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2주년에 인촌 김성수 선생을 생각하며...

알림마당


 

3.1운동 102주년에 인촌 김성수 선생을 생각하며...

NZ FIND 0 853


인촌 김성수 선생이 안계셨다면 과연 3.1운동이 가능했을까?


인촌선생은 3.1운동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또  중앙학교를 거점으로 삼아 각계 인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막후에서 수행하였으며, 더욱 결정적인 것은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거사자금의 70%가까이를 지원했다는 점이다.


아래는 인촌선생의 3.1운동 거사자금 지원을 증언하는 기록들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동아일보1949년 3월 1일자 기사에 따르면


“자나 깨나 민족의 독립을 꿈꾸던 남강 이승훈의 시원시원한 말에 인촌 역시 자금 제공으로 응원했다. 이승훈과 동향이며 오산학교 출신인 김도태는 ’이승훈 씨의 관서 방면 공작비로 김성수 씨가 2000원인지, 3000원인지를 내놓았다‘고 증언했다.당시 쌀 한 가마 값이 3원가량이었으므로 3000원은 쌀 1000가마 값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또다른 증언도 있다.


육당 최남선은 제자였던 홍일식 전 고대 총장에게 기미독립운동의 숨겨진 비화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3.1만세운동을 위해 기독교계와 천도교측은 거사 준비를 위해 5000원씩을 분담하기로 했지. 그런데 거사를 목전에 두고 기독계의 거목인 남강이 평양에서 빈 손으로 내려왔을 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네. 남강 어디 보통 인물인가. 조선을 대표하는 으뜸 교육자요, 기독교 장로교계의 얼굴이요, 독립운동가 아닌가. 자칫하면 다른 단체들의 참여에도 영향을 미쳐 거사 자체가 무산될 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네. 그때 인촌은 거금 5000원을 선뜻 내놓으며 출처를 밝히지 말고 남강에게 전해, 분담키로 한 거사자금으로 내놓도록 해 달라 했네. 나는 한 걸음에 종로YMCA뒤편 황금여관으로 달려가 남강에게 그 돈을 건넸지. 덕분에 3.1거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어. 그때 인촌의 나이 겨우 스물여덟 살, 참으로 큰 인물이었네"


당시 쌀 한 가마 값이 3원가량이었으니, 5000원이면 쌀 약 1700가마 값에 해당한다.현재 쌀 80kg 한 가마니 값을 20만 원으로 계산하면 약 3억4천만원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이러한 기록들에 따르면 인촌 선생은 3.1운동 거사를 위해 두차례에 걸쳐 당시돈으로 8000원,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5억3천만이 넘는 자금을 지원한 것이며, 이는 3.1운동 거사자금의 70%에 가까운 것이다.


일을 함에 결정적인 것은 자금이다. 인촌선생의 자금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인 3.1운동이 가능했을까? 


0 Comments
포토 제목

6edb594ce1519039f4d5a23436b144f1_1586488850_99366.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