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부르심(갈 5:1, 13-15)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NZ광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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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4:19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의 한 연구팀이 15세 된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서 140여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단어들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습니다. ‘과연 이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서 어떤 의사를 표현하는가?’가 연구의 관심사였습니다. 드디어 침팬지가 의사를 표현했는데 맨 처음 표현한 내용은 “Let me out.” 나를 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끼니때마다 충분한 음식과 안전한 잠자리가 제공되어서 행복하게 보였지만 침팬지가 그토록 원한 것은 바로 자유였습니다.
3월 1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겨 큰 고통을 받던 때에, 인구의 5분의 1이 거리로 뛰쳐나가 총칼을 들고 위협하는 일본경찰 앞에서 자유와 독립을 외쳤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200만에 달했고, 210개 도시에서 1,500회의 대중 집회, 만세를 외치다가 사망한 사람이 7,500명, 부상자 16,000명, 투옥된 사람이 47,000여 명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3.1 운동은 당시로서는 실패한 운동입니다. 왜냐하면 이 운동으로 일제가 물러서거나 바로 독립이 이루어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3.1 만세운동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가장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3.1 운동을 목격한 선교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여준 평화적인 태도에 크게 놀랐습니다. 이 운동 당시, 전국에 일본인들이 살았는데 그들에 대한 어떤 보복이나, 일본인 상점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어린 소녀들이 일본 경찰이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는데도 만세를 그치지 않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3.1 만세 운동입니다.
본문을 가지고 자유를 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어 무조건 복종케 하시지 않고, 오히려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불행히도 인간은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가 아니라 육체의 기회를 삼았기 때문입니다.(갈 5:13)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를 주셨지만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명을 어겼습니다. 그 결과 자유를 잃고 죄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일제 통치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우리가 오라고 해서 온 게 아니라 자기들이 와서 강제로 점령하고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은 것입니다. 영토만 빼앗은 게 아니라 주권도 빼앗고, 이름도 빼앗고, 말도 빼앗고 모든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심지어는 안 가겠다는 젊은 여인네들을 강제로 차에 태워서 전쟁터에 보내서 군인들에게 성적으로 끔찍한 유린을 당하게 하고 그 꽃다운 생을 다 짓밟아 놓고 이제 와서 자기네가 원해서 했다는 망언을 하는 것입니다.
설교 준비하면서 기록과 사진을 통해서 일본의 만행을 보는데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해서 도저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 학살에 못지않은 끔찍한 학살이 불과 100년 전에 한반도 전역에서 자행되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토록 짓밟고 죽이고 빼앗고 속박하고 멍에를 지울 수 있을까? 몸서리가 처집니다. 이것은 정말 큰 죄악입니다. 왜 큰 죄악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자유 하도록 지으셨고, 자유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를, 그것도 한 민족의 자유를 다 빼앗고 억압하고 죽인다고 할 때 이것은 큰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킬 수 있는 죄악인 것입니다.
2.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멍에를 벗고 자유하게 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갈 5:1) 사람에게는 죄를 미워하고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죄의 속박으로 돌아가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는데, 그들이 광야에서 고통이 올 때마다 노래처럼 했던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애굽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애굽으로 돌아가자.”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비참한 노예의 멍에를 다시 메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를 지나 영적 가나안으로 가는 게 신앙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하다 보면 광야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내가 괜히 교회 다니나?’ 싶고, 신앙의 회의가 찾아오면서 드는 생각이 뭔가 하면 다시 영적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신앙은 뒤돌아보지 않는 게 신앙입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입니다.
3.1 운동 당시 그 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소녀가 바로 유관순 열사인데 일본군에 의해서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고초와 고문을 당하다가 끝내 여섯 토막이 난 시신이 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오늘의 자유를 누리는 대한민국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이런 몸서리처지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일제 멍에를 그냥 벗은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나라가 종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3.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사랑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인간이 무엇 때문에 자유를 잃어버리고 빼앗겼습니까? 13절 보면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를 무엇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할까요? 13절에 자유를 입었으면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기회로 쓰지 말고 사랑의 기회로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게 된 우리는 이제는 그 자유를 귀하게 써야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를 해방하기 전, 뉴올리언스의 노예 시장에서 아름다운 흑인 혼혈 소녀가 경매에 붙어졌습니다. 경매자들이 입찰을 하는데 군중 속에서 한 신사가 처음부터 얼마나 세게 나오는지 결국 경매가 그 신사에게 낙찰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신사가 소녀를 데리러 왔을 때 소녀는 “저는 당신의 노예가 될 준비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사가 증서 하나를 소녀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내가 널 산 것은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다. 이게 바로 그 증서다.” 소녀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나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샀다고요? 그렇다면 내가 자유의 몸인가요?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나요?”
소녀가 이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남은 생애동안 당신을 섬길 수 있도록 저를 데려가 주시겠어요?" 소녀는 자유로운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예수의 핏 값으로 사셨고 자유케 하신 진리입니다. 은혜로 주신 이 소중한 자유를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