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193; 하나님의 자녀, 꿈과 사랑이 있는 사람들...
미국 프로농구인 NBA에 캐빈 듀란트라는 유명한 선수가 있다. 이 선수가 2013-2014년도에 미국 NBA 농구 MVP로 뽑힌 후에 가진 소감발표가 아주 강동적이다. 그의 어머니는 21살에 캐빈과 동생을 둔 흑인여성으로서 미혼모였다.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녀의 삶은 고단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나이 어린 미혼모로서 대단히 궁핍하였지만, 자식들이 길거리의 부랑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캐빈의 어머니는 온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였다. 자신은 못 입어도 아이들은 입혔고, 자신은 굶으면서도 “나는 먹었으니 너희나 배부르게 먹어” 하면서 자식들은 굶기지 않았다. 캐빈은 빵을 먹으면서도 어머니는 굶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캐빈은 울면서 빵을 먹었다. 단순히 빵을 먹은 것이 아니다. 빵과 함께 어머니의 눈물을 먹었고,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을 먹었던 것이다. 이런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캐빈은 뛰어난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죽어라 달리고, 또 달렸다. 남들보다 더 독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캐빈은 미국 NBA의 최우수선수가 되었다. 캐빈은 이러한 자신의 자라온 과정을 눈물을 흘리며 말한 후에, 진정한 MVP는 자기가 아니라 자기 어머니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감동 어린 박수를 보내주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반드시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고야 말겠다는 꿈이 캐빈 듀란트를 NBA 최고의 농구선수로 키운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힘이고, 꿈의 힘이다. 캐빈 듀란트의 어머니의 사랑은 자기희생과 헌신과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자식들을 위해 바쳐진 참으로 위대한 사랑이다.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도 비슷한 심정으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과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고난은 있을지언정, 절망은 없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꿈을 생각해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롬 5:10; 엡 2:15).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 된 자들을 위한 사랑이다. 단순한 원수사랑이 아니다,,, 원수 된 자들을 사랑하시되, 자신이 가장 사랑하시고 가장 소중한 자신의 외아들을 죽이는 사랑이다,,, 자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면서 원수관계를 소멸하신 사랑이다. 그렇게 해서,, 원수들을 자신의 자녀들로 받아주신 사랑이다.
천상천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군의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외아들을 죽이시면서, 자신의 원수였던 우리를 자녀로 받아들이셨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사랑이 가능한가,,,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 안에서 돌보심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제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아버지가 되시고, 자녀들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예비되어 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형체와 같은 모양으로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지금의 몸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입고 있는 옷과 같다. 결국 벗어버릴 옷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원히 썩지 않을 영광의 몸이 하늘에 예비되어 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전 15:42,43).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녀가 된 자들이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꿈이 있다. 확실한 꿈이 있다. 그 꿈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확정적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그 꿈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오늘의 삶 속에서 살아있는 꿈인 것이다.
이것이 참된 사실이고, 진리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꿈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다. 히브리서 6장 19절은 이러한 소망이 영혼의 닻과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다고 말한다. 이 소망, 이 꿈은 우리의 영혼을 튼튼하고 견고하게 붙들어 주는 영혼의 닻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사랑과 반드시 이루어질 꿈이 있다..
꿈과 사랑이 있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거나, 현실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현재의 고난조차도 잠시 지나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롬 5:2,3).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꿈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아내와 결혼을 하였다. 20대 초반에 결혼했으니, 좀 일찍 한 편이다. 양쪽 집이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경제적으로 많이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학교 앞 시장골목에 있는 손바닥 만한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방이 너무 작아서 한 쪽으로 똑바로 눕기도 힘들 정도였다. 화장실 한 개로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하고,,, 하루는 시장 지하식당에서 오징어복음 한 접시를 시켜놓고, 어찌나 맛이 있던지 밥을 서너 그릇씩 먹었다. 자취하랴, 의과대학 다니랴,,, 다행히 둘 다 등록금은 내지 않고 다녔지만, 몸은 고단하고, 삶은 궁핍하였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움이 가득했다. 사랑이 있고, 앞으로 의사 부부가 되면 잘 살 게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꿈과 사랑이 있기에 힘들지만 행복할 수 있었다.
꿈과 사랑이 있는 사람은 작은 것에서도 큰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행복해 할 수 있다. 그들은 현실의 고난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다. 몸이 피곤하고 힘은 들지만, 오히려 그 가운데서도 행복을 노래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꿈과 사랑 안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거하라’는 말의 헬라어 원래 의미는 ‘굳게 서다, 계속 머무르다, 계속 살다’ 이런 뜻이다. 흔들리지 말고 내 사랑 안에 굳게 서라,, 계속 내 사랑 안에 머물며, 내 사랑에서 떠나지 말라,,,
그런데 ‘거하라’는 동사가 문법적으로는 과거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헬라어에서 과거동사가 현재의 일에 쓰일 때는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변할 수 없는 확정적 사실이라는 뜻이다.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너희는 내 사랑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주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자들,, 주님의 사랑의 손에 붙잡힌 자들,, 주님의 사랑의 포로가 된 자들,, 그래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만 비로소 삶의 의미가 생기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영광의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사는 사람들,,,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