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14편] 여기까지

일요시사 0 395

자궁암 3기 선고받은 날, 그냥 죽어버릴까 무척 고민했어요. 그런 날 눈치채고, 

남편이 꼭 껴안고 우는 바람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남편은 그 당시 명예퇴직으로 직장 구하느라 힘들 때였지요. 

두 딸은 결혼도 못 시킨 상태였고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까지 했어요. 

온 가족이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돌봐줬지요. 

서울에서 교직에 있던 딸 아이는 6개월 휴가를 내고 내려와 제 옆을 지켰어요. 

비로소 가족을 제대로 느꼈지요. 결국 자궁을 들어냈어요.

 

 

A의 눈이 빛났다. 뉴질랜드에서 서울 방문 길이었다. 몇 년 만에 와보는 고국의 발전상에 눈이 부셨다. 지하철을 탔다. 강남 삼성동 코엑스 몰에 들어섰다. 반디앤루니스 서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무려 150여 만권의 책들. 세상이 다 집결해있었다. 동양 최대의 대형 서적이 딱 버티고 선 서울. 든든했다. 고국은 세계 변화의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뉴질랜드 이민 생활, 생업에 매진하며 낙으로 삼아온 사진 촬영. 관련 책 코너에 코를 박고 두 시간째 푹 빠졌다. 세상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기한 시선과 관점으로 쓴 책들. 세상 자연 인간의 조화로운 사진 작품에 가슴이 뿌듯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A형!”

 

“???”

 

웬 중년의 세련된 여성이 눈앞에서 살짝 웃었다. ‘글쎄 누구시더라’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람 잘 못 봤나. 웬 여성이 외간 남자더러 형이라 부르지?

 

“A형. 저 N이에요.”

 

“오~오라!”

 

순간, 망각의 전등에 번뜩 불이 켜졌다. N은 빛나는 청춘이었다. 옅은 갈색 선글라스를 쓴 모습으로 목에는 연둣빛 스카플라를 두르고 있었다. 예의 품격이 느껴지는 귀부인이었다. A는 수수했다. 대학 복학 시절, 군대 제대하고 까맣게 물들인 야전 잠바 입고 도서관에서 책 읽던 시절과 매한가지였다. 뉴질랜드에서 입던 대로 캐주얼 한 옷에 신발도 검정 운동화였다. 

 

“얼마 만인가? 대학 3, 4학년 때 거의 매일 만나던 사이였잖아. 근 35년 만의 해후네.”

 

“A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복학생 형 같아요. 옷이나 얼굴 머리 모습이 똑 같네요.”

 

“N! 웬 여배우인가 했어.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어도. 그 느낌이 확 살아나네.”

 

“A형은 어디 살아요? 난 부산 사는데 막내 딸아이가 서울에서 손녀 낳아서 올라왔어요.”

 

“응, 난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이십여 년 살고 있어. 아버님께서 성모병원에 입원해계셔서 다니러 왔어.”

 

“A형 그곳에 이민 갔어요? 멋지다. 지상에 남은 마지막 비상구 천국이라던데. 그곳에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어요.”

 

***

 

둘은 서점을 나와 근처 카페에 들렀다. 카페 이름이 정겨웠다. 미네르바! 대학 시절 학교 앞 다방 이름이 미네르바였던 게 겹쳤다. 그곳에서 둘이 꽤 죽치고 앉아 인생을 논하고 고민 많은 청춘을 불태웠지 않은가. N이 옛날 만날 때처럼 알아서 음식주문을 했다. A는 그런 N이 고마웠다. 창가에 앉아 그동안 쌓인 회포를 풀었다.

 

“A형, 세상은 참 기적이 많아요.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잖아요. 오늘 만남도요. 고마워요”

 

“N 마음처럼 사니까 복을 누리는 거지. 나도 기적을 믿어. 기적은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유효할거야.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 줄 몰라.”

 

조금 상기된 N이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실타래 풀 듯 술술 털어놓았다. A가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맞장구치며 웃기도 했다. 세상에나 하는 안쓰러운 표정도 지었다. A가 뉴질랜드 생활을 얘기할 때, N의 동공은 신기함으로 눈깔사탕처럼 동그래졌다. 그 모습에 A는 한 편의 드라마를 방영시켜주듯 재미있게 들려줬다. 

 

“딸 둘 교육 마치고 결혼들 다 시켰어요. 큰딸은 부산에서 살고 작은딸은 서울 살아서 왔다 갔다 해요. 작은딸 집에 있다가 모처럼 시간 내서 반디앤루니스에 책 좀 사러 온건 데, 형을 만난 행운을 얻었어요.”

 

“나 역시 아들 둘 다 독립시켰지. 큰 애는 시드니에 있고, 작은 애는 뉴질랜드 남섬 웰링턴에 살아. 손주 한 번씩 보려면 비행기를 타야 해. 이번에 서울은 아버님이 병상에 계시고 장모님 탈상 삼년상도 돼서. 겸사겸사 왔다가 책 구경하러 이곳 왔는데 텔레파시가 딱 맞았네.”

 

“A형. 대학 때 사진 동호회에서 형 사진 감각이 뛰어났잖아요. 형 따라다니면서 꽤 많이 배웠는걸요. 생각하면 그때 추억이 참 좋았어요. 뉴질랜드는 풍광이 좋아서 사진 출사 여행도 많이 하겠어요.”

