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52) 의인이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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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52) 의인이 되었으므로 <로마서 12:1~2>

일요시사 0 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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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칭의” 우리 성도님들 많이 들어보신 말씀입니다. “믿음으로서 의롭다 칭함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서 의로운 존재로 인정 받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의로운 존재는 아니지만, 그렇게 인정해 주신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로마서 12장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오늘 1절에 이렇게 시작하죠. “그러므로”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에서 설명한 어떤 일을 근거로 이러한 일이 이루어진다라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럼 본문의 “그러므로”라는 말이 설명하는 내용이 뭘까요?

  

로마서는 16장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에서 11장까지와 12장부터 16장까지입니다. 1장에서 오늘 본문의 바로 앞선 11장까지는 이론입니다. 교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모든 교리의 중심이 앞서 말씀드린 “이신칭의”입니다. 이러한 내용 이후에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의인으로 인정받았으므로 이제 이러 이러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12장부터 16장까지는 의롭다 여김 받은 자로서의 실제적인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내용들입니다. 

  

신앙의 삶 속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성도로서,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의인으로 인정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모습을 내 삶 가운데 새겨가야 합니다. 그게 사도 바울이 말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 오늘 우리가 의인이 되었으므로, “의인이라 인정 받은 자,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의 흔적을 새겨가기 위해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신앙인으로 우리가 가장 깊숙이 새겨가야 할 삶의 흔적은 예배하는 삶임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배가 최우선입니다. 교회에서 많은 일들을 합니다. 교육도 하고, 봉사도 하고, 전도도 하고, 구제도 합니다. 나눔과 섬김의 삶도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 중에 교회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배입니다. 다른 그 어떤 중요하다고 하는 것도 예배보다 앞에 서면 절대 안 되는 겁니다. 김남준목사님이 쓰신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서문에 보면 저자의 이런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커다란 건물을 가진 교회나 값비싼 오르간이 있는 교회, 수많은 인파가 예배당을 메운 교회를 부러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슴 저미도록 그리워하는 교회는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어떻게 해야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가 될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예배를 귀하게 여기면 되는 겁니다. 예배하는 이 시간을 내 생애 가장 최고의 시간으로 삼으시면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십시오.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 하나님 받으실만한 거룩한 예배를 위해, 뭘 어떻게 드리라고 하고 있나요?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선 내가 살아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죽은 제물은 제물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죽은 제물은 아무리 비싼 것도, 아무리 큰 것도, 아무리 기름진 것도 제물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소 한 마리, 양 한 마리, 염소 한 마리, 비둘기 한 마리를 끌고 와서, 제단 앞에서 피를 흘려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모습이었습니다. 

 

 바울은 크나 큰 박해 속에서 말합니다. “너희가 예배를 드리되,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 다시 말해, 예배드리다가 죽는 일이 있을지라도 예배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자체로 예배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실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주일마다 예배 할 때에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 전에서, 또한 내 삶의 자리에서, 매 순간 살아 있는 예배로 주님께 영광 돌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뭔가 다른 삶입니다. 

 

유명한 설교가 중에 한 분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예수 믿기 전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과 예수 믿은 후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히 다릅니다. 예수 믿기 전에 내 삶의 모습과 예수 믿은 후의 내 삶의 모습은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 초반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다시 말해 세상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모습 그대로 살지 말고, 뭔가 다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흔히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똑같은 일을 해도 교인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세상의 평가기준 자체가 달라집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 그래?” 이 말 한 마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은 교인들에게는 좀 더 높은 가치 기준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억울해 할 것이 없습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세상 사람들도 교회 다니는 사람은 일단 뭔가 달라야 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가치 기준과는 뭔가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격이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말씀하죠.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한 마디로 딱 정리하면 이겁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품격있게 살아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뭔가 다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격을 갖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내 성격, 성품, 말투, 행동, 습관, 세상적인 삶의 방식,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세상과 똑같은 수준, 아니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못한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의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에 합당한 뭔가 다른 삶. 격이 높은 성도, 격이 높은 우리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분별력 있는 삶입니다. 

 

의인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잘 판단하고 결정하고 살아가게 하는 지혜를 일컬어서 분별력이라고 합니다.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쁜 것을 버릴 줄 아는 것, 붙잡을 것을 붙잡고,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것, 그게 바로 분별력입니다. 이러한 분별력을 위해서는 어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의 걸음을 걸을 때, 오늘 주제와 같이 의인이라 인정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에, 분별력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여기서의 분별력은 단 하나의 기준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2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세 가지로 표현되죠.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그런데 이 세가지가 다 공통적으로 향하는 것이 하나입니다. “뜻”입니다. 누구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믿는 자의 분별력 있는 삶의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 세상에서는 분별력의 기준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넘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분별력입니다. 믿음의 삶, 신앙의 걸음을 걸을 때에도 매 순간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이 행동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이 말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 쪽으로, 저 쪽으로”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참 좋을 터인데, 때로는 어떻게 가야할지 참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너무 어려우면 하나만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살리는 쪽에 있다. 하나님의 뜻은 소망을 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깨어 기도함으로 주님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매.” 내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 바른 길을 알려 주시고,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 믿어 의인으로 인정받은 우리, 그에 합당한 영적 분별력 있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의 자리에서 의의 자리로 옮겨진 존재입니다. 예수 십자가를 향한 그 믿음 하나로 의인이라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서 의롭다 여김 받았으므로, 예배하는 삶, 세상과는 뭔가 다른 삶,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분별력 있는 삶을 통해, 예수 믿는 자로서 삶의 흔적을 새겨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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