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23) 어디까지 이르렀든지-중간점검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23) 어디까지 이르렀든지-중간점검 <빌립보서 3:12~16>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에 출전했던 영국의 헤롤드 아브라함과 에릭 리들이라는 두 육상선수의 실화를 그린 [불의 전차]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중 에릭 리들은 아마도 예화에서 한번씩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는 주일에는 달리지 않습니다.” 올림픽 100미터 예선이 주일에 열린다는 말에 자신의 주 종목인 100미터를 포기하고, 대신 400미터에 출전해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기적 같은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에릭 리들의 더 영화같은 삶은 그 뒤에 이어집니다. 23세의 나이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바로 다음 해에 그는 중국 선교사로 떠납니다. 중국에서 선교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고, 일본군 포로로 붙잡히게 됩니다. 포로 수용소에서도 그는 선교사적인 사명을 감당합니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달리기 재능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빨리 달릴 때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이기려는 것은 단 하나,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 위해서이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고백대로 경기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렸고, 또한 자신의 인생 전체에서는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렸습니다. 우리도 지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습니까? 본문 16절에 말씀합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이 말씀은 성도들의 신앙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모습도 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야 함을 말씀합니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나 자신의 자리? 믿음의 분량? 영적 상태?와 같은 지금 현재 내 신앙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점검하고, 또한 영적인 성장을 위해 다시 새롭게 일어서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점검할 것은, 나의 신앙적인 삶입니다. 


우리는 먼저 나의 신앙적인 삶, 즉 영적인 삶이 어떠한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몇 가지로 말 할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겁니다. “흔들림 없음.” 나무 한그루도 어린 나무는 비바람에 휘청거립니다. 하지만 비와 바람과 뜨거운 태양볕을 견녀내고, 큰 나무로 성장하면 어지간한 것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영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는가? 나의 실제적인 삶 속에서 이런 저런 시련에, 문제에, 시험거리에, 어려운 현실에 쉽게 흔들려 주저앉는가? 넘어지지 않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는가? 이 차이입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계속 말씀드리는 겁니다. “말씀과 기도 위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1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이 오늘 빌립보서를 기록한 것은 로마에 감금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6년 후에 바울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했을 때는 바울이 자신의 삶을 거의 정리해나가는 시점이었다는 거예요. 이 정도쯤 되면 바울이 자부할만하지 않습니까? “내가 이미 얻었다. 내가 온전히 이루었다.” 

  

하지만 바울은 자만하지 않고 고백합니다. “나는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이어서 빌리보서 4장 4절에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어진 현실은 감옥인데, 그 안에서도 기뻐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주어진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의 고백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이러한 믿음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여러분! 자신의 믿음이 연약해지는 것 같다 싶은 생각이 들면, 히브리서 11장을 읽어보십시오. 믿음은 나를 의지하는 게 아닙니다. 나 자신을 믿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게 믿음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굳건히 서서 흔들림없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의 신앙의 삶,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믿음으로 흔들림없이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점검할 것은, 나의 교회생활입니다.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온 곳은 마태복음 16장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신앙의 고백을 드리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교회라는 말에 사용된 단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입니다. 이 말은 “밖으로”라는 뜻의 “엑크”와 “부르다”라는 뜻의 “칼레오”의 합성어로, “집회,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면, 베드로와 같은 신앙의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따로 이렇게 불러서 모은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예수 믿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럼 우리 자신의 교회 생활을 점검할 때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답이 나오죠. “나는 얼마나 모이기에 힘썼는가?”  교회의 모임중 첫 번째는 예배입니다. 나는 주의 제단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자리에 얼마나 직접 참여했는가? 

  

또한 교회에는 예배의 모임 뿐만 아니라, 다른 모임들도 많이 있습니다. 각 선교회에서 친교의 모임도 있습니다. 각 여선교회별로, 각 지구별로 애찬관 봉사를 위한 모임도 있고,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자리로의 모임도 있습니다. 각 기관에서 주어진 사명 감당하기 위한 모임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가 중요하니까, 예배의 자리에만 잘 모이면 되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하는 자리는 당연히 열심히 모여야겠지만, 함께 즐기고 교제하는 자리에도 잘 모여야 합니다. 교회는 일단 모이는 것이 힘이거든요.

  

다 아시다시피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모여서 예배할 수 있는 나라가, 지금 이렇게 마음껏 모여서 먹을 것을 나누며 교제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언제나 어디서나 마음껏 모여서 예배하며, 교제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모이고 싶어도 모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 몫까지 더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더불어 모이기에 힘쓰면 실과 바늘처럼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게 있습니다. 바로 협력이죠.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앞서 에릭 리들도 말하죠. “하나님께서 나에게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립니다. 오늘 바울은 본문에서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나는 달려가노라.” 아니,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데, 어딜 그렇게 달려가겠다는 건가요? 어떻게 해서건 자신의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편지를 쓰고, 옥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에게도 오늘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나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해서 이 땅에 거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각 지체로서 모이기에 힘쓰고, 은사에 따라 유익하게 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점검할 것은, 나의 세상 속에서의 삶입니다. 


중국선교를 감당했던 “딕 힐리스”라는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영혼은 선교지이다. 그리스도가 있는 모든 영혼은 선교사이다.” 그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사명이 주어진 것인가요? 내 삶의 현장 속에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 경우들이 있어요. “그 사람 교회 다닙니다.” 그러면 “아. 그래요. 역시 그랬군요.”라는 말을 듣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그 사람 교회 다닙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교회 다닌다구요?” 그런 반응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각자의 이름이 불려질 때에 어떤 반응이 나올 것 같으신가요? 

  

여러분! 오늘 주제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겁니다. 지난 주에도 잠깐 그런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는 그럴 때가 많습니다. 강단에서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래. 그 사람 이렇게 해야 돼.” 그러면서 항상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시키려 한다는 거예요. 정말 잘 하려면, 나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 지적하면서 보는 것처럼, 나 자신을 그렇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믿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내 말과 행동을 통해 어떤 향기를 드러내고 있는가? 세상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각인되어가고 있는가? 스스로를 잘 돌아보시고,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앞으로의 모든 삶 속에 믿는 자로서 예수의 흔적을 새겨가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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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1-09-17 15:52:06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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