 

“이민 가서 초기 정착하느라 고생깨나 했어.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15년간은 무역회사 다녔잖아. 뉴질랜드 가서는 나무집 짓는 일에 빠졌어. 집들이 매력 있더라고. 폴리텍에서 카펜트리 목수 과정 마쳤지. 목수일 20여 년 이상하며 파란만장한 일을 다 겪었어. 7년 전에는 집 짓다 지붕에서 떨어져 거의 죽었지. 다음 날 해도 될 일을 그날 마무리하겠다고 저녁 무렵까지 무리한 바람에 그만. 삼 일간 의식을 잃었지. 순진한 아내가 충격으로 졸도를 했어. 외국에서 아내를 과부로 만드나 싶으니 눈물이 나데. 머리 부상과 척추 손상으로 수술받고 깁스한 채 석 달을 꼼짝 못 했어. 큰아들, 작은 아들이 애썼어. 사귀던 여자 친구 애들도 거의 매일 병원에 들랑거렸어. 힘들 때 함께했던 애들이 나중에 다 며느리로 들어왔지. 그 사고 후, 욕심이 비워지더구먼. 철이 든거지.”

 

“타국에서 그런 사고를 당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저도 5년 전에 자궁암으로 지옥까지 갔다 왔어요. 그 고생, 말로 표현 못 하지요. 자궁암 3기 선고받은 날, 그냥 죽어버릴까 무척 고민했어요. 그런 날 눈치채고, 남편이 꼭 껴안고 우는 바람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남편은 그 당시 명예퇴직으로 직장 구하느라 힘들 때였어요. 암 수술에 항암치료에 제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요. 두 딸은 결혼도 못 시킨 상태였고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까지 했어요. 온 가족이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돌봐줬지요. 서울에서 교직에 있던 딸 아이는 6개월 휴가를 내고 내려와 제 옆을 지켰어요. 비로소 가족을 제대로 느꼈어요. 결국 자궁을 들어냈어요.”

 

“N도 정말 질풍노도 같은 세월을 보냈구먼. 그러고 보니 N은 빈궁마마시네.” 

 

“칫~ 나 놀리는 거요. A형! 나 그때 죽었다 살아났다니까요.”

 

N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에그 스크램블을 우아하게 먹으며 카푸치노를 마셨다. A가 머그잔에 가득한 카페라테를 감싸고 훌훌 불어가며 목을 적셨다. 

 

“N 남편분은 어떤 일 해?”

 

“6년 전에 회사에서 명퇴하고 직장을 못 구해 1년을 쉬었어요. 지금은 하청회사에서 경비일 해요. 나이 들어 출퇴근할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대요.”

 

“A형 부인은 잘 계세요?”

 

“아내도 고생 많았어. 처음에는 내가 집 짓는데 조수 일을 많이 했지. 아내가 장녀인데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몇 년 안에 돌아가셨어. 밤잠을 못 이루더구먼. 장녀로서 역할을 못 했다고.”

 

A와 N은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집안의 안 좋은 일을 아이들이나 배우자에게 안 넘기고, 정작 자신들이 떠안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사고나 재난은 집안에 날아든 수류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평소 취미로 해온 사진 촬영. 개인 사진 작품전을 뉴질랜드에서 열었어. 작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피 상도 받고. 늘그막에 이런 낙이라도 있으니 고마울 뿐이지.”

 

“전 재작년에 불교문학상, 소설대상을 받았어요. ‘인연’이란 제목으로 썼어요. 저도 이 취미 글쓰기로 힘 받고 살아요.”

 

“오~ N! 그러면 빈궁마마가 아니라 여류 소설 작가님이시네.”

 

“호호~ 남 말하시네. A형은 내셔널 지오그래피 사진작가시면서”

 

“작가는 창작활동을 하잖아. 물질이나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세상을 밖으로 끌어내면서. 남이 못 보는 시각이나 시선으로 사진과 글에 여운과 감동을 표현한다는 것.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자 축복 같아.”

 

“오늘 이렇게 만나 많은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니 바이 돌핀이 쑥쑥 솟아요. 이 힘으로 몇 년은 거뜬히 살겠어요.”

 

“오후에는 아내와 처가 집 순천에 내려가기로 되어있어. KTX 표 끊어놨거든. 두 시간 반 밖에 안 걸린대. 곧 장모님 탈상 날이거든. 어디 살든 감사하며 건강히 지내자고. 굳이 연락 별도로 하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또 만나면 행운이고. 참 고마웠어.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N!”

 

“우와~ 안 잊었네요. 대학 다닐 때도 저랑 헤어질 때, ‘여기까지’란 멘트! 잘 사용했잖아요. 그 말, 여운이 남았어요. 그때 그리고 지금도 유효한 말이네요. 좋아요. 저도 오늘 써먹어 볼게요.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A형!”

 

***

 

A와 N이 카페에서 일어섰다. 그때 마침, 카페에서 옛 노래 해후가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네르바, 옛 추억의 향기가 두 사람 어깨 위로 스며들었다. A가 N 손을 꼭 쥐고 눈을 감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녹으며 꿈틀거렸다. N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세 시간 전 처음 만났을 때, N이 A 어깨를 툭 치듯이 이번에는 A가 N 어깨를 툭툭 토닥거려주었다.* 

 

 

LYNN: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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