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버려진 시간,,,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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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10:28
집 뒤에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넓이의 정원이 있었다. 정원,,,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억센 풀과 잡초만 무성한 그런 땅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잡초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결국,, 호미를 집어 들고 잡초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두 달이 걸렸는지, 세 달이 걸렸는지,,, 하튼 두어 달이 지나자, 잡초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정원이 푸른 풀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푸른 풀밭,,, 그런대로 봐 줄만 하다. 문제는 황무지와 잡초들을 뽑아내서 생긴 맨 땅들이었다. 영 눈에 거슬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잔디 씨를 황무지와 맨 땅에 뿌려 보았다. 정원용 흙을 사다 깔고, 씨를 뿌렸다. 이런 황무지에서도 과연 잔디가 싹을 낼 수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씨를 뿌리고 칠 일째 되는 날 아침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잔디들이 곳곳에서 싹을 내고 있는 것이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 메마른 황무지,,, 풀도 제대로 자리지 못하고 잡초만 듬성듬성 있던 그 황무지에서도 씨는 생명의 싹을 내고 있었다. 너무 기뻐서 하루에도 열 번이 넘게 보고, 또 보고 하였다. 다섯 달 전의 일이다. 엉성하지만, 그래도 조그만 잔디 밭이 생긴 것이다. 욕심이 났다. 풀밭 중 일부를 잔디밭으로 바꾸어보기로 한 것이다. 호미로 풀을 뿌리째 뽑아내는 데,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잔디밭을 조금씩 넓혀 나갔다. 지금도 곳곳에 풀과 잡초가 눈에 띄지만, 언뜻 보기에 정원 전체가 잔디 밭 같은 느낌은 난다.
요즘도 아침 해 뜰 무렵이면, 라떼 거피를 한 잔 들고 정원에 나가 잔디 밭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떠 오르는 해가 밤새 이슬에 젖어 촉촉한 잔디 위로 빛을 뿌려주면, 잔디는 영롱한 초록색으로 더욱 밝게 빛을 낸다.
처음 교회에 나간 때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가 시작할 무렵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종교에 관심이 생겨 종교반이라는 데를 찾아갔었는데, 종교 서클이 아니라 기독교 서클이었다. “종교에 관심이 있어서 왔는데, 여기는 기독교 서클이라 나와는 맞지 않는다. 내가 잘못 찾아왔다.” 내 말을 듣고 한 친구가 얼른 대답한다. “기독교도 종교니까, 먼저 기독교부터 알아보지 그래” 그렇게 해서 종교, 아니 기독교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한 학기를 기독교 서클에 다니다 보니, 교회를 다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두 가지 호기심이 있었다. 기독교를 좀 더 알고 싶은 마음과 여학생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교회에 나가면 내게도 혹시 기회가 오려나,,, 하루는 집 근처에 있는 교회 앞을 지나가다 한 여학생이 들어가는 것을 보더니, 발이 저절로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교회에 첫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1970년 10월 첫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통해서라도 부를 자는 반드시 부르신다.
교회를 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기독교,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예수님에게 빠져들어갔다. 2, 3학년 때는 기도도 열심히 하고, 복음서도 몇 번 읽었다. 예수님한테 푹 빠져서 일기의 반은 예수님 이야기였다. 혼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기도를 글로 쓰기도 하고,,, 그러다 어떤 일로 교회에 대해 실망도 크게 느끼고,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의 육신의 부활이 믿어지지 않아 세례도 받지 않았다. 예수님도 사랑하고, 천국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죽은 자들의 육신의 부활은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음이라기보다는 단지 예수님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영적 방황이 시작되었다. 철학이나 다른 종교에도 기웃거려 보고 방황하다, 몇 년 후에는 교회를 떠났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신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간에, 그 신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신이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열심히 신나게 살다 가는 거지, 인생이 별거냐?
의과대학 시절에 아내와 결혼하고, 몇 년 후에는 개업해서 둘 다 병원도 잘 되어 피곤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평생 의사를 하면서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목사가 되고, 내과의사였던 아내가 침을 놓는 한의사가 되고, 목사의 부인이 될 줄이야,,, 내가 내 인생의 수레를 몰고 가지만, 실제로 그 수레의 바퀴를 굴리는 이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여동생이 먼저 이민 오고, 남동생도 뉴질랜드 갔다 오더니 바로 짐을 싸고 이민수속을 밟아 떠났다. 부모님과 장인도 다녀 오시더니, 여기서 고생 그만 하고 이민 가라고 하신다. 막상 와 보니, 지상천국이 따로 없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스트레스도 엄청 받는데 좀 편하게 살자는 생각으로, 못내 아쉬워하는 아내를 설득해서 지상천국을 찾아왔다.
여러 해가 지났다. 사업이라는 것도 해보고, 부친도 이곳에서 돌아가셨다.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교회에 다녀야 할 일이 생겼다.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회봉사의 일환으로 교회도 나가고, 선교단체 봉사도 하게 되었다. 강제부역이라고 할까,,,
강제부역,,, 하나님께서 강제로 부르신 것이다. 믿음도 강제로 주셨다. 부친의 장례예배를 빼고는, 젊어서 교회를 떠난 지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교회 예배당 의자에 앉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자,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기도가 나온 게 먼저인지,,, 믿음이 들어온 게 먼저인지,,, 동시에 일어난 일인 것 같다. 한 순간에,,, 삼십 년 동안이나 믿어지지 않던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믿어졌다. 어머니 모태 안에 들어간 듯한 평안함과 함께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믿음이 절로 들어왔다.
학창시절 마음에 뿌려졌던 복음의 씨가 30년이 지나서야 싹이 튼 것이다. 잘 나가던 의사 시절,,, 참 많이 벌고, 떵떵 거리고, 가는 곳마다 대접도 잘 받으며 살았다. 병원 직원이 60명이었는데, 회식이라도 하는 날에는 왕이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던 그 시절이야말로, 어둠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워 보여도, 하나님을 떠난 세계가 바로 황무지요, 버려진 돌밭이며, 잡초와 들풀만이 무성한 광야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그 시간조차도 내게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어둠의 시간, 버려진 시간조차도 어둠이 아니었고,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어둠의 땅 속에 묻혀,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씨가 땅 속에 묻혀 싹트기를 기다리듯이,,,
에베소서 1장 4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버려진 시간은 없다.
-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