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26편] 뚜아에무아

일요시사 0 620

오클랜드에 사는 교민들은 저녁에 엘리슬리에 컨벤션 센터로 집결하여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가장 큰 홀을 빌려 대형 화면에 생중계 상황을 쏘아 올렸다. 당시 우승 후보였던 아주리 군단 이태리를 맞아 연장전까지 갔던 혈투. 조마조마한 몸과 마음이 외줄 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했다. 

급기야 2 :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안정환이 터뜨린 헤딩골! 철렁거리는 그물망! 

환희에 찬 안정환의 반지 세리머니! 교민들은 옆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을 너나없이 끌어안고 환호했다.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태리를 제물로 삼고 8강, 4강까지 올랐다. 

이민 와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날이기도 했다. 

이민자는 다 애국자가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날.

 

 

피터가 차 핸들을 오레와 비치 쪽으로 꺾으며 속도를 줄였다. 차창 안으로 청록 바다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옆에 타고 있던 써니가 소녀처럼 감탄사를 자아냈다.

 

“오~우! 이 신선한 바다 내음~ 밋밋했던 가슴에 생기가 도네~ ”

 

“써니. 그 말에 오레와 비치가 더 출렁거리네. 어쩌다 한 번씩 와도 이리 좋은 걸.”

 

“피터. 이런 오레와 비치 따라 걷다 보면 시 한 편 건져가겠어. 아~”

 

차를 해변 포후투카와 그늘에 세웠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세상이 다 사랑스레 보이는 법. 사람도 차도 바다도 나무도 하늘도 새도 구름도 모래도 평화스러웠다. 둘 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닷가 물속을 걸었다. 찰랑거리는 잔 파도가 발목과 장딴지를 간질였다. 어릴 적 시냇물에 발 담그고 있으면 피라미 새끼들이 몰려와 살을 톡톡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써니. 난 말이야 이곳 오레와 비치에 만 오면 옛 시절이 불현듯 떠오르곤 해. 이민 초기 유일하게 알았던 친구가 여기에 살았거든. 그 친구라도 보려면 오클랜드에서 이곳까지 달려왔으니까. 그 당시만해도 막막한 게 얼마나 많았는지. 아이들 학교, 집 구입, 비즈니스 선택, 가장의 책임감 등등… . 그 친구 덕에 오레와 비치를 내 자연친구로 삼았지. 겨울철 쉴 새 없이 빨래방 일 하느라 고생했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뜨고서 난 미쳐버렸어. 망망대해에 홀로 남은 외딴섬. 여기 와서 많이도 토해냈어. 비바람 거세게 몰아치는 밤, 오레와 비치를 우비도 없이 미친 듯이 걷기도 했지. 그대로 바다로 휩쓸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어. 마냥 폭풍 눈물을 온몸으로 쏟아냈지. 밤바다에서 울어본 사람~.”

 

“아, 그랬구나. 밤바다에서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거야. 이젠 하늘나라에서 부인도 잘 있을 거야. 피터, 이곳은 저마다의 추억들이 많이 쌓인 곳 같아. 가슴이 뻥 뚫릴 듯 확 트인 전망이 압권이고, 비치 모래가 너무 곱고 부드럽기도 하고, 물 빠진 곳은 모래밭이 딴딴해서 뛰기도 좋으니까. 난 고향 강릉 경포대가 그리울 때, 이곳이 그 자리를 대신해줬어. 정작 소중한 남편을 사고로 잃고 났을 때, 인생의 허망함이란. 어떤 위로도 나를 못 구해줬지. 깊은 속내를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그냥 이곳으로 내달려왔어. 머리는 바람에 흐트러지고 내 마음은 망연자실한 채 정처 없이 걷기만 했지. 그럴 때면 비 맞은 나무처럼 내 몸에서는 하염없이 땀과 눈물이 흘러내렸어. 맨 발로 이렇게 거닐다 보면 한 시간도 두 시간도 훌쩍 날아가 버렸지. 출출하다 싶으면 근처 카페에 들러 이름도 모른 음식을 시켜 마구 먹었어. 마음과 몸을 추슬러주고 충전시켜주는 곳,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나만의 숨겨둔 옛날 외갓집 동네 같은 곳이기도 하지. “

 

자동차 사람 기계 건물 협소함 부대낌 반목 불편한 심기 등등의 세상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동떨어진 곳. 대신에 새로운 것들로 차오르기 시작하는 곳. 파도소리 갈매기 하얀 요트 끝없는 바다 수평선을 향해 몸과 마음이 둥둥 떠밀려갔다. 몇 마디 이야기 후, 피터와 써니는 말없이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늘그막에 둘 다 혼자된 외로운 섬. 칠십 즈음에 마음을 나눌 말동무와 고해소 같은 정화 처가 있다는 것. 이런 곳에서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고 풍경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었다. 한참을 걸어도 편안했다. 미네랄 바닷바람이 주는 청량 기운이 온몸과 마음을 평화로 촉촉이 적셔주었다.

 

“써니와 이렇게 걸으니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를 보는 것 같구먼.”

 

“피터는 아직도 동심이 살아있어. 해맑은 소년 같아. 왜 그런 동심의 노래가 생각날까?”

 

써니가 허밍으로 노래를 불렀다. 피터가 들으며 노래 속 소년이 되어갔다.

