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0); 무엇이 중요한가? <마태복음 6:25~34>
여러분! 지금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습니까? 행복을 위해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돈을 벌기 위해 행복을 희생하는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잘 먹기 위해서 일을 하였는데, 이제는 일하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를 사회학적인 용어로 가치의 전도라고 합니다. 본래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적 가치가 더 우선시되는 현상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무엇이 중요한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 우리 믿는 자들이, 천국 백성 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늘상 어떤 가치의 척도를 말할 때에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 속에 빠져들곤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90점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면 당장 나오는 질문이 이겁니다. “다른 애들은 몇 점인데? 아무개는 몇 점 맞았는데?” 나의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나란 존재는 사라지고, 늘 다른 사람을 떠올립니다.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에 내 행복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하찮게 취급해버리는 것입니다. 본문에 앞서 나오는 26절과 28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이어서 30절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세상 모든 만물을 바라보면서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 내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는 이방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방인이라는 말은 성경 자체에서는 유대인 이외의 모든 나라 사람들을 뜻하지만, 현재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믿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겠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셨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 아시기에, 굳이 그런 것을 걱정하고 염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만 나의 것을 추구하고, 나의 것에 만족하고, 나의 것에 감사하면 됩니다. 이런 저런 것 두리번 거릴 것 없이, 그저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하나님!!”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랑 받는 존재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염려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90퍼센트 이상의 걱정과 염려 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것, 이미 일어나서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 아무리 염려하고 걱정해도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내가 해야 할 염려는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염려가 끊이지 않는다는 거죠. 왜 그럴까요?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마음 먹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5절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어서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 만약에 염려해서 키가 한 자씩 더 자랄 수 있다면, 아마도 염려 학원이 생길 겁니다. 하지만 염려함으로 내 키를 크게 할 수 없습니다. 염려함으로 내 삶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염려를 예수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 누구입니까? 사울입니다. 사울은 원래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믿음도 있고, 겸손하기도 하고, 외모적으로도 출중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갑자기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데, 그 계기가 어디 있었는가? 여인들이 노래합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이 노래를 듣고 사울이 염려하며 말합니다. “저들이 나에게는 천천만 돌리고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니, 저 다윗이 이제 곧 나라까지 차지하겠구나.”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고 악령이 사울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 악령의 실체가 바로 염려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신명기 33장 2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이 말씀을 풀어보면 오늘 34절과 연결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한 날의 삶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에 따른 한 날을 살아갈 힘과 능력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라는 것은 단순히 앞서서 미리 염려하지 말라는 차원이 아니라, 그 내일의 삶까지도 다 하나님께 맡겨드리라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 안하려고 해도 자꾸 생겨나는 건데, 뭘 그리 애써 하려고까지 하십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어제의 삶도, 오늘의 삶도, 내일의 삶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염려를 넘어서 평강을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정말 중요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 33절에 말씀하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앞서서 무엇을 먹을까도 걱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무엇을 마실까도 염려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무엇을 입을까도 근심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실 터인데,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하고 염려하느냐며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먼저” 가장 중요한 일은 먼저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는 예화가 있죠. 한 교수님이 큰 항아리를 놓고 큰 돌을 채웁니다. 꽉 채우고 나서 묻습니다. “항아리가 다 찼습니까?” 학생들이 대답합니다. “예, 교수님.” “아닙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자갈을 넣습니다. “항아리가 다 찼습니까?” “예, 교수님!” 또 “아닙니다.”하면서 이번에는 모래를 채웁니다. “항아리가 다 찼습니까?” 학생들이 대답을 망설입니다. 이번에는 물을 넣습니다. “이제 비로소 항아리가 다 찼습니다.” “그럼 학생들! 이 항아리 실험을 통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뭔가요? 한 글자로 대답해보십시오. 오늘 33절에 답이 있습니다. 뭔가요? “먼저”
큰 돌을 먼저 넣어야 자갈을 넣을 수 있습니다. 자갈을 먼저 넣어야 모래를 넣을 수 있습니다. 모래를 먼저 넣어야 물을 채울 수 있습니다. 물을 먼저 넣으면 모래를 넣을 수가 없습니다. 모래를 먼저 넣으면 자갈을 넣을 수가 없습니다. 자갈을 먼저 넣으면 큰 돌멩이를 넣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모든 일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죠.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 오늘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본문 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다시 말해 영적인 것을 구하면 이 모든 것,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모든 것들을 다 더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하라”는 영어로 보면 “seek”입니다. 구한다는 의미보다 “찾는다.” “추구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즉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의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게 뭔가요? 내 삶 가운데 천국의 삶을 실현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백성으로서 내 걸음이 닿는 곳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리겐이라는 주석학자는 오늘 33절을 이렇게 주석합니다. “큰 것을 구하라 그러면 작은 것도 주시리라. 하늘에 속한 것을 구하라 그러면 땅에 속한 것도 주시리라.” 오늘 말씀의 주제와 연관해서 다시 말씀드리면, “중요한 것을 먼저 구하라. 그러면 다른 모든 것들도 더해주시겠다.” “먼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그 귀한 영적 가치를 받아 누릴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축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