬 지나다 보니 아랫도리가 탱탱해졌다. 

 

“어머머! 이 녀석이 넘사스럽게… “

 

“아니? 이런 버릇없는 녀석 봤나! 대낮에 무슨 짓이야?”

 

부인 마님이 놀라는 통에 다른 분들이 나를 보더니 호통쳤다. 주인어른이 개라지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를 물건 던지듯 내려놓고 문을 닫았다.

 

“강아지 어렸을 때, 디섹스(De Sex. 중성 수술)시키세요. 안 그랬다가는 아까처럼 시도 때도 없이 거시기를 빨갛게 곳 추 세운다니까요. 우리는 작년에 시켰어요.”

 

주인어른 친구분이 디섹스를 권유했다. 주인어른과 안방마님은 전혀 생각도 못 한 일을 보고서 당황했다. 친구 부부가 권유하는 디섹스는 그렇게 야단법석 부린 통에 졸지에 이루어졌다.

 

다음 주, 주인어른이 평소와 달리 일찍 출근하며 나를 차에 실었다. 영문모를 일이었다. 어쩐지 이상했다. 아랫도리가 떨렸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한 곳은 주인어른 친구 분이 소개해준 파파토이에 있는 동몰병원(디섹스 전문)이었다.

 

‘아이구머니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미리 와서 깨갱거리는 다른 개들을 보면서 심장이 팔딱거렸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은 육감으로 알아채고 쌩 똥을 싼다고들 하는데, 그와 별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미물이라는 개로 태어났어도 수컷의 역할 한번 못하고 꺾어지다니.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리며 낑낑대고 있었다.

 

“뽀비야 잘 참아. 오후 퇴근길에 찾으러 올게”

 

주인어른은 대사 읽듯 말씀하고 출근길에 늦을세라 총총 사라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뒤로 이루어진 일은 생각조차 하기 끔찍했다. 악몽이었다. 수의사에게 넘겨져 마취 주사를 맞았다. 끝도 없는 수렁 같은 잠에 빠졌다. 이 세상 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으로 가는 마법의 수레에 실려 갔다. 내 몸의 소중한 부분이 쑥 빠져나갔다. 난 껍데기만 남은 듯 허전했다. 가까스로 눈을 떠보니 딴 나라였다. 난 없었다. 난 뽀비가 아니었다. 오클랜드 시티카운슬에 등록된 내 이름 앞에는 De Sexed Dog란 특수어가 붙었다. 난 죽은 몸이었다. 눈이 휑했다. 세상이 노랬다. 퇴근 길에 주인어른이 나를 찾으러 왔다. 날 쓰다듬으며 달랬다.

 

“우리 토비 수고했네. 애썼어. 집에 가서 푹 쉬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사라진 뒤였다. 이럴 때, 개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했다. 누구한테 물어도 못 보고 혼자 끙끙대며 하버 브리지를 건너 노스쇼어로 넘어왔다. 집 앞에 이르니, 빨갛게 물드는 석양빛이 서럽게 느껴졌다. 그 속으로 날아가 녹고 싶었다. 눈물도 말라 나오지 않았다. 속으로 가만히 되뇌었다.

 

‘이제 나는 죽은 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방마님이 나를 꼭 껴안으며 눈물이 글썽했다. 첫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 난 꿈쩍 을 안 했다. 곡기를 끊었다. 허기(虛飢)는 타는 목마름을 재촉했다. 물만 겨우 홀짝였다. 드디어 난리가 났나 싶었는지 주인어른이 안방마님에게 나직이 말했다.

 

“뽀비한테 괜히 디섹스 시킨 게 아냐?”

 

“글쎄 말이요. 남의 얘기 듣고 그렇게 빨리 서두를 것도 없었는데.”

 

“뽀비는 나대는 애도 아니었는데~ 한 번 실수를 단칼로 쳐 버린 것 같아.”

 

일주일, 열흘, 보름을 나는 누워만 있었다. 한 달이 맥없이 흘러갔다.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때가 되어도 먹고 싶은 생각이 뚝 이었다. 두 달째 들어서면서 조금씩 움직였다. 일 년이 지나자 여유인지 게으름인지 모르게 느긋해졌다. 마치 골드카드 받은 연금 노령 어른들처럼 세상이 그만그만하게 보였다. 큰 욕심도 없어지고 덤덤해졌다.