 

~이사 가던 날 뒷집 아이 돌이는 / 각시 되어 놀던 나와 / 헤어지기 싫어서 / 장독 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 / 탱자나무 꽃잎만 흔들었다네 / 지나버린 어린 시절 / 그 어릴 적 추억은 / 탱자나무 울타리에 피어오른다~

 

“써니는 시인이라 역시 다르네. 나이를 먹어도 순수하고 풋풋하고. 이거야말로 축복 아닌가. 이런 소녀와 벗하며 걷는 나도 덩달아 어깨가 덩실거리네.”

 

“피터는 말도 예쁘게 하네. 오늘 점심은 내가 쏠게. 내 자주 들렀던 카페에서 맛있게 먹지. 좋은 길동무와 가끔 추억과 동심의 세계 속으로 이렇게 나들이하는 것도 고맙지.” 

 

“써니와는 여러 이야기가 잘 통하니 편하지. 이 나이가 됐어도 마음은 있었지만, 정작 못 해본 일과 안 가본 길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걸 문학이나 예술로 승화시켜낸 이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지. 직접 이렇게 이야기로 풀어내는 벗이 있는 건 더 큰 행운이고.”

 

“난 피터가 이야기해주는 해박한 인문학 이야기, 특히 재미있는 고전 풀이에서 큰 영감 같은 걸 얻곤 해. 지난번 동서문학상에 입상한 시도 그렇게 해서 나온 거지.”

 

한 시간여 바닷가를 거닐었을까. 머리도 맑아지고 가슴도 신선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다음 순서는. 배도 좀 뭔가 채워야 할 시간. 써니가 이야기한 카페로 향했다. 이태리 카페였다.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벽에 낯익은 국기가 걸려있었다. 세로로 세 줄이 그어져 있었다. 왼쪽은 초록, 가운데는 하양, 오른쪽은 빨강. 희망과 신뢰 그리고 사랑을 의미하는 국기였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했다. 이태리 국기를 보니까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 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태극전사들에 대한 희망 신뢰 사랑이 활화산처럼 분출했던 시간.

 

한국에선 대전 올림픽 경기장에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당시 붉은 악마의 카드섹션과 필승 코리아 이색 응원은 세상을 들썩거리게 했다. 히딩크 감독의 기상천외한 용병술과 용감무쌍한 태극전사들은 세계 축구에 이변을 기록했다. 오클랜드에 사는 교민들은 저녁에 엘리슬리에 컨벤션 센터로 집결하여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가장 큰 홀을 빌려 대형 화면에 생중계 상황을 쏘아 올렸다. 당시 우승 후보였던 아주리 군단 이태리를 맞아 연장전까지 갔던 혈투. 조마조마한 몸과 마음이 외줄 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했다. 급기야 2 :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안정환이 터뜨린 헤딩골! 철렁거리는 그물망! 환희에 찬 안정환의 반지 세리머니! 교민들은 옆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을 너나없이 끌어안고 환호했다.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태리를 제물로 삼고 8강, 4강까지 올랐다. 이민 와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날이기도 했다. 이민자는 다 애국자가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날.

 

파스타에 독특한 소스가 나왔다. 고기와 양송이, 다진 양파, 토마토를 익혀서 만든 붉은색 소스였다. 옆 테이블에서 빵을 함께 나누어 먹는 이태리 손님들, 초록 하양 빨강 티셔츠 옷차림이 인상적이었다. 함께하는 이와 먹고 이야기하고 순간을 느끼며 보내는 일상이 그림처럼 느껴졌다. 피터와 써니가 한입 두 입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오물거렸다. 

 

그때였다. 중 저음을 내는 남성 특유의 목소리가 카페에 잔잔하게 깔렸다. 어디서 많이 듣고 빠져 들었던 노래였다. 한참을 그대로 들었다. 그 옛날 청순한 시절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리나라 노래를 외국에서 번안해 부르나 싶었다. 나이 지긋한 이태리 셰프에게 무슨 노래냐고 써니가 물어보았다. Vagabondo 방랑자라고 했다. 메모지에 써주었다. 이태리 가수 Nicola Di Bari의 1970년 발표 곡이라고. 세상에 그랬나. 48년 전 이태리 노래라고? 80년대 통기타 가수, 혼성 포크듀엣 뚜아에무아 가 생각났다. 프랑스어로 ‘너와 나’를 의미해서 대학 시절 연애할 때 귀에 입력됐던 뚜아에무아. 당시 애 띠게 보였던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 주인공 박인희 씨. 그랬구나. 저 노래를 박인희 씨가 번안해 부른 거였구나. 그때의 ‘너와 나’가 오늘의 ‘피터와 써니’로 자리를 옮긴 것일까? 그 시절, 뚜아에무아가 되는 듯했다. 인생은 방랑자로 정처 없이 살아가는 길이려니. 내면으로 방랑자 가사가 은은하게 흘러 들어왔다.

 

~그림자 벗을 삼아 / 걷는 길은 / 서산에 해가 지면 멈추지만 / 마음의 님을 따라 / 가고 있는 나의 길은 / 꿈으로 이어진 영원한 길 / 방랑자여 / 방랑자여 / 기타를 울려라~

 

 

 

LYNN :소설가. 오클랜드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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