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원병의 아침 묵상 156 ] 떠오른 세월호를 보며,,,

기독교


 

[ 채원병의 아침 묵상 156 ] 떠오른 세월호를 보며,,,

일요시사 0 2602

세월호가 드디어 떠올랐다. 1000일이 넘는 세월 동안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에 잠겨있던 어린 학생들의 시신과 함께 떠올랐다. 세월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던 세월호가 아픈 추억과 함께 떠올랐다.

 

3년 전인 2014 4 16일에 있었던 일이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항해하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였다. 당시 세월호에 타고 있던 476명 중에서 172명이 구조되었고, 실종 9명을 포함해서 304명이 희생된 대형참사였다. 그 이후 세월호는 인양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다 속에 가라앉은 채, 잊혀져 가는 듯 했다. 그런 세월호가 드디어 인양이 되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고원인에 대해서도 잠수함 충돌 설 등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세월호는 왜 지난 3년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어째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선고되자 마자 인양이 되었을까? 우연의 일치라고 믿고 싶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썩 편치가 않다. 세월호와 관련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문의 7시간도 아직 명확하게 규명이 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세월호 사건이 영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들은 혹시 세월호가 영원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영원히 잊혀지길 바랬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세월호는 마침내 떠올라 모습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삼성동 자택에서 대리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그녀의 말처럼 떠오른 세월호와 함께 묻혀있던 진실도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동안 어린 자식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분노를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들의 아픔은 단지 자식을 잃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 학생들은 자리를 지키라고 방송해 놓고, 선장과 선원들은 자기들만 탈출을 했다. 이렇게 학생들은 배에서 나올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수장되었던 것이다. , 출동한 해경은 선장과 선원들만 구해서 돌아왔다. 배에 남아있는 학생들을 구조해보려는 어떤 시도조차도 없었다. 유가족들의 아픔은 단지 자식을 잃은 아픔일 수가 없다. 그들의 아픔은 분노의 아픔이다. 더욱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도 하고, 매도 당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나갔다. 그들의 정당한 아픔과 분노와 요구는 진실을 은폐하고 싶었던 자들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매도 당하며, 함께 매장당하고 있었다.

 

참으로 세월호 사건은 유가족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혹독한 바람이었다. 1000일 동안 그들의 인생 가운데 거세게 불어 닥친 잔인한 시련의 바람이었다. 이제 떠오른 세월호와 함께 모든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지고, 분노와 고통과 억울함이 가라앉기를 바란다.

 

바람,,, 인생에 부는 바람,,, 인생을 살다 보면, 참으로 여러 가지 시련의 바람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바람이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이런 바람, 저런 바람 맞아가면서 걸어가는 것이 인생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있어서는, 모질게 부는 바람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부는 바람이다. 설사 그것이 세월호 참사처럼 지독히도 사납고 잔인한 바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설사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 잔인한 바람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부는 바람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에게 임하는 바람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5:3),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살전 5:16, 18).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다. 고난의 바람이 혹독하게 불 때조차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어떤 고난의 바람도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서 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고난의 바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섭리 안에서 부는 바람인 것이다.

 

주님께서 달리신 골고다 언덕은 가장 참혹한 고난의 바람이 불던 곳이었다. 창세이래로 인류역사상 가장 모진 고난의 바람이 불었던 자리가 바로 골고다의 십자가였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철저한 죄인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를 당하는 자리였다. 세상으로부터 버림 당하시고, 하늘 아버지로부터도 버림 당하신 거센 바람이 불던 자리였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27:46)

 

 그러나 그 골고다 십자가의 자리는 가장 진한 사랑의 향기가 날리는 자리였다. 처절한 고난의 바람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그 크신 사랑으로 끝까지 품어주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힘으로 악의 세력을 제압하는 십자가가 아니다.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사랑으로 악을 이기는 사랑의 십자가다.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시며, 상한 심령들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다. 십자가의 피로 세운 사랑의 나라다. 골로새서 1 6절은 말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하나님의 나라를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라고 하였다.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 주 예수 안에 있는 삶은 참으로 역설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하나님께서 극진하게 사랑하시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분에게 죄를 정하시고, 죄를 심판하심으로써, 우리 죄인들을 거룩하고 흠 없고 죄 없다 하시면서 이루신 하나님의 역설적인 사랑의 아들의 나라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의 나라다. 극진히 사랑하시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역설적인 아픔의 사랑의 나라다. 견딜 수 없는 고난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우리를 품어주신 주님의 사랑의 나라다. 설사 인생에 어떤 고난이나 고통의 바람이 분다고 할지라도, 그 바람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더 큰 우산 아래에서 부는 바람일 뿐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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