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묵상 162; 패륜아,,, 그리고 하나님의 아픈 사랑 이야기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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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 10:46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패륜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패륜아,,,
20여 년 전에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았다. 요즘에도 가끔 유 튜브를 통해서 동물들의 세계를 접하곤 하는데, 동물들의 세계를 보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어느 어미 들소의 새끼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낯이 붉어진 적이 있다. 들소와 사자의 싸움 이야기다. 원래 들소는 사자의 졸은 사냥감일 뿐,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아프리카의 평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기 들소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신나게 돌아다닌다. 아기 들소에게는 모든 것이 다 새롭고 신기해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어미 들소는 이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잘 안다. 아기 들소를 따라다니며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 아기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위험은 소리 없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법,,, 아기 들소가 간 곳에는 이미 여러 마리의 사자가 숨을 죽이고 매복해 있었다. 사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기 들소가 목표물이다. 사자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어미 들소는 위험을 감지한다. 사자의 수는 다섯 마리,,, 모녀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러나 사자들은 엄마의 사랑의 힘을 아직 몰랐다. 어마 들소는 아기 들소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뿔을 흔들며 사자들을 쫓아낸다. 엄마의 사랑의 힘이 없던 힘도 나게 한다. 새끼가 없었다면, 어미 들소는 벌써 사자의 밥이 되었을 터,,, 새끼가 있었기에, 어미는 죽을 힘을 다해 사자들로부터 아기를 지키고 있었다.
애당초 싸움이 되지 않는 싸움이다. 드디어 사자 한 마리가 어미 들소의 등에 올라탄다. 또 한 마리는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어미 들소의 놀라운 힘이 발휘된다. 죽음도 이기는 사랑의 힘이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어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어미는 지치고, 사자들의 공격은 더욱 사나워진다. 어미 들소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모녀가 사자의 밥이 되기 직전이다.
이때다. 한 무리의 들소들이 평원에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들소 무리 중에서 한 마리가 모녀 들소의 위험을 본 것이다. 무리의 대장인 수소였다. 대장이 앞장을 서서 사자들을 향해 돌진해 가자, 다른 들소들도 무서운 기세로 대장을 따라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들소들이 사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전세가 급변한다. 사자 한 마리는 들소의 뿔에 받혀서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또 한 마리도 뿔에 받혀 나가 떨어진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이 되어 사자들은 줄행랑을 치고, 모녀 들소는 무사히 구출되었다. 아기의 위험한 세상경험이었다. 그러나 어미가 있었기에, 어미의 사랑이 있었기에,,, 아기는 살아날 수 있었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는 본능이 암컷에게는 있다. 사람도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아버지와는 다르다. 태어나기 전부터 뱃속에서 40주 동안 키우면서 자식에 대한 사랑도 함께 자란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극심한 산통을 겪으면서 자식을 낳는다. 자기 배에서 낳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에는 아무 조건이 없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기에 목숨도 아끼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모녀 들소를 구한 것은 아버지였다. 그래도 아비가 어미의 자식사랑을 따라갈 수는 없다.
어머니들의 자식사랑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잉태된 순간부터 시작이 된다. 태어날 자식을 생각하며,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뱃속에 있는 아기와 함께 자라난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자식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부터 이미 잉태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식 사랑도 자식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잉태되어 있었다. 성경은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의 택하심과 사랑이 있었다고 말한다(롬 9:11-13). 심지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자녀들을 택하셨다(엡 1:4).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뜻에 품고 계셨다.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두 번 태어난다. 요한복음 1장 13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신으로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다.
어떻게 태어났는가? 십자가에서 다시 태어났다. 로마서 6장 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옛 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택하신 자녀들을 출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 패륜아들을 자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아픔이다. 패륜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아픈 사랑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예수님의 부르짖음,,, 아버지로부터 버림 당한 그리스도의 절규다. 주께서는 십자가에서 성부로부터 버림을 당하셨다. 그리스도는 왜 하나님께로부터 십자가에서 버림을 당하셨나? 패륜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자녀들의 모든 죄를 떠안은 철저한 죄인의 신분이었다. 죄인으로서 성부로부터 버림 당하는 그리스도의 절규는 죄에 대한 진노의 심판을 받아내는 극렬한 고통의 부르짖음이었다. 패륜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십자가에서 예수의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이다. 예수는 패륜아가 되어, 성부로부터 버림을 당한 것이다.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어미들의 새끼사랑은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랑이다. 그 만큼 자식은 소중한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자식은 목숨보다 소중하다. 이것이 창조의 섭리다. 하물며 창조주에게 있어서 아들은,,, 천상천하 만물보다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의 자리에 내어 주셨다.
우리는 이렇게 태어난 것이다,,, 패륜아들을 자녀로 받아주시기 위해 사랑하시는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자리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픈 사랑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아픈 십자가의 사랑 가운데에서 잉태되고 태어난 자들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손에서 앗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사자의 발톱도, 곰의 발톱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해칠 수 없다.
패륜아,,, 그리고 하나님의 아픈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패륜아,,, 이들을 지키기 위해 가까이 붙어서 동행하시는 예수,,, 이들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사랑 이야기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