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십자가도 아멘입니다. 고전 1:20, 눅 22:39-46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고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바로 ‘아멘’입니다. ‘아멘’ 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그 뜻이 ‘진실로’, ‘참으로’, ‘그대로 되기를 내가 원합니다.’입니다. 즉 아멘은 어떤 것을 확증하거나 동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송 끝날 때 “아멘” 하는 것은 “내가 이 모든 것을 믿습니다.”라는 찬송의 모든 고백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가 끝날 때 “아멘” 하는 것은 “나도 이 기도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동의합니다.”라는 기도의 모든 고백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아멘’하면 내가 기도하지 않았어도 내가 한 것처럼 그 축복이 나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아멘의 신앙’이 있습니다. 과연 아멘의 신앙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 가사에 은혜가 밀려오면 나도 모르게 아멘이 나옵니다. 설교도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올 때,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아멘이 나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한 제목이 응답받으면.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만 아멘의 신앙일까요?
한 부흥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천국은 어떤 곳보다 비할 수 없이 좋은 곳입니다.”라고 했더니 모든 교인들이 “아멘”하더랍니다. 또 목사님이 “여러분 모두, 예수 믿고 다 천국에 가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더니 온 교인들이 더 큰 소리로 “아멘” 하더랍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그렇게 좋은 천국을 이왕 가실 바에는 당장 가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더니 아멘이 쑥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아멘의 신앙은 내 입에 달고 듣기 좋은 말씀만 “아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기도가 응답 되고 내가 원했던 일, 좋은 일이 이루어질 때만 “아멘, 감사합니다.” 하는 게 아닙니다. 아멘의 신앙은 비록 내 입에 쓰고 듣기에 너무나 고역인 말씀이라도 “아멘”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무슨 말씀이든, 무슨 상황이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입니다. 오늘 말씀은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신앙의 3가지 귀한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아멘의 신앙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함께 은혜 받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 달려가는 신앙입니다.비행기 안에서 한 귀여운 꼬마가 기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녔습니다. 꼬마는 돌아다니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 승객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도 하고 아주 친해졌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즐겁게 다니든지, 아예 엄마 아빠는 잊어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 기류가 이상해지고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이가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달려간 곳이 어디였는가 하면 바로 엄마의 품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이상기류를 만나고,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할 때,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어렵고 다급한 순간을 만나 하나님께 달려가는 것도 귀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욱 귀한 신앙은 내 삶이 좋든 나쁘든, 편안하든 어렵든, 늘 주님께 달려가는 신앙입니다.
본문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기도하러 가십니다. 이 “습관을 따라”는 “형식적인”것이 아니라 “늘 해 오셨던 것”을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늘, 언제나 하나님께 달려가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늘 하시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감람산을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인생에서 갑자기 문제의 폭우가 쏟아지고 고난의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우리는 하나님께 달려가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더라고 예수님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언제나 나아가 아멘으로 응답하는 신앙을 가져야만 합니다.
2. 기도로 승부를 보는 신앙입니다.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아주 간단한 진리는 내 힘으로 하다하다 안될 때, 그것은 기도하라는 신호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에게도 그런 때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밤이 지나면 가룟 유다에게 팔려 체포가 되고 내일이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열심히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본문 44절 보니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지금 예수님은 기도에 생명을 걸고 계십니다. 그야말로 사생결단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승부를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를 당해서 도무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고, 길이 없을 때 우리는 기도로 승부를 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건 기도로 매달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3. 용기를 가지고 벼랑 앞에 당당히 서는 신앙입니다.기도의 은혜는 한 마디로 문제를 피하게 하시는 은혜가 아니라 당당히 그 문제에 맞서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감람산에서 무엇이라고 기도하셨습니까? ‘하나님, 할 만 하시거든 이 십자가를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43절에 보니까, 천사를 보내셔서 예수님의 기도를 도우셨습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왜 힘을 더하셨을까요? 십자가를 피하지 말고 십자가를 당당히 맞이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기도를 충만히 한 사람, 하늘로부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십자가를 피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능력으로 기도하니까 십자가가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진짜 기도는 기도하면서도 “하나님, 십자가는 안 됩니다.”가 아니라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십자가도 아멘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고 난 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 그런데 그 무리들 안에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가르치던 유다가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스승을 은 30에 팔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기꺼이 맞이하십니다. 그리고 유다의 입맞춤도 받습니다. 유다의 이런 행동은 얼마나 가증합니까? 그의 입맞춤은 사랑의 입맞춤이 아니라 죽음의 입맞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입맞춤 다 받으시고 스스로 잡히십니다. 아무 저항도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하면, 이처럼 십자가도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