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32); 네가 어디 있느냐?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32);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8~21>

늘 말씀의 주제는 바로 이겁니다. 우리 모든 인생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근원적인 질문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오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질문, 아니 인류를 향해 최초로 하신 질문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네가 누구냐? 네가 왜 살아가고 있느냐? 네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죠. 하나님께서 나의 정체성을 향해서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은 이러한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는 삶입니다. 지금 예배하는 것, 지금 내가 가족을 대하는 것, 사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학업 중에 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질문에 내 삶으로 답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네가 어디 있느냐?” 주의 부르심에 우리가 어떤 답을 올려드려야 할까? 함께 생각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3장은 인간의 궁극적인 비극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숨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발각되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물으십니다. “아담아!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열매를 먹었느냐?” 12절에 아담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하와의 탓으로 돌립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서 – 하나님에게까지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후에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뱀에게 핑계를 댑니다. 오히려 뱀은 하나님께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비극이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죄” 그리고 “그 죄를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 심지어 하나님께로까지 그 화살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뭐라고 했어야 하나요? “하나님! 제가 먹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이게 정답이잖아요. 이런 정답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담은, 왜 우리는, 왜 나는, 이렇게 즉각 인정하지 못하고, 남탓하면서, 환경 탓하면서 살 때가 많은걸까? 

  

이에 대해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하나는, “인간은 나에게 좋은 것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는데, 그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섰다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지만, 하와는 뭐라고 말합니까?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외면하면서, 이른 바 물타기를 시전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새로운 변화의 역사를 이루어갈 길이 열려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보다 더 좋은 길을 알고 계심을 믿고, 내 주장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는 내 생각, 내 말과 행동을 통해서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새겨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나의 삶에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주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창세기 3장이 인간의 궁극적인 비극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비극이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죄입니다. 더 나아가 죄를 짓고서도 인정하지 않는 더 큰 죄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요? 하님과의 관계성의 파괴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악과 금지법”을 어겼습니다. 법을 어기니까, 죄가 들어옵니다. 인류 최초의 죄, 원죄가 생겨난 순간이죠. 죄의 가장 큰 문제는 관계성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 죄로 인한 비극의 결과가 이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파괴입니다. 이는 창세기 3장 24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는 것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이제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장벽이 세워졌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아담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하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여기 아담의 대답을 잘 보십시오. “내가 벗었으므로” 그러면 무슨 말이 이어져야 하나요. 벗었으면 부끄러워서 숨어야 하는데,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대답합니다. 지금 아담은 죄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숨은 겁니다. 벗은 것 자체는 사실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벗은 몸이 부끄러워 숨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은 죄로 인한 수치가 드러남이 두려워 숨은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숨게 만듭니다. 남탓을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마저 화살을 돌리게 만듭니다. 

  

로마서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길을 만드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예비해주십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길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본문 15절에 말씀하는 것처럼, 이미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사탄은 우리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지만,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할렐루야!

 

십자가를 바라보며,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흔들림없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실 때에, “주님! 제가 지금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주님 열어주신 구원의 길에 서있습니다. 주의 사명 감당하는 중에 있습니다.” 담대하게 믿음으로 고백하며, 주님과의 친밀함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자신들이 벌거벗은 사실을 깨닫게 되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습니다.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는,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시선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부르시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자, 하나님이 몰라서 물으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전지전능 –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것도 이미 알고 계셨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그 자리에도,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은 그 자리에도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물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미 다 알고 계시면서도 “네가 어디 있느냐?” “누가 너의 벗었음을 알려줬느냐?” “네가 그 열매를 먹었느냐?” 세 번씩이나 물으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기회를 주신 겁니다. 자백할 기회, 용서를 구할 기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인간의 궁극적인 비극을 발견하게 되지만, 더 귀한 것은 그 비극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부인하고, 핑계를 대고, 남을 탓하고 있는 아담과 하와를 향해 징계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지만 모든 말씀을 마친 후, 2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징계를 받고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무고한 짐승이 대신 희생을 치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있어질 인류구원의 역사를 위한, 나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 주님께서 물으실 때, 결국 우리의 대답은 이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주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이 주 은혜임을 나는 믿습니다.” 주의 은혜 안에서 그 은혜만을 고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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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1-09-17 15:54:50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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