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63)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라!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63)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라! <누가복음 24:1~12>

https://www.youtube.com/watch?v=Rk8ulW5k_Sw

 

 

오늘은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부활의 소식을 듣고, 기쁨으로 생명의 자리에 나아간 이들이 보입니다. 동일한 소식을 접하고도 허탄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놀랍게 여기는 것에만 머무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도 똑같습니다. 예수 십자가 부활의 소식 앞에 기쁨으로 생명의 자리에 서는 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허탄하게 바라보며 조롱하는 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비난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식이 들려졌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주신 바 말씀 앞에 깨어 다시 살아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 말씀입니다.“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라.” 

 

처음에 여인들은 예수님의 주검을 찾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예수님의 주검 대신에, 오히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는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눈으로 주검을 발견하려 하였는데, 귀로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7절과 8절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나아가서 열한 사도와 모든 사람에게 알립니다. 자신들이 들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사도들에게,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합니다. 하지만 저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11절에 보면 “여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서 믿지 아니합니다.” 베드로는 그래도 무덤에 가서 확인까지 해보지만, 그저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36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을 찾아가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하고 믿으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자신이 영이 아니라, 육신임을 보여주시는데, 그래도 제자들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만 여겼다고 4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이리 답답할까요? 왜 제자들은 여인들로부터 소식을 들었음에도 믿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직접 앞에 나타나셨는데도 믿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여전히 믿지 못할까요?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의아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기억할 것은, 내가 지금 믿는 자리에 있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믿고 싶다고 다 믿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믿는 자리에 있잖아요. 그게 감사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믿지 못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기 전에, 내가 믿는 자리에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내가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목이 터져라 매 해 부활주일마다 찬양했던,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그 찬양의 고백이 하나의 멜로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신앙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라.” 부활의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말씀입니다. “신앙이여! 다시 살아나라.” 

 

얼마 전에 매일성경 묵상을 보는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십자가에서 내려옴이 아니라, 십자가를 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 부활의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 있는데, 그게 뭘까요? 일단 죽어야 합니다. 부활은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살아서는, 죽지 않고서는 절대로 부활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대제사장이 말합니다. 서기관이 말합니다. 모든 군중들이 말합니다. 옆에 함께 달린 죄수도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예수님께서 우리 같은 성품을 가지셨다면 어땠을까요? “그래. 내가 내려가서 본때를 보여줘야지.” 그러면 본때를 보여주는 것은 가능했을지 몰라도, 부활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없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에서 내려와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십자가에서 내려와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죽음을 겪지 않고는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다시 살아나기 위한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옴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부터, 우리부터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 잘 하는지 못하는지 그런 거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죽고,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내가 먼저 십자가 짊어지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해야 합니다.  23장 후반부에 보면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자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주검을 가지고 자신이 미리 마련한 무덤에 정성껏 장례를 치러줍니다. 그리고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여야 될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저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주검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고, 향품을 발라드리고 해야 할 제자들은 어디에서 뭘하고 있었나요? 그러다가 생각이 나 자신을 향합니다. 그럼 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24장의 부활의 영광만 바라보면서, 앞선 23장의 예수님의 십자가는 외면하려 합니다. 부활의 영광을 노래하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외치면서도, 정작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당하신 예수님은 그대로 십자가에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신앙이여! 다시 살아나라.” 여러분! 죽어야 사는 겁니다. 십자가를 짊어져야 부활의 새아침을 맞이하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제까지의 삶은 죽어있었을지라도, 어제까지는 십자가를 외면하는 모습이었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은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십자가 짊어지고, 나의 신앙이 다시 한 번 살아나는, 진정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말씀입니다.“교회여! 다시 살아나라.”  

 

이제 교회도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키위교회의 현실, 지금 겪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 이게 이미 저 유럽에서, 저 미국에서 다 있어졌던 현상들이잖아요. 코로나19로 인한 사태 속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 속에서의 교회의 현주소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 때에 비난의 화살을 세상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모든 한국교회들이 십자가 위에 스스로를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늦기전에 한국의 교회들이 깨어 기도함으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이 땅에 교회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 그것을 전하면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주의 복음을 전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고, 사람들 보기에 칭찬받고,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을 날마다 더해주시고... 한 마디로 영적 부흥과 행복이 넘쳐나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행복하기만 했나요? 박해도 있었습니다. 그 안에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려움과 위기를 겪으면서 교회는 점점 더 견고해지고, 세계 곳곳으로 확장되고, 수많은 순교자들의 흘린 피의 댓가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신앙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때에, 마음껏 모이지 못하는 이 때에, 교회를 위해 더 기도하시고, 만나지 못하는 성도님들을 생각하며 더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한국교회를 위해, 이곳 키위교회를 위해, 세계 곳곳의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교회여! 다시 살아나라.”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뉴질랜드 광림교회가, 지구촌 세계 모든 교회가 주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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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0-04-17 16:04:58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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