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내 사랑, 나의 준마야 (1장 7-10절)

기독교


 

[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내 사랑, 나의 준마야 (1장 7-10절)

일요시사 0 1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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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마음으로 왕을 찾아 나선 술람미 여인은 독백한다. 내가 어찌 얼굴을 가린 자같이 되랴(7절),,, ‘얼굴을 가린 자’란 ‘창녀처럼 부끄러운 자’, 또는 ‘방황하는 자’라는 뜻이다. 나 비록 검을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나 비록 게달의 장막 같을 지라도 방황하지 않으리,, 

 

 

내가 어찌 주님 앞에서 가릴 것이 있으랴,,, 내가 어찌 방황하랴,,,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술람미 여인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 간절하게 주님을 구하자. 비록 주님의 뜻대로 제대로 살지 못해 부끄러울지라도, 여러 모양의 죄로 검을지라도 더욱 간절하게 주님 앞으로 나가자.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숨지 말자. 방황하지 말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가자. 

 

성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앞에 나가고, 주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맞아주신다. 

 

9절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네가 나를 그토록 간절하게 찾고 있었구나. 내 사랑아,,, 나의 사랑하는 자야,,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가는 자를 주는 기뻐하신다. 비록 검을지라도 아름답다 하시고,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왕의 장막으로 들어오라 하신다.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을 애굽의 왕 바로의 병거를 끄는 준마에 비유하였다. 그런데 솔로몬은 왜 자신의 준마에 비유하지 않고, 애굽의 왕 바로의 준마에 비유했을까? 솔로몬 왕은 병거가 천사백 대요, 마병이 만 이천 명인데, 말들을 애굽에서 들여왔다(왕상 10:26, 28). 그만큼 애굽의 말들이 좋다는 뜻이다. 애굽 왕 바로의 병거를 끄는 말은 애굽의 모든 말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말일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준마,,, 빠르고 잘 달리는 말, 말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말이다. 못나고 추해도 주 안에서 우리는 주의 소중한 준마들이다. 솔로몬 왕은 애굽의 말들을 돈을 주고 샀지만, 주께서는 성도들을 자신의 피로 사셨기 때문이다.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다(벧전 1:18-19).  

 

주님의 피,, 얼마나 보배로운 피인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천상천하 만물의 창조자다. 만물보다 큰 자요, 영원에서 영원까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주님의 피는 죄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피다,,,

 

하나님의 피,,, 그 피 앞에 숨길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울수록 더욱 그 피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다(히 4:16). 그분의 사랑의 피,, 그 피는 성도들의 마음 안에서 영생하도록 끝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피이기에 그렇다(요 4:14).

성도는 주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자인지를 절감하며 산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지만, 우리는 주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사랑이 없다. 세상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라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세상욕심 가운데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본다. 

 

우리는 여전히 검은 자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부끄러움을 숨김없이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가 고백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품어주신다. 자신의 피를 내준 사랑으로 품어주신다.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추해도 아름답다 하시고, 못나도 빼어나다 하신다.

 

왕의 병거를 끄는 준마는 위엄이 있다. 왕의 병거를 끄는 준마가 비실거리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준마는 기죽지 않고 위엄을 잃지 않는다. 성도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도시에 사는 여자들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사는 사람들이다. 술람미 여인은 산골에서 양떼를 돌보고 포도원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보기엔 하찮은 자요, 볼 품 없는 사람이다. 존재감이 없는 존재다. 성도는 원래 세상에서는 그런 자들이다. 그러나 그녀는 기 죽지 않았다. 오직 왕을 사랑하는 담대한 마음으로 왕을 의지하며 왕을 찾았다. 

 

세상에서는 그럴듯한 지위에 있지 못하고, 볼 품 없어 보일지라도, 성도는 세상에서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영광은 육신에 있지 않고, 땅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 말대로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게 아니다. 그들은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주님의 준마들이다.

 

가진 것이나 자랑할 것이 많아서, 지위가 높아서, 외모가 빼어나서 준마가 아니다. 그런 자들은 바로의 준마지, 주님의 준마는 아니다. 자랑할 것이 없어도 항상 주님을 모시며 사는 자들이 주님의 준마다. 

 

그들은 왕의 피 뿌림 가운데서만 비로소 존재의 의미가 있는 자들이기에 더욱 더 위엄이 있어야 한다. 그 위엄은 겉으로 드러나는 위엄이 아니다. 세상적인 권위는 더더욱 아니다. 육신의 영광을 자랑하는 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내적 위엄이다. 

 

10절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11절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성도는 왕의 준마처럼 금은보석으로 겉치장을 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얼굴에 분 바르고, 거룩한 척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그들이야말로 속이 검은 자들이다. 왕이 예루살렘의 여자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것처럼, 주께서는 그들을 눈 여겨 보지 않으신다. 참 성도는 그들에게 무시당하지만, 주께서는 그를 귀히 여기신다.

 

성도가 꾸며야 할 아름다운 장식은 겉 사람이 아니라, 속 사람이다. 여러분은 머리를 꾸미며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여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벧전 3:3-4).

 

금이나 은은 없어지지만, 주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피는 썩지 않고, 없어지지 않을 불멸의 아름다운 사랑이다. 성도는 그 사랑을 속 사람에 품고 주님을 섬기는 주님의 준마들이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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