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하나님의 나라 믿는 만큼 보이고 누리는 나라,,,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하나님의 나라 믿는 만큼 보이고 누리는 나라,,,

일요시사 0 1251

교회,,,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어디어디에서 불러낸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이라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불러내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가 교회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 17:16)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 가운데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다. 소속에 관한 문제다.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 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가슴에 이 사실이 확실히 새겨지고, 자리잡아야 한다. 

 

이 소속감이 불확실한 기독교인들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속감이 분명하기 위해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굳게 서는 것이 먼저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가운데 살아계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결여된 경우를 많이 본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믿음이 애매모호한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선명하게 보이겠나?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 같고, 하나님의 나라는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오늘날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는 흐리게 보이고, 세상나라만 크고 선명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세상 사는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얻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세상에서 복을 받는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디 힘든 일이 하나 둘인가? 언제나 문제의 연속이고, 힘든 일들이 계속 이어진다. 기복신앙에 빠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께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마음의 중심, 생각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다.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삶을 보고, 교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30-33절에서 말씀하신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또, 참새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마 10:29)

 

들에 피는 꽃과 풀도, 공중의 새도 하늘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 세상사람들은 들풀이나 꽃이나 새를 보아도, 단순히 풀과 꽃과 새로만 보지만,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본다. 창조주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돌보심을 본다. 우리 하나님은 단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신이 아니다. 천지를 창조하시되, 만물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물며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구원하신 당신의 백성과 자녀 된 성도들이야 얼마나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고, 돌보시고 계시겠는가! 

 

주님께서는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일들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세상 사는 일들이다.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방인들,,, 세상에 속한 사람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냐? 세상 사는 일로 염려하지 말라. 세상 사는 일로 염려하지 말라,,,

 

믿음이 좋은 선교사를 본 적이 있다. 세상 사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 나라의 일, 선교에만 관심이 있는 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굶을 때도 많았나 보다. 선교사 부인은 온유한 성품의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못 들을 소리를 듣게 되었다. 입에서 심한 욕이 나온 것이다. 자신이 굶는 것도 견디기 어렵지만, 어린 딸이 굶는 것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부부가 함께 생계를 위해 일하며, 함께 선교도 하는 길을 택하였다.

 

세상 사는 일로 염려하지 말라,,, 아예 세상 일도 하지 말고,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세상 살면서 필요한 일들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일도 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여 살되, 되어가는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이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라,,,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께 속한 시간들이고, 삶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도들의 삶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들풀도 돌보시고, 공중의 새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세상 근심, 걱정, 염려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만, 그 믿음이 참으로 작은 자들이 우리다. 하나님의 나라를 잘 보지 못하고, 세상 근심에 사로잡혀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그만큼 작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가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사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한 나라다(롬 14:17).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할 때, 마음의 불안은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온다. 아픔도 하나님 안에서 기쁨으로 변하게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절대믿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보다 선명하게 보이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 정말 계신지 안 계신지, 애매모호하고 흐릿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믿음이 확실한 사람도 이런 생각이 들 수가 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것 맞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먼저 분명하게 서있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도 없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도 흐릿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부활과 영생이 정말 있는지, 이 문제를 먼저 확실히 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라도 이 문제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핵심은 부활에 있다. 예수의 부활이 정말 사실이라면, 하나님도 정말 살아계신 것이고, 천국도 확실한 것이다. 

 

주님을 영접하고도, 문득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천국은 확실하게 있는 것인지,,, 은근히 의문이 생길 때가 가끔 있었다. 사복음서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중점적으로 다시 읽었다. 요한복음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갔을 때,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었다(요 20:7). 머리를 쌌던 대로,,, as it was rolled up,,, 수건을 풀어서 개어놓은 것이 아니다. 세마포도 따로 있었다. 주님께서는 부활의 증거를 남겨놓으신 것이다. 머리를 쌌던 수건과 시신을 덮었던 세마포,, 원래 모습 그대로 남겨놓으시고, 몸만 빠져나가셨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피조세계의 지배를 받지 않으셨다. 

 

이런 모습은 19절과 26절에서도 나온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아놓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with the doors locked for fear of the Jews(NIV),,, 문을 열고 들어오신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문들을 걸어 잠가놓고 있었다. 그 가운데 홀연히 나타나신 것이다. 부활의 증거들이다.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들이다,,, 

 

예수의 부활이 확실하게 믿어져야 살아계신 하나님도 확실히 믿어지고, 천국도 확실히 믿어진다. 이럴 때, 예수의 십자가도 새롭게 마음에 새겨지게 된다. 부활이 보이고, 천국이 보여야, 이 세상에 임하여 있는 하나님의 나라도 보인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확고한 믿음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나라다. 믿음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도 희미하게 보이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은혜도 제대로 누리며 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나라다. 믿는 만큼 볼 수 있고, 믿는 만큼 누릴 수 있는 나라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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