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는 심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롬 1:18-23, 히 12:5-6)

기독교


 

징계는 심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롬 1:18-23, 히 12:5-6)

 

몸에 병이 있을 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는 병을 잘 아는 의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다음은 병을 병으로 알고 인정해야합니다. 환자의 병은 의사를 만나고 병을 병으로 인정할 때라야 치료가 가능합니다. 영혼의 병인 죄도 마찬가집니다. 인간은 다 죄 아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죄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죄라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잘 아시고 영혼의 가장 유능한 의사이신 분인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해결하기 위해 죄를 죄로 알고 인정해야합니다. 병을 병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듯이,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7:1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치료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먼저 우리의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십니다. 함께 3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인간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1:18)’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피조물의 가장 큰 죄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데 있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면 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해가 없어지거나 사라진 게 아닙니다. 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을 알아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음이라(1:19)” 하나님을 알 만한 것,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안 보여서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고 깨달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과 자연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1:2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마음과 자연을 통해 주신 것은 핑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 사람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언제 제게 말씀하셨나요?” 이런 핑계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가장 무서운 죄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 즉 끊임없이 다가오셔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1:21)” 하나님을 계속 거부하고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은 네 가지 구체적 특징을 가집니다. 먼저는 예배의 실패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며(1:21)” 둘째는 감사가 사라집니다. “감사하지도 아니하고(1:21)” 셋째는 사고가 뒤틀립니다. “생각이 허망하여지며(1:21)” 마지막은 마음이 어두워집니다(1:21). 이것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죄가 가져오는 첫 번째 결과입니다.

 

2. 죄에 대한 가장 무서운 심판은 내버려 두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에 대해서 진노, 즉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즉각적인 심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거나,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내리시는 조치입니다. 초대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밭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다가 돈의 일부를 감추었던 사건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냥 그 사람을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1:24)”,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1:26)”,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내버려 두사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로마서1장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무디 목사님에게 여자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범죄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시데요. 이걸 볼 때 하나님은 안 계시는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부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부인! 부인은 지금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자 교인이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 라고 반문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요." 가장 무서운 심판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주변에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데 만사형통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를 정도로 잘 되고 성공하는 것은 심판 중에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믿음으로 살아보고자 애쓰는 교우들은 문제도 많고 사는 게 고달플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과 진노가 내버려 두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하시고 아끼는 자들은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들을 가만히 놔두질 않습니다. 내버려 두신 자들은 죄악 속에서 뒹굴어도 그냥 놔두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조금만 죄악가운데 거해도 어려움을 주십니다. 시험과 환난을 사용하여 우리 신앙의 열매를 크게 하십니다. 본문 히 125-8절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새 한 마리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무거운 날개를 두 개씩이나 양어깨에 달아 놓으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가 날 수 있는 것은 그 무거운 날개 때문이란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날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무거운 날개와 같은 고난, 시험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시험은 날개와 같아서 그것 때문에 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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