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만큼은 주인공이 되라 (수 2:8-14, 마 1:5-6)
최근 TV에서 요리 프로가 인기 있습니다. 요리 프로를 보다보면 요리사가 재료를 택할 때, 종종 주재료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재료를 택합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 맛이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이처럼 좋은 맛을 위해서는 주재료 이상으로 중요한 게 바로 부재료입니다. 어떤 부재료를 넣었느냐에 따라, 주재료가 더 빛나고 풍미를 더하는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연과 조연이 있는데, 훌륭한 조연은 남을 더 돋보이게 하고 남을 더 빛나게 합니다. 그럼에도 신앙인들은 한 가지 만큼은 조연이 되면 안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만큼은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는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한 여자가 나옵니다. 바로 여리고성의 라합입니다. 이 여인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이방여인으로 여리고의 기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주인공의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라합은 마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라갑니다. 마1:5을 보면 라합은 보아스를 낳는데, 이 보아스는 바로 다윗 왕의 고조부입니다. 결국 라합은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여리고의 천하고, 보잘것없는 한 여인의 이름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녀에게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2장 11절에서 라합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하늘에서도 하나님이시고,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갖지 못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본문을 통해 어떤 신앙이 주인공의 신앙인가 세 가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듣고 깨닫는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 중에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보시는 마음은 듣고 깨닫는 마음입니다. 마13:19에서 예수님은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듣고 깨닫는 마음이 없으면 마귀가 다 가져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듣고 깨닫는 마음이 있으면 그 들은 말씀은 열매가 됩니다. 라합이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에겐 없는 복된 귀, 즉 듣고 깨닫는 귀가 있었습니다.
2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이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왔는데, 라합은 이들을 숨겨줍니다. 그리고 그들을 쫓는 자들이 떠난 후에 그녀는 이 정탐꾼들에게 놀라운 말을 합니다. 8-9절입니다.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방여인인 그녀가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하고, 그 하나님이 너희에게 이 땅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 10절에 그녀는 자기가 귀로 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여기 중요한 단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한 일’, ‘들었음이니라’ 입니다. 라합은 여호와께서 행한 일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라합이 들은 이야기는 라합만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사람들은 다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라합처럼 듣고 깨닫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여리고가 멸망당할 때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들었습니다. 11절입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들었던 라합입니다. 마음으로 듣고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믿음의 주인공이 되는 믿음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라합처럼 마음으로 듣고 깨닫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2. 믿음에 따른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본문 속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여리고에 와서 들어간 집은 라합의 집입니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기생이란 직업상, 라합은 이들이 누구인지 직감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스파이가 잠입했다는 정보가 여리고 왕에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왕의 요원들은 적국의 스파이를 숨겨놓은 라합의 집에 들어옵니다. 그녀는 분명히 긴장되고 두려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스파이들을 숨겨주었습니다. 6절입니다.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이것만 해도 대단한데, 그녀의 용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3절에 보면 왕의 사람들은 “스파이들을 내어 놓으라” 라고 으름장을 냅니다. 아마 그들은 살기를 품고 죽일 기세로 말했을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라합은 임기응변을 보여줍니다. 4-5절입니다.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대단한 담력입니다. 라합의 반응이 얼마나 태연했으면, 왕의 요원들은 의심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자세를 봅니다. 바로 믿음의 담력입니다. 하나님은 이 담력을 보기 원하십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도 믿음의 담력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의 담력으로 그는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나아가노라”라고 담대히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문제의 골리앗 앞에서 섰을 때, 담력을 가지고 서시기를 바랍니다. 무언가를 해야겠는데 주저하는 마음이 든다면, 믿음의 담력으로 결단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장래를 책임져주십니다.
3. 거룩한 매임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12절에 “내가 그대들을 선대했으니 당신들도 우리를 선대해 주세요.”라고 부탁합니다. 여리고를 정복할 때 자기와 가족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이 요구에 정탐꾼들은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15절에 라합은 성 밖으로 줄을 내려 그들의 탈출을 돕습니다. 그때 정탐꾼들은 특별한 요구를 하는데, 18절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이 말에 라합은 그들이 떠난 즉시 창문에 붉은 줄을 매었습니다. 이 붉은 줄은 라합의 믿음을 말합니다. 그녀는 “하나님, 이 성이 멸망할 때 나를 꼭 기억해 주세요. 우리 가정을 기억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이 붉은 줄을 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붉은 줄을 매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믿음의 붉은 줄이 우리 심령 가운데 매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큰 성읍 여리고에 오직 한 집에만 붉은 줄이 매어졌다 사실입니다. 아마 이 붉은 줄을 매는 것은 라합에게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붉은 색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색이며, 그녀는 이미 왕의 사람들에게 관심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붉은 줄을 매어 놓았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붉은 줄을 매는 것과 같은 부담으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거추장스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이 거룩한 매임을 믿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