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눅 18:1-8)
동남아의 태국은 코끼리로 유명합니다. 태국사람들은 야생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코끼리를 유인하여 미리 만들어 놓은 우리에 가두고는 코끼리 다리에 쇠사슬을 걸어 뱅골 보리수에 단단히 맵니다. 그런 후에 우리를 치우면, 코끼리는 움직일 수 있지만 묶인 쇠사슬 때문에 멀리 갈 수가 없습니다. 코끼리는 며칠 또는 몇 주일 동안 나무를 뽑으려고 온 힘을 다해보지만, 나무의 뿌리가 워낙 단단해서 뽑히지 않습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코끼리는 좌절과 낙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결과 코끼리는 자기의 힘으로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는 약한 기둥에 묶여도 이내 포기해 버리게 됩니다. 좌절과 낙심은 코끼리마저도 주저앉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에 정탐꾼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의 보고를 듣고 낙심한 나머지 밤새 통곡했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원망을 늘어 놓았고 모세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가나안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낙심은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순식간에 우리 마음을 점령하여 우리를 파괴합니다. 본문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 세 가지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18:1)”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기를 원하시지만, 세상과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듭니다.
미국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신자가 낙심하는 원인을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피로입니다. 사람은 육체적, 정서적으로 지쳐 있을 때 쉽게 낙심하게 됩니다. 둘째는 좌절입니다. 보통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을 때, 일에 대한 부담으로 짓눌리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사소한 문제나 예상치 않은 일들이 발생하면 좌절되어 낙심하게 됩니다. 셋째는 실패입니다. 심혈을 기울인 계획이 수포가 되고 실패로 돌아갈 때가 낙심하게 됩니다. 넷째는 두려움입니다. 낙심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깔려있습니다. 비판에 대한 두려움, 책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낙심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이 됩니다.
오래 전 사형수 2명을 대상으로 사람이 얼마나 피가 없으면 죽게 되는가 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사형수들은 피 뽑는 장면을 볼 수 없는 칸막이가 설치된 곳에서 피를 뽑았습니다. 칸막이에 뚫린 구멍으로 사형수가 팔을 내어 밀었고 주사 바늘을 꼽았습니다. 주사기로 피를 뽑을 때마다 그릇에 부어졌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피를 계속 뽑았습니다. 회를 거듭할 때마다 사형수의 얼굴은 창백졌고, 열 번째 피가 뽑히자 사형수는 죽고 말았습니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사형수 차례가 되었습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팔에 주사기를 꽂고 피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주사 바늘만 꽂았을 뿐 실제로는 피를 한 방울도 빼지 않고 주사기로 물을 쏟는 소리만 냈습니다. 열 번째로 물을 쏟자 사형수는 피를 한 방울도 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었습니다. ‘나는 이제 완전히 죽었구나’ 하는 낙심이 그를 죽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과 마귀는 끊임없이 낙심을 갖다 주어 믿는 자들을 사망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 낙심을 이기는 가장 큰 비결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수님의 비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도시에 하나님도 무시하고 사람도 무시하는 한 불의한 재판관이었습니다. 법대로 재판하는 적도 없고, 뇌물 따라, 자기 기분 따라 판결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과부가 자기 억울한 일로 이 사람에게 매달렸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볼 때 과부의 간청은 헛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매우 끈질지게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와 해결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눅18:4-5)” 과부의 끈질긴 간청에 악한 재판관은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것은 과부가 불쌍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재판관이 회개한 것도 아닙니다.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계속 와서 자신을 괴롭힐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기도하되 끈질기게 기도할 것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안 되나보다 포기하지 말고 끈질긴 과부처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는 기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기도는 아래서 줄을 당겨 하늘 위에 있는 큰 종을 하나님의 귀 밑에서 울리는 것과 같다" 응답을 받고야 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줄을 단단히 잡고 전력을 다해 계속하여 당기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낙심을 이기는 가장 큰 비결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침묵 가운데도 하나님은 일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중국에 모소라는 대나무가 있습니다. 이 대나무의 특이한 점은 산이나 밭에 심어놓으면 처음 5년 동안 땅 밖으로 아무 것도 솟아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겉보기엔 전혀 알 수 없지만, 놀랍게도 5년간 대나무는 날마다 뿌리를 사방으로 뻗어나갑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다음 해부터는 하루에 한 자씩, 6주가 지나면 키가 15미터까지 자랍니다. 모소의 성장은 우리 신앙생활과 매우 흡사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가 가장 낙심하는 이유 역시도 기도하는데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즉 우리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시기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만약 지금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깊고 넓게 내리기 위해 일하시는 기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계속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6-7)” 주님은 우리가 낙심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불의하고 악한 재판장에 비교하여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긴 간청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들어주는데, 좋으신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외면할리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부르짖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침묵 가운데도 하나님은 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