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물러가지 않는 믿음 (히 10:32-39)

기독교


 

뒤로 물러가지 않는 믿음 (히 10:32-39)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광지에서 셀카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가령 높은 산이나 절벽 위에서 사진을 찍다가 더 좋은 배경을 위해 뒷걸음질 치다 실족하는 경우입니다. 작년에 한 한국인 관광객은 페루의 유명한 폭포에서 사진을 찍다가 무려 540 미터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위험한 곳에서 뒤로 물러서다 사진을 찍다 보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뒤로 물러가는 것의 피해는 비단 이것만이 아닙니다. ‘뒤로 물러간다는 말을 한자로 퇴행이라고 하는데, 본문에도 퇴행이 나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10:38-39)” 여기서 뒤로 물러가면이 퇴행인데 영적인 퇴행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믿음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는 게 아니라 자꾸 신앙이 후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믿음에 있어서 후퇴할 때 하나님께서는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본문을 통해 어떻게 뒤로 물러가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세 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뒤로 물러가는 믿음이 무엇인가?

1)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게 뒤로 물러가는 믿음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면 그 믿음은 후퇴합니다. 마귀는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을 자꾸 던져 줍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믿음은 후퇴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따라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가룟 유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을 향한 그 사랑이 변질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한 자리 차지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국 세상 욕심이 많았던 유다는 3년을 예수님을 따라다녔음에도 스승을 은 30에 팔아 버렸습니다. 유다처럼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될 때 우리의 믿음도 저만치 뒤로 가고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2) 믿음의 자리를 떠나는 게 뒤로 물러가는 믿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아담은 범죄 하기 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한 후에는 하나님을 피해 숨게 됩니다. 그런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아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기에 물으신 것입니다. 아담의 믿음은 믿음의 자리를 떠나 뒤로 물러갔던 믿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뒤로 후퇴합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지켰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예수님께서 자리를 지키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약속의 장소를 떠나지 않고 전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그러자 믿음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들에게는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2. 어떻게 하면 뒤로 물러가지 않는 신앙이 될 것인가?

1) 은혜를 기억하라.

히브리서 저자는 뒤로 물러가는 신앙이 되지 말라하면서 필요한 것을 말합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10:32)” 여기에 주목할 단어는 생각하라입니다. 날마다 앞으로 나가는 신앙은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나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목할 말씀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입니다. 전날에 받은 빛은 구원의 빛입니다. 캄캄한 죄의 어둠 가운데 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처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구원의 은혜가 날마다 마음에 새로워지는 사람은 결코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

사도 바울이 그런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3:14)” ,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은혜를 늘 기억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를 박해하던 자신에게 나타나 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뒤로 물러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바울은 그때의 그 일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가 날마다 기억되어질 때 우리는 결코 뒤로 물러가지 않게 됩니다.

2) 믿음의 사람들과 사귀라.

한자 성어 중에 근묵자흑이란 말이 있습니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는 말로 내가 누구와 사귀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사자성어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되는 가장 쉬운 길은 착한 사람과 사귀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한 사람과 사귐을 가지면, 내가 아무리 악해지지 않으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악해집니다.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10:33)” 여기서도 사귐에 대해 나오는데, 이는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였지만 그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고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 사람들과 사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잘 살펴보면 믿음으로 주님을 앙망하면 열심히 앞으로 나가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성도의 사귐은 바로 그런 이들과의 사귐을 말하는 것입니다.

3) 담대함을 가지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10:35)” 믿는 자의 삶속에 시험이 닥쳐오고 환난이 닥쳐올 때 마귀는 마음에 두려움과 염려를 가져다줍니다. 그때 뒤로 물러가지 않는 믿음을 가지려면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큰 두려움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모세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전쟁을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1:7)” 여호수아와 같은 담대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4) 인내가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언제나 늘 앞으로 쭉 나아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앞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신앙의 위기입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10:36)” 장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대로 끝인가 싶은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올 때,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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