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28편] 그 림 자

일요시사 0 642

아내가 세상 뜨기 전, 치매로 고생 많이 했지. 호주에서 찾아온 막내딸을 몰라보더라고. 

근심 어린 얼굴로 세 번이나 묻더라고. 

‘누구더라? 왜 왔어?’ 막내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구먼. 딸애가 아내 손을 붙잡고 한 말은 지금도 가슴에 저려.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는 막내딸을 몰라봐도 저는 엄마를 알아요.’ 그 말을 듣고 아내가 다음날 

눈을 감더구먼. 그 말에 위안을 느꼈나 봐. 

호주에서 막내딸 고생한다고 그리도 걱정하더니만…

 

 

타카푸나 더 커피클럽. 비 오는 저녁 시간이 한산하다. 시니어 세 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겨울나무들 같다. 조금 전 건너편 칼국수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건너왔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에 식사하고 담소 나누는 시간. 벌써 3년째다. 홀아비 생활하다 만나 여러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자리. 유일하게 세 늙은 이를 아우르는 쉼터가 되었다. 작년에 막내 멤버로 들어온 존이 조용한 분위기에 한 마디 툭 던진다.

 

“형님들은 혼자 산지10년이 넘은 데도 잘 지내시는 것 같은데요. 전 이제 겨우 3년 차인데요. 홀로되고 나서 외로운 여파가 아직도 힘들어요. 저녁 식탁에 혼자 앉아 음식을 먹다 보면 그렇게 허전하고 외롭더라고요.”

 

피터가 한마디 응답한다. 존 맞은 편에 앉아 창밖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던진 말이다. 

 

“난 벌써 11년째 홀로 살잖아. 잠자는 시간이 요즘 더 짧아졌어. 새벽 일찍 깨거든. 물이라도 마시려고 주방에 가면, 그렇게도 낯설더라고.”

 

시몬이 한마디 거든다. 피터 옆자리에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내뱉는다. 

 

“나는 아직도 혼자가 아니라고 무의식중에 여기나 봐. 잠자다가 손을 뒤척일 때, 옆에 잡히는 게 없으면 허전하더라고. 어언 10년째인데. 강산도 한 번 변했을 성싶은 세월이건만.”

 

“애고~ 형님들도 아직 그러시고만 요. 어째야 돼요? 지금 이 나이에 다시 인연을 만나기도 싶지 않고요. 만약 생긴다 해도 망설일 것 같아요.”

 

막내 존이 아직 호기가 살아서 이야기를 뒤적거린다. 불 꺼진 장작불을 부지깽이로 헤집듯 들춰본다. 온기가 조금이라도 살아날까. 손바닥을 펴서 가만히 얼굴에 대본다. 가장 연로한 피터가 말을 잇는다.

 

“살아보니, 그래 봤자 인생 100년인데. 사람은 결국 가더라고, 꼭 사라지데. 남는 건 역시 자연이고 풍경이더구먼. 지금도 창유리에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 무관하지 않지.”

 

“명언이시네요. 피터 형님. 변하지 않는 자연과 풍경에 눈길 주는 건 정말 자연스러워 보여요.”

 

“물론 늦게까지 남는 사람도 있긴 하지. 아내가 세상 뜨기 전, 치매로 고생 많이 했지. 호주에서 찾아온 막내딸을 몰라보더라고. 근심 어린 얼굴로 세 번이나 묻더라고. ‘누구더라? 왜 왔어?’ 막내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구먼. 딸애가 아내 손을 붙잡고 한 말은 지금도 가슴에 저려.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는 막내딸을 몰라봐도 저는 엄마를 알아요.’ 그 말을 듣고 아내가 다음날 눈을 감더구먼. 그 말에 위안을 느꼈나 봐. 호주에서 막내딸 고생한다고 그리도 걱정하더니만… .”

“아~아~ 눈물 나네그려. 마지막 마무리가 좋아서 편히 눈을 감으셨던 것 같네.”

 

시몬이 피터의 빈 잔에 따뜻한 물을 따랐다. 피터가 음미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을 넘기지 않고 입안에 그대로 두었다. 따스한 온기, 그렇게라도 느끼고 싶었을까? 그때였다. 피터 스마트폰이 부르릉 들썩거렸다. 막내딸이 카톡으로 손녀 얼굴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간호대를 졸업하고 시드니 공립 병원에 취업했단다. 하얀 간호복을 입고 웃는 얼굴에서 아내의 미소가 보였다. 인연의 고리, 가족이라는 혈육의 인연은 역시 핏줄을 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하늘에서 아내가 바라봐도 흐뭇해할 손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임자, 당신이 애지중지해 키웠던 손녀딸이 간호사가 됐다는구먼. 임자를 닮았어. 대견하지? 이 사진 좀 보라고.’

