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27편] 그러지 마소(牛)!

일요시사 0 607

“ ‘근데! 근데! 그놈의 근데 소리 진저리나네. 그만 좀 해! 무슨 일을 해도 말끝마다 근데야! 좀 그놈의 근데라는 소리 안 하고 못사나? 에이 이놈의 근대도 꼴 보기 싫네!’ 하며 채소밭 근대도 다 뽑아 던져버렸대.”

“???”

그러면서 어쩌면 좋냐는 거야. 한참 고민하다가 한 마디 해줬지. 남편하자는 대로 하라고. 다음부턴 ‘근데’라는 말하지 말고. ‘그러시든지’라고 말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해줬지.”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잘했네. 역시 당신은 지혜롭구먼.”

 

 

 

 

“아~그런 뜻이 아니고… .”

 

“당신, 제발 그러지 마소(牛)!”

 

“그냥 한번 해본 소린데 뭘~.”

 

“이 에미소, 그만 좀 부려먹소. 그동안 월매나 부려먹었소?”

 

써니가 팽 그러니 돌아섰다. 까재 눈을 뜨고 피터를 째려본다. 몰래 과자 훔쳐먹다 들킨 아이처럼 피터는 겸연쩍어한다.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는다. 피터와 써니 부부. 뉴질랜드 이민 생활도 4반세기를 보낸 터라 척하면 착 이었다. 써니 말마따나 말할 수 없는 온갖 고생을 해왔다. 딸 둘에 아들 하나, 셋을 키워 학업 마치고 분가까지 시키느라 정신없었다. 세븐데이 일도 마다 않고 했다. 데어리샵, 빨래방, 스시집. 이제나 여유 좀 갖고, 고장 난 치아나 보수하려던 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냥 해본 소리라고 얼버무리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냥 놔뒀다가는 밀릴 것 같아 단단히 쐐기를 박아두었다. 써니가 소(牛)란 단어에 유독 강조하는 것은 자기가 소띠인 것도 한몫했다. 

 

뉴질랜드 이민 와서 정말 소처럼 열심히 일했는데. 오늘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피터가 한 말에 은근히 부아가 올라왔다. 일할 곳이 있으니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피터가 일하고 있는 카운트다운 과일야채 코너에 한 자리가 비었단다. 한국 여성이 성실히 일해왔는데,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일이 생겼다고. 매니저가 전임자처럼 좋은 사람 있으면 추천해달라기에 한 번 해본 소리였다고. 써니는 단호하게 NO라고 쏘아댔다. 돈도 돈이지만, 에미소 치아가 다 성하지 못해서였다. 오래 미뤄온 일이었다. 이번에는 꼭 치료해야겠다고 우선순위로 정했던 터라 다른 일이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마침 한국에 잘 아는 분이 치과 일을 하고 있었다. 연로하신 친정어머니도 뵐 겸 해서 다녀올 참이었다. 치료 기간이 오래 소요되어 빈자리가 꽤 될 것 같았다.

 

“소 이빨이 성해야 여물을 씹고 일을 하지 않소? 세븐데이 일하다 소 이빨 다 빠진 것 몰랐소? 이런 이로 또 일이나 하면 좋겠소? 돈과 소 이빨 중 하나를 골라보소. 내 당신 말대로 따르겠소.”

 

“아~ 내 생각이 짧았소. 둘이 일하면 휴가도 같이 가고 좋을 것 같아서 그만. 그 말 취소하겠소. 내 불찰이니 이젠 마음 진정하소”

 

꽁지를 슬그머니 내리는 남편, 피터의 말이 탐탁지는 않았지만, 써니도 더는 채근하지 않기로 했다. 써니가 숭늉 그릇을 들고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 숭늉을 삼키지 않고 입안에서 그대로 아울렀다. 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마음을 차분하게 다잡아주었다. 뉴질랜드의 1월은 한여름이라 저녁 8시가 지나가는데도 석양 노을이 끝자락을 다 감추지 못했다. 창밖을 바라보던 써니의 눈이 팜 트리에 고정되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해도 가는 길이 아쉬웠는지 팜 트리 그림자만 길게 늘어뜨렸다. 온갖 새들이 모여들어 저녁 모임을 하느라 즐겁게들 노래했다. 열린 창문을 통해 새들의 노랫소리가 잔잔히 흘러들어왔다. 참 고즈넉하고 잔잔했다. 

 

써니가 피터에게 기대하는 것도 이런 오후 시간을 인생에서도 갖고 싶었다. 오랫동안 떠나는 유럽, 그리스 성지순례 여행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지난 주말 오후에 훌쩍 다녀온 푸호이 강가도 좋았다. 백 년도 넘은 보헤미안 정착 마을, 옛 카페에서의 저녁 식사도 편안한 시간이었다. 천천히 제대로 흐르는 강물처럼 이민 생활도 그리됐으면 하는 바람만으로도 충분했다. 숭늉 한 대접을 마시고 난 써니가 피터에게 다가갔다. 약간은 미안했는지 이야기 하나로 슬쩍 꺼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다.

 

“있잖아. 마리아가 아까 전화로 속상한 마음을 하소연하데.”

 

“뭔 일 있었어?”

