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11) - 공주행 버스를 타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11) - 공주행 버스를 타다

일요시사 0 1586


니체의 말대로 신은 죽은 것이 아닐까? 아니 신이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내가 믿어왔던 신은 정말 살아있을까?... 신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신이 살아있다는 사실만 알아낼 수 있다면…”  

창 밖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비 내리는 가을거리를 바라보며 둘째 딸이 사준 커피 머신에서 롱 블랙을 한 잔 뽑아 든다. 어디론가 훌쩍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충동을 한 잔 커피로 달래며, 지나온 시간을 따라 마음의 여행을 떠난다.

혼자 첫 여행을 떠나본 것은 대학교 일학년 때였다. 대학에 들어가자 고등학교 시절 가졌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은 진짜 존재하는지, 예수는 정말 신의 아들인지,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은 정말 있었던 일들인지, 많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고교시절에 묻어두었던 의문들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죽은 자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란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육신은 죽고 영혼은 불멸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땅 속에 묻혀 썩어 문드러진 자, 뼈다귀만 남아있는 자, 게다가 화장해서 뼈까지 가루로 뿌려진 자까지,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란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어지럽다.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말할 수 없는 공허감이 밀려들어온다. 니체의 말대로 신은 죽은 것이 아닐까? 아니 신이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내가 믿어왔던 신은 정말 살아있을까? 신이 살아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신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신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신이 살아있다는 사실만 알아낼 수 있다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진다. 학교야 재수한 셈 치고 일년 쉬어도 그만이다. 휴학계를 내고 공주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나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신을 찾아 움직인다. 서울을 빠져나간다. 말할 수 없는 자유가 느껴진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 같다. 홀가분한 마음이다. 나를 누르고 있던 짐은 신인가, 종교인가? 버스가 빨라진다. 나도 점점 빠른 속도로 도망가고 있다. 신으로부터, 종교로부터 도망가고 있다.

그 여행은 긴 여행이었다. 신은 어느 곳에도 없다. 오랜 여행에 지쳤다. 더 이상 신을 찾지 않기로 한다. 설사 신이 있더라도, 그 신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신이다. 찾는 자에게 나타나지 않는 신이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이런 신이라면 포기하는 게 낫다. 어리석은 자는 신을 찾지만, 현자는 신을 초월한다. 신을 포기한다. 이제 신이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느껴진다.

공주행 여행은 30여 년 동안의 긴 여행이었다. 긴 여행 끝에 신은 뇌리에서 지워져 가고, 나는 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가 있었다. 헌데 신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신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가 있던 그 자리에서 나는 신을 만났다. 내가 신을 찾은 게 아니라, 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멀리 도망갔지만 부처의 손바닥 안에 있었듯이, 나의 긴 여행도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픽션과 논픽션이 교차되는 곳에서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을 찾아나선 여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는 여행으로 바뀌었고, 그 여행은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여행이 된 것이다. 한창 젊은 시절에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 힘차게 떠난 여행이었다. 오랜 여행길에 피곤하고 지쳐서 이제 여행을 끝내고 싶어할 때, 하나님은 찾아 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느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품고 계셨지만, 나는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이면 교회로 향한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도 듣고 예배를 드린다. 이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갈까…. 또 일상생활로 돌아간 후에도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몸은 교회에 나와 있고, 입술은 주님을 찬양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사람은 없을까… 눈에 보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을 느낄 수 없다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폴라 다시라는 사람이 쓴 ‘마음 여행’이란 책이 있다. 24살에 결혼한 폴라는 뜻밖의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직 두 살이 채 되지 않은 딸을 잃었고, 당시 그녀의 배 속에는 둘째 아이가 3개월째 자라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삶에 대한 환멸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녀는 이때 갈갈이 찢겨진 마음을 부둥켜 안고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마음의 여행을 떠난다. 산산이 부서지고 조각난 삶의 파편들을 모으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물겨운 마음의 여행을 떠난다. 오랜 여행 끝에 그녀는 자신의 삶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어둠의 가장 깊은 속에서 그녀 곁에 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인생은 여행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을 떠나기까지 인생은 여행이다. 어떤 이에게는 하나님이 밝히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여행이다. 공주행 버스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하나님을 찾아나선 여행자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려는 여행자도 모두 싣고 공주행 버스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채원병목사는 리무에라에 있는 오클랜드정원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신앙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09) 410 5353, 021 154 3398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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