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18편] 안단테

일요시사 0 521

이제 우리에게 살아가는 일. 무엇이겠는가? 자네 출품 사진이 그 답을 말해주는 것 같았어. 

뉴질랜드 남섬 농장에서 찍었다는 ‘해질 무렵 햇볕’. 

그 작품이 딱 내 마음을 움직이더구먼. 노을 지는 농장에서 바라본 서녘 산야. 

그 위에 가볍게 쏟아지는 여운의 햇볕. 참 평화스러운 기운이 맴돌더구먼. 그려. 

내 마음을 잘도 읽는구먼. 딱 그런 마음에 한 컷 찍은 거라네. 

누군가 내 사진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고맙지. 

하여튼 이제부터는 한 박자씩 천천히 살아야 할 때지. 

발걸음도 음식을 씹는 것도. 마음보다 한 발짝 뒤에 몸이 따라야 할 듯싶어.

 

 

곱창전골은 역시 추억을 들썩거리는 데 제격이다. 인사동 갤러리 골목, ‘부뚜막’ 음식점. 보글보글 끓는 곱창전골 냄비에서 옛 고향 특유의 냄새가 풍겨 나온다. A와 Q의 막걸리 주발 잔이 몇 번을 부딪친다. 금요일 저녁, 북적대는 사람들로 식당이 들끓는다. 둘의 이야기도 주거니 받거니 무르익어간다.

“한. 뉴질랜드 교류 사진 전시회. 참 대단하네. 뭐니뭐니해도 뉴질랜드 자연은 우리를 순화시키는구먼. 자네 사진풍경에 푹 빠져들었지. 언제 그런 경지까지 됐는지 부러워. 사진 전시회 하러 뉴질랜드에서 서울 인사동까지 와서 만나니 참 좋네.”

“내가 고맙지. 조촐한 사진 전시회 하는데 멀리 강원도에서 와준 자네가 대단하지. 자네 바쁜 농장사정 아니까. 연락도 제대로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찾아주니 진심으로 감동이네. “

 

Q가 강원도 막걸리를 A에게 한잔 더 따라준다. 철철 넘치는 잔을 받아 든 A의 가슴도 부자가 된 느낌이다. 몇 년만인가? A가 뉴질랜드 이민 갈 무렵, Q도 명예퇴직하고 강원도 고향 산골로 들어갔다. 그렇게 서로의 삶의 터전이 다른 세월. 강산이 두 번 바뀐 터라, 둘 다 귀밑머리에 서리가 살포시 내렸다.

 

“직접 연락을 안 해줘서 내가 좀 섭섭했지. 나도 사진을 취미로 하니까. 우연히 네이버 카페에서 접했어. 자네 이름도 나왔더구먼. 서울 사는 딸 네 집 손녀도 볼 겸 해서 왔지. 대학시절, 우리가 이곳 인사동 골목을 참 많이도 누볐지 않은가? 자 한잔 쭉 들이키자고.” 

“그려. 내 불찰이네. 개인전도 아니고 한국. 뉴질랜드 사진 작가들의 공동 전시회라서. 전시회 끝나고 나중에 자네한테 들를 생각이었어. 먼 거리라서 천천히 기차여행하며 옛날 추억도 생각할 겸해서.”

“요즘에 교통이 잘돼있어서 금세야. 서울~강릉까지 KTX로 한 시간 반이면 되니까. 무궁화 호 기차로 여섯 시간 걸렸는데. 세상이 발전하면서 물리적 거리는 짧아졌어. 나이 들어가며 정말 중요한 건, 심리적 거리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구먼.”

 

“자네,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네그려. 대학시절에도 자네는 남달랐지. 여전하구먼. 자기 철학이 분명해. 왜 기억나나? 대학 신입생 야유회 때였지. 선배가 지방에서 올라온 신입생들에게 물었잖은가? 왜 지방에도 국립대학이 있는데, 서울에 비싼 사립대학까지 왔냐고. 그 때, 자네가 용기 있게 답변했지. ‘지방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 서울이 아니고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고 싶어서 왔습니다. 잘 가르쳐 주십시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자네 얼굴을 쳐다봤지.”

“웬 KTX를 태우시나? 그려, 세상에 공짜 없지. 자네가 사십 년 전 시절, 내 말을 지금껏 기억했다는 것. 나도 감동이 구면, 오늘 술값 내가 다 내네. 자네가 말한 그 때, 나의 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유효한 내 삶의 방식이네. 그런 의미에서 자네가 이십 여 년 전, 뉴질랜드로 훌쩍 떠날 때 무척 부럽더구먼. 한국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것, 뉴질랜드가 아니고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것을 체득하기 위해 떠나는 자네. 인생은 모험 아닌가? 새로운 경험과 만남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거니까.”

 

그때였다. Q가 왼쪽 볼을 감싸며 신음 소리를 낸다. 티슈를 꺼내 입안에 대니 피가 뻘겋다.

 

“아이구~ 아!”

“웬일인가?”

“으~ 혀를 깨물었네 그만.”

 

티슈에 배인 피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A가 한마디 위로를 한다. 

 

“참 아프겠구먼. 자네나 나나 이제 그런 나이 같네. 음식을 잘못 깨물고, 발을 헛디디고. 마음과 몸이 따로 놀지. 내 장단지 좀 보게나.”

 

A가 오른쪽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린다. 장단지가 빵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다. 신발을 벗으니 발등도 부어있고 퍼렇게 멍이 들어있다. Q가 화들짝 놀란다.