 

피터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스마트폰 속 아내 번호에 카톡을 보냈다. 말없이 멍하니 웃는 피터를 보며 시몬과 존이 애틋한 미소를 지었다. 존이 이어서 새로운 화제를 올렸다.

 

“TV에 ‘100세를 살아보니’ 가 나오더라고요. 100세를 맞은 한국 김형석 교수의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분,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좋아 보이던데요. 옛날에 그분 책 사서 읽었지요.” 

 

“나도 봤는데 그 나이에도 현역이라니 대단해. 작년 99세 때, 160여 회 강연을 다녔다니.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내 병간호를 20여 년간 해온 점. 아직도 혼자 살며 건강히 나누며 사는 모습. 아들딸한테 부담 안 주고 사는 모습이 참 부럽데.”

 

“정말 천수를 누리며 사시는 분이네.”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가면 뭘 하겠냐고 묻는 말에. 서양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추겠다고 한대. 그분은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더군 그래.”

 

“그래. 함께 있는 사람과 식사를 한다는 것. 정말 좋은 시간이지. 여기 있는 세 사람도 좋은 몫을 택한 거지.”

 

선배 들의 말에 막내 존이 맞장구를 치며 추임새를 넣는다.

 

“혼자 되어서도 함께 만나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늘그막에 갖는 낙 중에 좋은 몫이라는 말씀, 맞는 말입니다.”.

“모든 일의 마무리는 다 중요하지. 그중에서도 인생 마무리야말로 가장 중요한 숙제가 아닌가?”

 

“뉴질랜드에 이민 온 분 중에도 마무리를 잘하며 곱게 사는 분들이 꽤 많지요.”

 

“이민까지 와서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에 혼자된다는 것은 큰 슬픔이지. 특히나 자녀들 독립하는 모습도 못 보고 떠나 보내는 경우엔 더욱 그렇지.”

 

“배우자가 먼저 가는 경우. 배우자와 이혼하는 일. 결혼 한 자녀가 결별하는 일. 사업하다 파산하는 일.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살아가는 경우. 사람 사는 세상이면 어디나 있겠지만 이민자로서 체감하는 어려움은 더 힘들고 춥기 마련이지. 어쩌겠어? 마음으로라도 기도해주며 살아야지.”

 

“사돈 남 말 하는 게 아닌가요? 우리도 딱 포함되네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만나 이렇게 식사도 하고 담소도 나누니 고맙지요. 형님들 건강 관리 잘하셔요.”

 

100세의 김형석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를 시니어 셋은 다시 되짚어봤다. 가슴에 와 닿는 구절 들. 100세 인생에 아플 때가 있었다고. 건강이 안 좋아서가 아니란다. 손에서 일을 놓았을 때라고. 교수 시절 학교 방학 때 아팠다고. 명예 교수 시절에도 일을 안 할 때 아팠다니. 알맞은 일이 건강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적당한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 소일거리는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교류해 건강을 유지해준다는 이야기. 사람이 어디 맨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해야 할 일도 꾸준히 있을 때 조화로운 생활이라고. 밀물과 썰물이 바다를 아우르듯이, 밀고 당기는 일이 있을 때 우리 몸도 마음도 제대로 순환이 되는 거라고. 절대 공감이다.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것. 함께 만나 식사를 하고 담소 나눈 뒤, 타카푸나 비치나 거리를 걷는 일도 소일거리려니. 세 시니어는 이를 작은 위안으로 삼았다.

 

비가 그치고 맑은 기운으로 바뀐 거리를 셋이 걷는다. 허스트미어 스트리트. 옛 타카푸나 전성기 추억이 깃든 거리가 한산하다. 이민 올 때만 해도 명소라서 사람들로 붐볐던 곳이 최근에는 주춤해졌다. 타카푸나 우체국과 은행 사이에 있는 나무 벤치 자리가 비어있다. 나무 둘레에 맞춰 둥그렇게 만든 벤치가 조화롭다. 그냥 지나치려다 셋이 가만히 앉아본다. 세 시니어를 닮아가는 타카푸나의 모습에 정이 느껴진다. 세상 흐름이야 어찌 막겠는가. 사람도 만물도 도시도 다 흘러간다. 가는 건 보내고, 오는 건 맞이하고. 김형석 교수의 마지막 당부 말씀도 밀려 들어온다. 나이 들며 질서를 찾아주는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나이 들수록 자칫 무질서하기 쉬운 생활을 되돌아보라는 말씀이다. 

 

타카푸나 상권이 알바니로 썰물처럼 옮겨가면서 한적한 자리를 남겨두었다. 세 시니어의 발걸음이 그 추억을 밟으며 천천히 흘러간다. 그림자 만이 그 속내를 아는지 끝까지 조심조심 세 사람을 부축하듯 뒤따라 간다. *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