 

***

 

항상 내 뇌리에는 두 칩이 남아있다. 먼저 주인어른이 심어놓은 칩이다. 이 자리서 이실직고한다. 아직도 무섭다. 내 거시기가 존재감을 상실한 뒤 그 칩이 내 귀에 박혀있다. 주인어른이 일 마치고 집에 올때는 차 소리를 들어도 반응이 신통찮다. 내려갈까 말까 망설이다 겨우 계단 맨 위쪽에 발하나 걸치고 있을 정도다. 당연히 주인어른은 못내 섭섭한 눈치다. 그런데도 크게 날 나무라지 않는다. 작년에 강제로 디섹스수술 시킨 후, 내가 거의 한 달을 널브러져 있던 바람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저 다시 일어나 보통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생각해보면 나, 뽀비도 잘한 것은 아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목수 일하고 노곤한 몸으로 돌아오는 주인어른 품에 달려가 안기면 어디가 덧나는 것도 아닌데. 디섹스 수술 트라우마가 악몽처럼 도지는데 낸들 어떡하냐고? 주인어른과 거리는 그렇게 생긴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 존재감 상실 때문이다. 흑흑~

 

다른 칩은 안방마님이 심어놓은 것이다. 외출 후 안방마님이 끄는 차가 집 가까이 다가오면 쏜살같이 계단 아래 현관으로 뛰어 내려간다. 누가 봐도 좋을 거다. 내 죽어가던 존재감을 살려준 아름다운 기억 칩이 내 가슴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내 피부가 문제를 일으켜 꽤 오래 고생한 적이 있다. 주인어른이 아픈 부위 털을 깎아내고 약을 발라주었다. 별 효과가 없었다. 두 분 몸이 찌쁘등하다고 헬렌스빌 온천에 갔다. 그때, 나를 집에 두고 갈까 하다가 데려갔다. 두 분은 온천을 하고 나는 차에서 기다렸다. 온천 후, 안방마님이 페트병에다 온천물을 떠 왔다. 그 물을 안방마님 손바닥에 따라서 내 몸에 적셔주었다. 몇 번을 씻어주었다. 내 눈망울에 뜨거운 기운이 돌았다. 느낌이 편안했다. 페트병 온천물이 다 떨어지자 안방마님이 주인어른에게 한 병 더 떠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주인어른은 망설였다. 안방마님은 당찼다. 그 페트병을 주인어른 손에서 확 낚아채더니 총총걸음으로 온천에 들어갔다. 잠시 후, 온천 물 한 병을 더 떠 왔다. 집에 와서 저녁에 그 온천물로 몇 차례 내 피부 질환 있는 부위를 더 씻어주었다. 그날 밤,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며칠 뒤, 내 몸의 피부질환은 감쪽같이 다 나았다. 안방 마님의 간절한 마음이 내 피부병을 녹여낸 것이다. 아아~

 

***

 

“~부르릉~~”

 

눈이 번쩍 뜨였다. 안방마님의 차 소리였다. 시동 소리가 내 촉수에 입력되어 있어서 금세 일어났다.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아유~ 우리 뽀비네! 집 잘 봤어? 그래그래 이쁘기도 해라.”

 

안방마님께서 현관문을 여셨다. 비닐 꾸러미를 내려놓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난 기뻐서 팔짝팔짝 뛰었다. 뒷발로 서서 앞발을 마구 비볐다. 사람 그리운 세리머니였다. 안방마님과 함께 동네를 걸었다 두 번째 옆집 뽀순이(주인이 일본인)네 집 벚꽃 나무 아래에 멈췄다. 왼쪽 뒷다리를 들고 쉬야를 했다. 내 영역 표시를 하니까 뿌듯했다. 눈은 맘에 둔 뽀순이네 집 현관에 고정했다. ‘이럴 때, 뽀순이는 뭐 하남?’

 

 

LYNN :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

 

 

 

무슨 낙으로 사나 했는데, 이런 낙이라도 있으니 그런대로 살아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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