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식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건은 성경의 모든 말씀 중에서 가장 위대한 메시지이며 하나님이 이루신 사역중에 가장 위대하신 사역은 메시야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허락하신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계의 모든 나라와 민족에 소망이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역사적인 사건은 전 세계에 너무도 귀한 명절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탄절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하는 명절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님 오시기 800여년 전에 메시아 예언을 통하여 메시아의 오심으로 세상이 죄로부터 해방되며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대해 말씀합니다. 그 말씀을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소식으로 오신 메시야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첫째 우리에게 영육의 건강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요10: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교회는 병원이고 예수님은 의사이십니다. 병들고 영적으로 타락한 희망 없는 사람들이 나아와 치유 받는 곳이 교회입니다.
죄로 인해 얼룩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나, 마음과 육체가 병든 사람이들, 자신의 욕심에 사로잡혀 타인을 배려 못하는 사람들, 미움과 분노와 원한으로 상심한 사람들,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 삶에 지쳐 죽고 싶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메시야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미국 듀크 대학 병원 의사 두 사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 주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할 가능성이 적고 입원한다 하더라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보다 입원기간이 짧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온 인류의 치료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은 영적 구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연약과 질병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고 진정한 행복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둘째 슬퍼하는 이에게 위로와 기쁨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주십니다.
사61:2-3절에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잃고 종으로 살아가는 유다의 백성들에게 자유가 어디있습니까? 그러나 이사야가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권세였습니다.
사람은 삶속에서 누구든 여러가지 상처를 입게 됩니다. 뜻밖의 사고를 만나고, 예기치 못한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슬픔의 일들을 만나고 고통스런 일들을 접하게 됩니다. 남모르는 어려운 사정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들은 우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눈물이 납니다. 이런 일들로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웟은 고통 가운데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히스기야는 죽음의 절망속에서 눈물을 흘렸고, 욥은 갑자기 찾아온 이유 없는 고난가운데 눈물을 흘렸고, 에레미야는 나라와 민족에 아픔 때문에 눈물을 흘렸고, 과거의 죄를 뉘우치며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으며 흘린 여인의 눈물이 있고, 병든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눈물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 모든 상처를 치료할 위로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우리의 심령에 평안을 얻게 되고, 기쁨과 감격으로 살아갈 힘이 어디에서부터 나올까요?
사람마다 눈물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이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분은 예수님 한분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과 두려움에 있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생명의 빛으로 포옹하시고 안전을 보장해주시고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슬퍼하는 이에게 위로와 기쁨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시기 위해 오신분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뻐집니다. 모든 것이 기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명령은 “항상 재미있어라”가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 입니다.
지금 대강절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들에게는 어려움도 있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있고 거친 풍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주님이 참 기쁨이 되셔서, 우리 인생의 갈증을 완전히 해결해 주시고, 위로자가 되시고 기쁨의 아름다운 소식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보어럼(F. W. Boreham)이라는 사람은 <내가 잊었던 말들> 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보어럼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고 주인으로 모시고 난 이후에 삶은 줄곧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기쁨의 삶을 살아 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일생 동안, 특히 점점 늙어가면서는 나는 점점 지혜로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보어럼은 매일 매일의 삶에 큰 기쁨과 만족함이 넘치게 되었고 예수님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 속에 탄생하셔서 자기의 영혼 속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그는 회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참 기쁨이 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을 기억하고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위로를 얻고 소망을 얻고 기쁨을 얻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