 

“응. 마리아가 스시가게 일을 마치고 집에 갔었나 봐. 미리 퇴근한 남편, 존이 뒤뜰에서 채소밭 테두리 나무턱을 만들고 있었대.”

 

“그런데 무슨 문제가?”

 

“마리아가 보기에 테두리 나무 턱을 좀 땅속으로 더 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한마디 했대.”

 

“원하는 대로 존이 들어주면 될 것을 왜?”

 

“내 말이. 그러면 문제가 안 생겼지. 마리아가 한 마디 내뱉은 순간 존이 하는 일을 내팽개치더래. 채소밭 테두리 나무 턱을 다 뽑아 던져버렸대.”

 

“?”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야. 채소밭에 심어둔 근대를 마구 뽑아 펜스 울타리 쪽으로 던져버렸다는 거야.”

 

“??”

 

“ ‘근데! 근데! 그놈의 근데 소리 진저리나네. 그만 좀 해. 무슨 일을 해도 말끝마다 근데 야! 좀 그놈의 근데 라는 소리 안 하고 못사나? 에이 이놈의 근대도 꼴 보기 싫네!’ 하며 채소밭 근대도 다 뽑아 던져버렸대.”

 

“???”

 

“그러면서 어쩌면 좋냐는 거야. 한참 고민하다가 한 마디 해줬지. 남편 하자는 대로 하라고. 다음부턴 ‘근데’라는 말하지 말고. ‘그러시든지’라고 말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해줬지.”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잘했네. 역시 당신은 지혜롭구먼.”

써니와 이야기를 마치고 피터는 킥킥 웃음이 나올 뻔해 참느라 애를 썼다. 존과 마리아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둘 다 참 성실하고 착한 사람 아닌가. 착한 사람이 작은 말 한마디에도 그렇게 상처를 받고 몽니를 부리는 게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성싶었다. 사돈 남 말 할 게 어디 있나? 조금 전 피터도 써니한테 말 한번 잘못 건넸다가 된 통으로 면박을 당하지 않았던가.

 

피터가 데크로 나와 토마토처럼 빨갛게 물드는 석양 녘을 바라보며 담배 한 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주 오랜만에 피워보는 담배였다. 한 달에 한 갑 정도. 일 마치고 기분이 좋을 때, 데크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피웠다. 도넛 동그라미를 그리며 팜 트리쪽으로 날아가는 연기에 실어 오늘 하루의 희로애락을 함께 보냈다. 오늘의 토픽은 ‘그러지 마소’와 ‘근데 있잖아’였다. 써니가 그러질 말란다. 존이 근데 소리 그만하란다.

 

피터와 써니에게 존과 마리아는 이민 동기로서 법 없어도 사는 진국인 사람이다. 존과 마리라도 두 아들을 다 출가셨다. 한 주일 일 끝내고 손주들 재롱 보며 보내는 주일 시간이 늘그막 행복이라고 했다. 자주 만나 식사도 하며 때로는 1박 2일 여행도 떠나는 시간을 갖곤 했다. 다음에 만나면 오늘 이야기 소재로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듯 호탕하게 풀어낼 것 같았다.

 

‘근데 있잖아’

 

‘그러시든지’

 

‘내 말이’

 

이 세 마디가 뉴질랜드 이민 생활 4반세기에 걸쳐 놓인 다리였다. 내가 좀 의욕이 강해지면 대뜸 ‘근데 있잖아’란 말로 내 의사를 은근히 강요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양보하는 뜻으로 ‘그러시든지’란 표현으로 넌지시 상대 말을 들어주었다. 살아보니 인생 뭐 별거 있나 싶은 내려놓음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눈을 가지면 ‘내 말이’란 맛장구로 조용히 응원을 보냈다. 문제는 이 세 마디가 나이 들면서 ‘내 말이’로만 가는 게 아니었다. 자칫하면 ‘근데 있잖아’가 불쑥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곤 했다. 

 

한쪽이 이렇게 하자고 하면 다른 쪽이 ‘근데 있잖아’하며 다른 의견을 추가시켰다. 선택의 폭을 넓혀 원래보다 나은 쪽으로 나아질 수도 있었다. 자칫하면 부딪칠 뻔한 말이기도 했다. 이민 생활은 흐르는 강물 같았다. 많이 부딪치고 씻겨 내려가면서 몽돌처럼 동글동글해졌다. 세상만사 다 받아들이며 변한 몽돌이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이민 생활, 만만치 않지만, 각진 말과 삶을 굴려 가며 부드럽게 만들어가는 것. 때로는 인내하며 한 템포 늦게 따라가는 순응. 그 속에 부드러워지는 몽돌처럼 늘그막의 삶도 그렇게 만들어가면 좋겠다 싶었다. 

 

피터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았다. 입을 ‘O’ 자로 해서 혓바닥을 말아 타원형을 만들어 내 뿜었다. 반지 제왕에서 마법사 간달프가 만들었던 도넛 모양의 기묘한 연기였다. 짙은 담배 연기에 ‘그러지 마소’ 와 ‘근데 있잖아’를 섞어 함께 배출했다. ‘그러시든지’와 ‘내 말이’가 가운데 동그란 연기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

 

 

LYNN :소설가. 오클랜드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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