 

“그제 저녁, 서울 동생네 아파트 주차장, 주차 방지 턱에 걸려 나동그라졌다네. 장단지 근육이 파열됐나 봐. 처음엔 걸음을 못 옮겼지. 얼음찜질하고, 다음 날부터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어.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아직도 걸음 옮기는 게 무거워.”

“자네나 나나. 이제부턴 매사, 속도를 늦춰 하라는 세월의 신호인가 싶네.”

 

A와 Q가 탁주 잔을 다시 부딪쳤다. 텁텁한 탁주에 얼큰한 곱창 국물, 알싸한 궁합이었다. A와 Q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게 달아오른다. 이마에 자글자글 한 주름에도 저녁 노을이 드리운다. 

 

“이제 우리에게 살아가는 일. 무엇이겠는가? 자네 출품 사진이 그 답을 말해주는 것 같았어. 뉴질랜드 남섬 농장에서 찍었다는 ‘해질 무렵 햇볕’. 그 작품이 딱 내 마음을 움직이더구먼. 노을 지는 농장에서 바라본 서녘 산야. 그 위에 가볍게 쏟아지는 여운의 햇볕. 참 평화스러운 기운이 맴돌더구먼.”

“그려. 내 마음을 잘도 읽는구먼. 딱 그런 마음에 한 컷 찍은 거라네. 누군가 내 사진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고맙지.”

“하여튼 이제부터는 한 박자씩 천천히 살아야 할 때지. 발걸음도 음식을 씹는 것도. 마음보다 한 발짝 뒤에 몸이 따라야 할 듯싶어.”

“동감이네. 음악에서 안단테라고 했던가? 안단테~”

 

천천히 오고 가는 술잔 속에 곱창전골 진국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소리를 줄여놓은 TV에서 9시 뉴스가 떴다. 자막이 노래하듯 천천히 함께 흘렀다.

 

“세상에? 이창호 아나운서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구먼.”

“’진품 명기’ 진행하던 구수한 목소리의 주인공 아닌가.”

“그려. 올해 일흔 다섯이라는 구먼. 오랜 지병으로 고생했나 보네.”

“우리도 머잖아 그 나이가 될 텐데.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씁쓸하네.”

“그가 나온 프로가 아직도 눈에 생생한데. ‘행운의 스튜디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진품명품’. 마치 인생길을 표현하는 프로 이름이었지.”

“88 올림픽 개막 중계방송에 나온 그의 목소리, 스포츠 캐스터로서도 듬직하고 중후했는데.”

“진품명품 프로가 유독 떠오르네 그려. 최고가 이십오 억짜리 고산자 김정호 대도대동여지도가 소개될 때, 그림이 너무 커서 벽에 못 붙이고 바닥에 펴놓고 진행하던~”

“그 때, 장안에 화제가 됐지. 오억 원인가에 판정된 분청 매병은 가짜로 밝혀지며 매스컴에 오르내렸지.”

 

이창호 아나운서는 ‘진품명품’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남에게 불편이나 피해를 주지 않고, 편안한 인간미를 남겨두고 마무리했다. 

 

“명품 하니까, 명품 시계가 떠오르네. 왜 있지 않았나. 손석희 아나운서가 찬 시계가 화제에 오른 적 있었어. 얼마짜리인지 의견이 분분했지. 나중에 이만 원짜리로 밝혀지며 여운을 남겼지.”

“사람이 명품이니까 시계도 명품으로 보인다고들 한 게지.”

 

A와 Q가 부뚜막 음식점을 나오며 걷는 인사동길. 주말을 맞은 가을 저녁. 전통 거리에 술 익어가는 내음이 풍겼다. 활기 넘치는 젊은 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늙수그레한 이들은 옛 향취를 음미하며 노래하듯 천천히 걸었다. 세계 각국에서 여행 온 이들은 신기한 세상을 두리번거리듯 하며 나아갔다. A와 Q도 대학 시절을 음미하며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저만치서 한 무리의 은발머리 아가씨들이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인사동 거리를 물들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가락~

 

“Take your time, make it slow~”

Andante, andante~ 

Just let the feeling grow~

Andante, andante~

Oh please don’t let me down~”

 

최근, 전 세계에 화제가 되었던 영화, 맘마미아 2탄 OST 곡이었다.

 

“바로 저 노래, 지난 달 오클랜드 영화관에서 두 번 본 마마미아 2탄 노래네. 십 수 편의 뮤지컬을 한 곳에 모아놓은 듯한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 엄마와 딸 2세대를 넘나드는 인생 사랑 이야기였지.”

“아~ 그런가. 나도 강릉 영화관으로 아내와 외출 나와서 관람했지. 아내가 무척 좋아하더구먼. 대학 시절 사귀던 때부터 근래에 이르는 세월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느꼈나 봐.”

“아내도 그러더구먼. 대학생 커플로 수십 년을 살아온 세월, 이제부터는 ‘안단테 안단테’ 하자고 하더구먼.”

“A, 맞는 말이네. ‘안단테 안단테.’ 마지막 가사에도 방점을 찍더구먼.”

“Q, ‘오~ 제발 날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아내와의 사이도 그렇고, 우리 사이도 그렇게 하세 그려.”

 

A와 Q가 진한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는 등 너머로 인사동 청사초롱이 가물거렸다. 가로등 아래로 노란 은행잎이 금 주단처럼 깔려있었다. 천천히 느릿느릿 발 걸음을 옮겼다. * 

 

LYNN: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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