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48) 믿음의 공동체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48) 믿음의 공동체 <에베소서 4:11~16>

일요시사 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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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2019년의 마지막 주일,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송년 주일, 이 시간에는 교회라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관한 칭찬과 책망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언급되는 교회가 에베소교회입니다. 계시록 2장에 기록된 에베소교회를 향한 칭찬과 책망을 보면, 크게 세 가지의 칭찬과 한 가지 책망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에베소 교회가 선한 일에 힘썼던 것, 두 번째는, 시련을 참고 견딘 것, 세 번째는, 이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칭찬과 더불어서 한 가지 책망을 받게 되는데,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세 가지 칭찬과 한 가지 책망을 종합해 보면 하나의 결론이 나옵니다. 지금 이 땅에 있는 교회의 모습과 믿는 자라고 자부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십시오. 주어진 일에 충실합니다. 사회적으로 봉사도 하고 구제도 합니다. 지역 사회를 위해서, 또는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 나아가 저기 세계 열방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주의 사랑을 전합니다. 에베소교회를 향한 세 가지 칭찬의 모습이 다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 역시 에베소교회를 향한 책망처럼, 예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듯한 모습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에베소교회를 향한 책망도 결국은 이 하나입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주를 위해서 충성하고, 헌신하고, 귀한 일들을 감당하는데, 그 모든 것이 너 자신의 만족감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하는 것이냐? 이것을 지적하시는 겁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뉴질랜드 광림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 받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명기 28장 13절에 보면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많이 인용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그런데 여러분! 머리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전제 조건이 명확합니다. 신명기 28장 1절부터 머리가 되기 위한 조건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먼저 1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2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그리고 14절에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머리가 되는 것은 주의 축복으로 인한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에 수차례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방향성이 “예수님의 뜻대로”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뜻대로 세워져 가는 것이고, 교회의 방향성은 오직 예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머리가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당당히 내 것으로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축복의 약속을 바라보고 사모함으로 내 것으로 누리면 됩니다.

  다만, 교회에서는 섬기는 겁니다. 교회에서는 아래에 있는 겁니다. 신앙의 걸음 가운데서는 내 주장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겁니다. 오늘 15절에 말씀하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자라나는 게 뭘까요? 우리의 섬김, 우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 우리의 믿음의 헌신,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가 점점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리, 이 아래에서 저 위까지 자라나는 겁니다. 출발은 이 아래에서부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더욱 주님 닮아가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모두 각 지체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각 지체입니다. 각자의 신앙의 모습, 성품, 가진 재능이나 열심에 따라서 누군가는 눈의 역할을, 누군가는 귀의 역할을, 누군가는 다리의 역할을, 누군가는 발가락의 역할을 감당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다 교회라는 몸을 구성하는데 꼭 필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11절과 12절에 말씀합니다.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서 사도로서, 선지자로서, 목사로서, 교사로서, 또한 각 지체로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각 지체로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때에, 나의 헌신과 수고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게 된다는 거죠.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다 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봉사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요?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 이게 주님이 원하시는 봉사의 정신, 교회를 위한 섬김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좀 힘들어도 잘 섬겨봐야지. 내가 좀 마음에 안 들어도 겸손해야지.” 하지만 예수님의 발 씻기심의 교훈은 “겸손하라.” “봉사하라.” 이런 차원이 아니라는 거예요.

  발을 씻긴다는 게 뭡니까? 아주 원초적으로 보면 사람의 가장 더러운 부분을 내 손으로 닦아 주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몸에 더러운 부분을 자랑하시는 분 계신가요? 없습니다. 더러운 부분은 다들 감추려고 합니다. 내 부족함이나 허물과도 같이 여깁니다. 따라서 그 더러운 발, 감추려고 하는 그 발을 내가 씻겨주는 것은, 그 사람의 허물을 내가 씻겨주는 것입니다. 봉사하다가 만나는 그 사람, 정말 내 마음에 안 드는 그 사람, 그 마음에 안 드는 부분 때문에 그만 두겠다는 게 아니라, 정말 마음에 안 드는 그 부분, 그 사람의 허물을 씻겨주는 겁니다.

  내 몸 하나 움직이고 살아가는 것도 모든 몸의 지체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고, 우리 교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의 각 지체로서 주어진 모든 사명 힘써 감당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데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함께 세워감으로 온전함을 이룹니다. 우리는 자주 교회를 병원에 비유합니다. 아픈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 병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환자들이 병원에 찾아가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온전함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병원에 가는 건 다 본전 찾기를 위해 가는 겁니다. 물론 날 때부터 육신의 약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다 살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들로 인해, 혹은 사고로 병이 생기거나 상처가 생기는 겁니다. 그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죠. 그래서 안 아픈 상태가 되면? 본전 찾는 겁니다. 원래 안 아팠는데, 아팠다가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니까, 본전 찾는 거죠. 이로 인해 육신의 온전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13절부터 16절까지 계속해서 말씀하는 것이 이러한 온전함을 이루는 과정에 관한 말씀입니다. 13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아는 것이 믿는 것으로 이어짐으로 온전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14절의 말씀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고, 세상의 속임수와 풍조와 유혹에 빠져 흔들림 없게 하는 것입니다. 역시 온전함이죠. 16절에 온 몸이 서로 다 연결되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서 그 몸을 자라게 하고, 잘 세워가는 것입니다. 역시 온전함입니다. 그런데 13절에서 16절까지의 모든 말씀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나 혼자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역시 모든 성도들이 함께 예배로, 기도로, 교제함으로 연결되어서 건강한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럼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각 지체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함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세워감으로 온전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누가요? 내가 하는 겁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저와 여러분들이 하는 겁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주어진 사명 감당할 때에, 2020년 더욱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로 세워져나가는데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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