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다 (1장 12-14절)

기독교


 

[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다 (1장 12-14절)

일요시사 0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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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학교수가 수업 시작 전에 몇 가지 물건들을 교탁 위에 꺼내 놓았다. 상당히 큰 빈마요네즈 병과 골프 공들과 작은 돌들을 담은 상자와 모래를 담은 상자였다. 교수는 아무 말없이 큰 마요네즈 병에 골프 공들을 넣어 채우기 시작했다. 병이 다 차자,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제 병이 꽉 찼나요?” 학생들은 “예, 다 찼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그러자 철학교수는 작은 돌들을 그 병 안에 붓기 시작하였다. 병을 가볍게 흔들면서 부어나가자 작은 돌들은 골프 공들 사이의 공간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학생들에게 이 병이 가득 차 있는지 물었다. 이번에도 학생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교수는 다음으로 모래 한 상자를 들어 병 안에 쏟아 넣었다. 그러자 모래알들이 빈 공간으로 흘러 들어갔다. 교수는 다시 한 번 이 병이 가득 차 있는지 물었다.학생들은 단호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교탁 아래에서 두 잔의 커피를 꺼내 병 안에 모두 쏟아 넣었다. 커피 물이 모래 사이로 스며들어 빈 공간을 채웠고, 학생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웃음이 가라앉자 교수가 말했다.

"나는 이 병이 자네들의 인생임을 알았으면 하네. 골프 공은 자네들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것들을 말하네. 자네들의 가족, 자녀, 자네들의 믿음, 건강, 친구 그리고 자네들이 가장 좋아하는 열정 말일세. 자네들 인생에서 다른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것들만 남는다 해도, 그 인생은 여전히 꽉 차있을 거야. 조약돌은 문제가 되는 다른 것들이지. 자네들의 직업, 집 그리고 차 같은 것들이지. 모래는 그 외의 모든 것들이네. 자네들 인생에서 작은 것들 말이야." "만약 자네들이 모래를 병 속에 가장 먼저 넣는다면, 조약돌이나 골프 공이 들어갈 자리는없을 거네. 인생도 이와 같네. 자네들이 자네들의 시간과 힘을 그 작은 것들을 위해 써버리면,평생 자네들에게 중요한 것이 들어갈 공간은 없을 게야. “가장 중요한 골프 공을 먼저 생각하게.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그리고 남은 것들은 그냥 모래일 뿐이네."

그러자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커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물어봐 줘서 고맙네. 이건 단지 자네들의 인생이 얼마나 가득 찼든지 간에, 언제나 친구와 커피 한 잔 할 여유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네."

인생이라는 병에 무엇을 먼저 담을 것인 가,,, 삶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 채, 작은 모래알들로 자신의 인생을 채우며 살고 있다. 우리 신앙인들도 작은 모래알과 같은 것들로 자신의 삶을 가득 채우며 사는 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대부분 하루 종일 일해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우리 안에 주님께서 들어와 계실 자리가 없다. 먹고 사는 문제는 철학교수가 이야기한 작은 조약돌이나 모래에 해당이 된다. 조약돌이나 모래를 병에 먼저 넣으면, 골프 공이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디에 시간을 더 많이 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 중심에 무엇을 담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일도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한다. 기도만 한다고, 누가 밥을 갖다 주고, 집을 마련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 마음에 채워야 할 것이 있다. 주님이시다.

 

17세기 프랑스의 갈멜수도원의 수도사였던 로렌스 형제에게 맡겨진 일은 수도원의 주방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로렌스 형제는 한쪽 다리를 많이 절었다고 한다. 신체적 결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다른 수도사들처럼 수도사로서의 정상적인 훈련도 받지 못하고, 주방 일만 했다. 수도사들이 먹을 음식재료를 구입하고, 식사준비를 하고, 주방을 정리하는 등, 무려 15년 동안 주방 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로렌스 형제는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항상 주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했다고 한다. 15년 후에 형제는 수도원에서 영적 거장이 되어 있었고, 수도원장으로 부임하였다. 형제는 하찮은 부엌 일이지만, 그 일이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기쁨으로 음식을 하고, 접시를 닦고 했다고 한다. 늘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이것이 바로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삶이다.

 

13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 주머니’라고 하였다. 마음 중심에 주님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주님을 모시고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은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하게 된다. 몰약은 향료면서, 방부제 역할을 한다. 성도는 주님을 가슴 한 가운데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마음 한 가운데 늘 자리하고 계시기 때문에, 마음이 부패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주님을 마음 한 가운데 모시고 사는 성도들은 죄악의 썩은 냄새가 사라지고, 주님의 향기를 뿜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자기 자신이 가득한 사람에게서는 악취가 진동을 한다. 마음 중심에 주는 없고, 자신과 세상 것으로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14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고백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고벨화’는 향기가 좋고 은은하게 널리 퍼져서, 2km 떨어진 곳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주님을 가슴 한 가운데 품고 사는 성도도 이와 같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가 은은하게 널리 퍼져나간다. 엔게디 포도원은 엔게디 광야에 있는 오아시스를 말한다. 오아시스에는 샘물이 있고 나무가 무성해서, 광야 같은 고단한 삶을 사는 피곤하고 지친 인생들에게 안식과 마실 물을 제공한다. 주님께서는 고달픈 인생광야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분이시다. 주님을 마음에 품고 사는 성도들은 고달픈 인생광야에서 오아시스를 품고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와 같은 분이시다. 성도들의 삶 가운데 오아시스가 되어 주시며, 고벨화의 향기가 되어 주신다. 그곳에는 안식과 생명이 있으며, 아름다운 향기가 가득하다. 고벨화가 송이로, 다발로 열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향기를 다발로 뿜어내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신다. 설사 인생이 고달픈 광야와 같을 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광야에는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와도 같은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달픈 인생광야에서 안식과 생수를 주는 오아시스이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삭막한 인생광야에서 피어나,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는 고벨화 송이이시다. 술람미 여인처럼 나의 사랑하는 자를 가슴 한 가운데 품자. 무엇보다 먼저 사랑하는 주님을 마음 한 가운데 품자. 주님 안에서 우리의 인생은 광야가 아니다. 광야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다. 엔게디 포도원처럼 고벨화가 다발로 열려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는 오아시스다.

 

채원병 목사 <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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