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4) 준비! 되셨나요?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4) 준비! 되셨나요? <마태복음 21:18-22>

일요시사 0 1023

오늘 본문에도 보면 열매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과일 중에 하나인 무화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는데,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를 저주하심으로 무화과나무가 마르게 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뼈대입니다. 보여지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용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 11장 13절에 보면 한 가지 내용이 덧붙여짐으로 오늘 말씀의 반전을 이룹니다. 그것은 바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그럼 무화과가 열매 맺는 그 때는 언제인가? 이스라엘 선교사로 지낸 류모세선교사님의 책 [열린다 성경]의 식물편에 보면 이스라엘에서 무화과 열매는 4월에서 10월까지 맺힌다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한 무화과나무에서 4월부터 10월까지 모두 다섯 번에 걸쳐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4월에 처음 맺은 열매는 먹을 수는 있지만, 당도나 크기에 있어서 상품가치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 따버려야 그 다음에 상품가치가 있는 무화과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주인은 어차피 일부러 따줘야 하는 거 나그네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짜로 먹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기는 유월절기간으로 4월 정도 됩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서 찾으신 그 열매는 바로 이런 작은 열매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무화과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아직 작은 열매조차 맺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죠. 오늘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당시 허례허식만 가득했던 바리새인이나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우리를 향한 책망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겉으로 잎이 무성하고, 뭔가 엄청난 준비를 해 온 것 같았는데, 실상은 열매 없는 나무에 불과한 모습, 준비되지 못한 모습에 대한 책망이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하는 모든 것 역시 결국에는 주님 만날 그 날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도 “준비! 되셨나요?”입니다.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일평생 준비하는 삶의 과정, 어떻게 잘 준비해나갈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지니고 이 땅에 지음 받았습니다. 과실수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열매 맺지 못해 저주를 받아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는 일말의 변호의 이유도 없습니다. 열매 맺기 위한 목적으로 지음 받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으니 이유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이유 역시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에 만족하는 신앙, 그건 어제까지의 신앙이고, 오늘부터는 한 걸음 더 올라서야죠. 거저 받은 은혜로 구원의 자리에 섰다는 만족감만 가지고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구원이라는 감격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감사의 표현이 우리 삶의 선한 열매를 통해서 드러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죠. 왜 그럴까요? // 성공의 삶을 디자인하라는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어떻게’라고 질문하는 사람은 항상 ‘왜’라고 질문하는 사람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 / 잘 보면 세상에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 하거나, 혹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방식으로 대응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어떻게”, 또 하나는 “왜?”

  

쉬운 예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있습니다. 거인 장수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어떻게 저 거대한 장수 골리앗과 싸워 이기겠느냐?”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에 대해 한마디를 합니다.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길래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군대를 모독하는가?” 다른 모든 사람은 “어떻게 싸워?” 그러고 있는데, 다윗은 “왜 내가 저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가?” 그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알았습니다.  내가 “왜” 저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가?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불러주셨고, 왜 나에게 이러한 일들을 맡기시고, 왜 이런 일들을 하게 하시는가를 아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내가 “왜”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성도로,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뉴질랜드 광림교회, 이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는가? 그리고 “왜” 이 모든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는가? 하나님의 나를 향한 목적을 깨달아 알고, 이를 위해 한 걸음 전진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걸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주님이 찾으시면 무조건 드려야 합니다. 

 

오늘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해 저주를 받아 말라버렸습니다. 저는 항상 이 본문을 볼 때마다 시원치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상품가치도 없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예수님? 지식적으로는 정리가 되었지만, 마음에는 그다지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계속 묵상하는 중에 이런 깨달음이 옵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세상적인 기준에서만 판단하고자 하니까 동의가 안 되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면 무조건 드려야 한다. 아직 무화과나무가 익어서 따먹을만한 계절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수님이 원하시면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동의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주의 말씀이나 주의 행적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절대적인 순종, 절대적인 믿음을 원하십니다. 아직 때가 아니어도 주님이 열매를 찾으시면 드려야 합니다. 너무 억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좀 더 현실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화과가 제대로 열매를 맺는 계절은 6월이 지나야 합니다. 오늘 성경의 배경은 4월입니다. 그런데 이 때는 제대로 된 무화과열매는 없어도 타크시, 혹은 파게라고 불리는 작은 열매는 이미 맺혀 있어야 합니다. 일단 이 작은 열매가 맺히고 떨어져야지만 제대로 된 열매를 맺게 되는데, 중요한 건 이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나무는 6월이 되도 9월이 되도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요. 언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열매를 달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 때 내가 내어놓을 열매가 과연 있습니까? 우리는 항상 그러죠. 아직 때가 아닙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잘 익은 크고 싱싱한 열매가 곧 나옵니다. 지금 한창 바쁜 거 조금만 지나면 열매가 나옵니다. 지금 애들 공부하는 거 요것만 좀 끝나면 열매가 나옵니다. 그런데 정작 지금은 작은 열매조차도 없습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헌신하는 것 같지만, 정작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열매를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아직 때가 아닐지라도 주님이 찾으시면 드려야 합니다. 때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겁니다. 다만 우리는 그 때까지 하던 것 그대로 올려드리는 겁니다. “자, 열매 좀 보자.” 그 때 우리가 잎사귀만 보여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나의 열심과 기도와 감사와 믿음과 모든 신앙이 담긴 최선의 삶의 열매를 주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열매 맺는 삶을 통해 축복이 실현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저주를 받아 말라버립니다. 하지만 열매 맺는 삶을 살 때 우리에게 축복이 임하는데, 어떤 축복인가요? 바로 기도응답의 축복입니다.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에도, 또한 같은 내용이 기록된 마가복음에도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린 후에 제자들이 질문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나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2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에도 동일하게 기도응답의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까?” 그러면 “열매를 맺지 못해서이다.”라는 대답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은 기도응답의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에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포도나무의 비유가 나오는데, 거기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그러면서 결론은 요한복음 15장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똑같습니다. 열매 맺는 방법도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기도응답 받는 방법도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결국 열매 맺는 삶과 기도응답의 축복이 하나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 귀한 성도 여러분! “준비! 되셨나요?” 걱정마십시오. 이 세상에 완벽한 준비는 없습니다. 준비는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계속 하는 겁니다. 뭐 대단한 거 하려고 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에게 뭐 대단한 거 원하셨나요? 나무로서 당연한 열매, 그거 하나 원하신 거예요. 우리의 삶 속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 그 열매가 있습니다. 주님이 찾으시면 그거 드리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열매를 주님께 올려 드릴 때, 우리 삶에 기도응답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 기뻐하시는 열매 맺기에 합당한 준비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9-11-06 14:51:11 교민뉴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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