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요 4:19-26)
스페인의 한 가정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가출한 아들로 인해 아버지는 당황하고 괴로웠습니다. 사방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자, 아버지는 신문에 아들을 찾는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버지가.” 약속의 날, 아버지는 약속한 장소에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파코라는 이름의 아들들 800명이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코’라는 이름이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도 하나님을 떠난 이 땅의 수많은 영적인 파코들을 찾고 계십니다.
본문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으시는데, 특별히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그 예배자에 대하여 함께 3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예배가 세워져야 인생이 세워집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여인은 영적으로 파산한 상태였습니다. 영혼의 깊은 갈증이 있었고, 그 갈증을 사람에게서 해결하다 실패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꾼 전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여인의 상태를 아셨습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네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그녀는 자신의 영적파산상태가 드러나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대화의 화제를 ‘예배’로 바꿉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4:20)” 그녀가 대화 중에 갑자기 ‘예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신앙적인 자기변명을 늘어놓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여인은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예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무너지고 나니 인생이 뒤죽박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인생도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배가 세워지면 인생도 세워집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될 때, 인생의 성공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지으신 목적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배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목적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면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가장 큰 부자였던 록펠러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10가지의 유언을 지켰습니다. 그 유언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십일조를 꼭 드리라’는 유언이지만, 유언의 제일 첫 번째는 예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너는 예배 30분전에 도착하여 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가장 정성껏 예배를 드려라” 이 첫 번째 유언을 록펠러는 평생 동안 지켰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를 바르게 드림으로 예배의 성공자가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생을 세워주셨습니다.
2.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께 예배함’ 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예배의 중요함을 알았고, 또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4:20)” 여인의 말은 예배 장소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배의 장소에 관해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오랜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은 ‘그림심산’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산이라 믿었고 거기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느혜미야시대에 성전을 짓고 그림신산에서 예배했습니다. 반대로 유대인들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세운 성전만이 유일하며 다른 성전은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1)”고 하셨습니다. 즉 예배는 결코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하나님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으면 예배 안에 이루어지는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예배에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나와서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에 예배에 실패하게 됩니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예배에 나와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왔습니다. 저를 이 예배에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 나를 늘 지키시고 보호하신 하나님. 제가 온 마음과 정성,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주님을 찬양하오니 받아 주옵소서.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결단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3.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하나님께서는 참되게 예배하는 방법에 대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영과 진리로라는 말이 “in spirit and truth”라고 되었습니다. 즉, 영 안에서와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1) 영 안에서 예배하라는 다른 말로 성령 안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령 안에서 예배한 가장 유명한 사건은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모였던 그 자리에는 성령이 가득했습니다. 성령이 가득하여 각 사람 머리 위에 불의 혀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행2:3).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성령 안에서 예배하기 전까지 그들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습니다(행1:14). 성령을 주시기를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예배하는 것은 성령이 예배 가운데 운행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예배를 참여할 때 성령의 일하심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2)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배할 때 마음 자세가 진리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즉 예배를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예배를 드리라(마5:23-24)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일 때 우리 마음이 진리로 환해야 합니다. 환한 마음은 진리의 마음입니다. 사랑과 용서의 마음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리 안에서 예배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