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194; 외로운 늑대,,, 죽음으로 이끄는 영혼의 감옥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94; 외로운 늑대,,, 죽음으로 이끄는 영혼의 감옥

일요시사 0 1380

지난 10월 1일 미국의 라스베가스에서는 끔직한 일이 벌어졌다. 대량학살사건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원래 총으로 세워졌고, 총기사건이 자주 있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사건의 범인인 패덕은 지난달 28일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 32층에 투숙해 있다가, 1일 밤 호텔 앞 컨트리 음악 콘서트장에 모인 22,000명의 관람객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최소 59명이 숨지고 527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패덕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며 자신들이 테러의 배후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라스베가스 주민인 패덕의 단독범행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또 IS야? 정말 마귀집단이구나,, 하며 분노했었는데,, 미 수사당국은 “증거가 없다”면서 이른바 ‘외로운 늑대’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외로운 늑대’란 IS 같은 테러 단체의 일원이 아닌 단독범행을 가리키는 말이다. 테러집단도 아닌 평범한 미국시민이 왜 이런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는지,,, 

 

외로운 늑대,,, 이 말이 섬찟하게 다가온다. 패덕이라는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사회에 잘 적응하고 순탄한 삶을 산 사람처럼 보인다. 64세였던 패덕은 수십억 원의 재산을 가진 회계사 출신으로서, 은퇴한 후 라스베가스에서 80마일 가량 떨어진 은퇴자 마을에서 지냈으며, 62세의 아시아계 여성과 동거 중이었다. 27년 전 이혼한 것 외에는 일생을 살면서 큰 굴곡을 겪지 않았다. 교통법규 위반 외에는 범죄경력도 없었다. 그는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주 등에 임대용 부동산을 최소 3곳을 보유하고 있으며, 조종사 면허증과 자가용비행기 2대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패덕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었고, 인생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외로운 늑대’였다. 스스로 외로움이라는 영혼의 감옥에 갇혀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 외로움은 단순히 홀로 외로워하는 고독이 아니라, 사회나 정부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외로움이었다. 

 

외로운 늑대,,, 어쩌면 현대문명의 그늘 아래 곳곳에서 자생하고 있는 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꽃을 피우고, 예술이 있다. 세상은 평온해 보이고,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일상의 삶 가운데서 오히려 소외되고, 외로움이라는 덫에 걸려있는 ‘외로운 늑대’와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수 있다. 

 

외로움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를 알려주는 사건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본다. 특히 이곳에 살고 있는 교민들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모두 꿈을 안고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나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몇 년은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사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러다 삶의 현실에 맞부딪치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좋은 교육제도나 사회환경도 잠시일 뿐이다. 한국에서의 경력과 자격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되고, 늘지 않는 영어실력에 탄식도 하게 된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해보지도 않던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희망을 품고 일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희망도 사라지고,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한숨 지으며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이민 일세들은 대부분 한국에서보다 훨씬 낮아진 사회적 위치로 인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많은 교민들이 몸으로 먹고 사는 직업에 종사하며, 몸도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항상 쪼들리는 어려운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삶이 계속되다 보면, 마음 속에는 외로움이라는 무서운 병이 독버섯처럼 자라날 수 있다. 무서운 것은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외로움이 단순히 외로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나친 외로움은 영혼을 병들게 하고,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외롭고 어두운 영혼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그저 살고 있을 뿐,,, 삶의 의미도, 즐거움도, 앞날에 대한 희망도 사라지게 된다. 그런 가운데,, 외로운 늑대가 그들 마음 안에서 자라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신자들조차도 마음 속에는 은근히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불만과 불평이 자리하게 된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그리고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데, 내게 해주신 일이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이 들게 된다. 믿음도 시들어지고, 영혼도 함께 시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아가서 8장 5절은 말한다.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인생은 거친 들과 같다. 거친 들에서 술람미 여자는 오직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였다. 우리가 이 거친 인생광야를 살아갈 때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문제는 거친 들과 같은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얼마나 실감나게 느껴지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 높은 보좌에 앉으셔서, 팔짱을 끼고 우리를 가만히 내려다 보고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로서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토록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나를 위해 내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곁에 가까이 와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살아계실 때, 나의 믿음도 살아있는 믿음이다. 

 

죽어있는 믿음,,, 삶 가운데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은 믿음이다.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삶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살고 있을까,,, 

 

고난이 너무 심할 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거친 들에 내버려진 것 같은,, 외로운 늑대가 된 것 같은,, 하나님조차도 내게서 얼굴을 돌리신 것 같은 마음이 들 수 있다. 

 

다윗은 시편 13편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탄식한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1절)

 

다윗은 너무나 오랫동안 절망적인 상황이 지속되자,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까지 저를 피하시렵니까 하는 탄식을 하게 된다.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1, 2절에서만 ‘어느 때까지’라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다윗 같은 믿음의 사람도 계속되는 절망 속에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마침내 하나님의 은덕을 감사해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5절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절망적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십자가라는 너무나도 선명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과 영혼에 깊이 새겨있는 자들이다. 오직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할 때, 거친 들과 같은 인생길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덕’이라고 하였다. ‘은덕’은 물론 은혜라는 뜻으로 쓰였지만, 좀 다른 뜻이 있다. 히브리어로 ‘가말’이라고 하는 데, 이 말은 열매가 크게 잘 열리도록 가지에 상처를 낸다는 뜻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윗이 겪었던 죽을 것만 같았던 그 기나긴 고난의 기간도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설사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간조차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시간이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시간이다. 이것이 은혜의 또 다른 측면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때로는 극심한 절망과 고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는 고난의 시간들은 더 큰 하나님의 은혜로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런 은혜의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게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다. 삶의 문제, 마음의 문제, 영혼의 문제,, 모든 것에 대한 답은 오직 천지의 창조주,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며, 방편이시며, 종결이시다.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스베가스의 패덕이라는 사람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가졌으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갖지 못했습니다. 사랑,, 사랑을 갖지 못했다. 사랑이 있었다면 그는 ‘외로운 늑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할 때,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된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